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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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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ppebble] 쪽지 캡슐

2002-09-12 ㅣ No.7221

 

시댁에서 살다가 임신 3개월째 되던 때 아파트로 분가해 나왔습니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는 얘길 듣고 이사를 며칠 앞둔 날부터 ‘우리 앞집엔 어떤 사람이 살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사하는 날, 짐을 담아 두었던 종이상자를 잠깐 복도에 두고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이걸 여기다 버렸노? 안 치우기만 해봐라. 미치겠다 마. 이사 오는 사람이면 알아서 치워야지. 안 치우면 내 경비실에 연락할 끼고!”

 

앞집 할머니인 듯했습니다. 지방 사투리가 강하게 배어나 더더욱 무섭더군요. 순간 너무한다 싶었고 그 뒤론 할머니를 피해 다녔습니다.

 

이윽고 달이 다 차 우리 서희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마침 집안에 일이 있어 엄마도 어머니도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에 대해선 나보다도 모르는 신랑이랑 애 막 낳은 환자 아닌 환자인 저랑 둘밖에 없었지요. 몸이 아파 아기를 돌볼 수 없고, 미역국도 끓여 먹을 수 없어 너무너무 서럽고 슬펐습니다. 아기가 목청껏 울어 댈 때마다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날 아침도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하는 생각으로 문을 여니 앞집 할머니가 냄비를 들고 서 계셨습니다.

 

“새댁 몸 풀었다꼬? 이거 먹어 봐라. 간이 맞을까 모르겠네.”

 

이사 오고 인사 한번 드리지 않으며 피해만 다녔는데, 내가 몸 푼 걸 알고는 미역국을 끓여 오신 거였습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을 드리기도 전에 안에서 서희가 울어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혼자 있나? 애 좀 보자” 하며 들어오셔서는 그날 꼬박 우리 서희를 봐 주셨다. 끼니마다 미역국도 끓여 주셨고…. 얼마나 고맙던지. 그동안 할머니를 피해 다녔던 일이 너무 부끄러웠다. 고마움에 난 결국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집에도 놀러오고 그래. 나도 새댁 나이만한 딸이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보냈어. 그래서 새댁이 내 딸 같구 그래.”

 

제가 할머니를 피해 다니기만 하는 사이, 할머니는 저를 딸처럼 바라봐 주셨던 것입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 좋은생각(www.positive.co.kr) 서순화님(전남 여수시 학동)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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