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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비밀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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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ppebble] 쪽지 캡슐

2002-09-19 ㅣ No.7286

 

 

아버지는 맏딸인 나를 유난히 위하셨다. 철들어 사춘기가 되어서도 난 아버지의 팔베개를 베고 잠이 들곤 하였다. 내가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에도 아버진 나의 지갑을 슬며시 열어 보시곤 만 원도 좋고, 이만 원도 좋고 조용히 넣어 주시곤 하셨다. 그리곤 나를 가만히 불러 “얘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남들처럼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가끔 외식도 하고 그래라. 도시락만 먹으면 지겹지 않니?” 하고는 살짝 웃으셨다.

 

고3 때 하사관이던 아버지는 마흔여섯 젊은 나이에 제대를 하셨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그 일이 잘 안 되면서 우리집 생활은 갑자기 균형을 잃었고 처음으로 가난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 보기 민망스럽다며 수유리에서 의정부까지 리어카를 끌고 과일 장사를 다니셨다. 추운 겨울엔 꽁꽁 언 손과 발을 호호 불어 가며 밤새도록 서 있어도 하루 천 원도 팔지 못하던 사과장사를 말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도 가슴 아프고 힘들었던 그때 난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학교를 포기하고 돈을 벌어서 동생들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그래서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버진 딸의 지갑이 비어 있으면, 남들 앞에 초라해 보일까 봐 노심초사하셨던 것 같다.

 

이젠 칠십이 다 되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빨리 늙으실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언제까지나 거대한 산처럼 늘 푸를 것만 같았으니까.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 손가락 마디마디에 묻어 있는 세월의 아픔과 흔적이 날 아프게 한다. 자식들에게는 늘 관대하셨던 너그럽고 자상하신 아버지. 야단 한 번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저 “오냐 오냐, 우리 자식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만 늘 말씀하시던 아버지. 어린 나를 데리고 동네 가설 극장을 열심히 다니실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신 아버지. 어쩌다 운이 좋아 과일이 많이 팔리면 밀가루 한 포대를 머리에 이고 오시며 기뻐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가끔 친정에 가면 말씀하신다.

 

“얘, 어미야 하룻밤 자고 가렴. 아버지가 귀지 파 준 지 오래 됐쟈?”

 

 

- 좋은생각 이명희(서울 마포구 동교동)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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