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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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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ppebble] 쪽지 캡슐

2002-10-29 ㅣ No.7542

 

 

“밖에 누가 찾아왔심더.”
대학 3학년 때 나는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에 묻혀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연락도 없이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어무이, 여기는 우째 알고….” “와? 내가 오는 게 반갑잖나?”

 

어머니는 나를 근처 국밥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니 뭐 묵고 싶노?”
“그냥 백반이나 먹으러 가입시더.”
“무신 소리가? 공부할라믄 고기를 먹어 줘야 한데이.”
어머니는 국밥 두 그릇을 시키고는 얼른 당신 그릇에 담긴 건더기를
전부 내 그릇에 덜어 주셨다.
“와 그만 드십니꺼?”
“내사, 조금 전에 먹고 왔다.”

 

말없이 국밥을 먹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막내야, 니 인자, 엄마 없이도 혼자 살 수 있제?”
“그게 무슨 소린교?”
“퍼떡 대답해 보거래이.”
“지 나이가 몇인데예, 이제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심더.”

 

“니도 봤고, 내사 마 이제 갈란다.”
“시험 끝나고 바로 내려갈게예.”
평소와 다른 어머니 모습에 잠시 당황했지만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어머니를 보낸 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내 생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그런 말씀을 하셨던 이유를,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였던 이유를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폐가 좋지 않아서 병원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병세가 심해져서 정밀검진을 받으러 도시 종합병원에 나오셨는데
검진을 마치고 시골 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막내아들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려고 모르는 길을 물어 독서실까지 찾아오셨던 것이다.

 

결국 어머님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국밥을 먹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가 나이가 몇인데예. 이제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심더.”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던가.
국밥을 사 주시던 어머니, 차창 너머 나를 바라보며 우시던 어머니.
그 눈물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둔한 아들은 무심코 했던
그 말이 가슴에 한이 되어 남아 있다.

 

 

- 좋은친구 (2001.11월호) 김영두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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