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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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악습 - 자기 변화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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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adsum1988] 쪽지 캡슐

2004-10-13 ㅣ No.8208

 

◎ 2004년10월14일(목) -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1,47-54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47)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있다. 48) 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소행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또 그 소행을 두둔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무덤을 꾸미고 있으니 말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가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고 하셨던 것이다. 50) 그러므로 이 세대는 창세 이래 모든 예언자가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1) 잘 들어라.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살해된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2) 너희 율법교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53) 예수께서 그 집을 나오셨을 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몹시 앙심을 품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54) 예수의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다.◆


[복음산책] 악습 - 자기변화의 걸림돌


  루가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불행선언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보자. 우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세 가지 불행선언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십일조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소홀히 한다.(42절) ②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43절) ③ 사람들이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무덤과 같다.(44절) 그리고 율법학자들에게 내려지는 세 가지 불행선언의 이유는 이렇다. ① 남에게는 어려운 짐을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도 대지 않는다.(46절) ②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면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47-51절) ③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려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막는다.(52절)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 율법교사들에 대한 나머지 두 가지 불행선언을 전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여섯 가지 불행선언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율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여 무수한 세칙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였고, 바리사이들은 즐거움으로 이를 마지막 하나까지 지키려는 충성심을 보였다. 바리사이들은 율사들이 만들어 낸 율법의 세목(細目)까지도 철저히 지킨다는 형식적인 순수함을 근거로 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우월성을 고취하여 특수층으로 자처한 사람들로서 예수님 당대 최고의 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이 아니었던가? 후대의 랍비들은 바리사이파를 이스라엘 율법과 전통의 진정한 옹호자로 찬양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의 랍비들은 바리사이파의 정신적 후예들로 간주할 수 있다.


  율사들은 사람들이 율법의 세목을 지키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사정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 관심 밖의 일이었다.(46절) 그들은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통탄의 마음으로 꾸미는 척 하지만 조상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아벨의 피(창세 4,8-10)부터 모든 예언자들이 흘린 피와 제단과 성소사이에서 피살된 즈가리야의 피(2역대 24,20-22)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47-51절) 율사들은 머지않아 예수님과 그 추종자들을 죽인 책임까지 져야할 것이다. 율사들의 최종적인 잘못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통로를 차단하는 데 있다.(52절)  여기서 새로운 지식이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을 말한다. 율사들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예수께 믿음을 가질 수 없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진정한 예언자요 하느님 지혜의 선생으로 등장하신다. 그분 스스로가 율법의 성취자이며,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이며 지식이다. 그분은 율법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 율사들과는 달리 율법을 단순하고 쉽게 만드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30)라고 하셨다. 율법학자들은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려주신 율법을 두고 밤낮없이 연구하고 정진하였던가? 왜 그들은 율법을 공부하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참다운 정신과 정의와 사랑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왜 그들은 율법의 참된 지혜가 그들 바로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것은 이미 그들 몸에 베어들은 위선과 착취와 탐욕의 습관 때문이다. 이런 악한 습관들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 있어 누구에게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자리에 대입시켜 놓고,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불행선언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쇄신할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르코! 너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는 신자들이나 비신자들에게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에서는 정숙하고 엄숙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가장 높은 제단 위에 앉아 꼭 필요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옆에 있는 동료와 무얼 그렇게 수군거리느냐? 너는 화를 입을 것이다. 신자들에게는 성체(聖體)를 거룩히 모시고, 성사를 받을 때 합당한 준비를 갖추라고 가르치면서, 너는 마치 권한이라도 가진 것처럼 나의 성체와 성사를 마음대로 다루느냐? 너는 화를 입을 것이다. 신학교 시절에는 겸손한 자세로 그렇게도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며, 매일 매일 사제의 꿈을 가꾸고 다지더니, 정작 사제가 되고 나니 아무도 너를 제지할 수 없다는 냥 먼저 인사할 줄 모르고, 아무에게나 반말을 해대며, 준비 없이 강론대에 서는 등, 그저 그런 습관성에 박혀 이렇게도 교만한 자가 되어버렸느냐? 너는 화를 입을 것이다. 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가르쳤거늘 너는 활동과 관상을 혼돈하여 활동이 곧 기도라 생각하며 내 집 찾기를 너에게 맡겨진 양떼보다 더 소홀히 하는구나? 너는 화를 입을 것이다. 나를 위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자들은 손에 묵주를 들고 나의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께 기도하며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려 걸어서 오는데, 너는 네가 앉을 장소까지 자가용을 몰고 오느냐? 너는 왜 사제가 되었으며,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오늘은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겠습니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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