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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다의 임금이 된 다윗 / 다윗[1] / 2사무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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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1-06-14 ㅣ No.14757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유다의 임금이 된 다윗(2사무 2,1-11)

 

사울 왕은 죽었다. 그래서 다윗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도 이제는 안전해졌다. 사울의 오해로 빚어진 그의 죽음의 문턱이 아예 없어졌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지금껏 그는 필리스티아 지역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미친 척 어리석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기다려왔다. 이러한 기다림이 지나자, 다윗은 다시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어떤 방법으로 여쭈었는지는 소개된 바가 없다. 다만 그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주님께 여쭈어 보는 일을 잊지 않았다. 사울과 친구 요나탄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도 비통하게 애도한 후의 첫 행동이었다.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한 곳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올라가거라.” 하고 이르셨다. 다윗이 다시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자, 그분께서는 헤브론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구릉지로 유다에서도 큰 성읍중의 하나로, 가나안 지역 정착초기부터 유다지파의 칼렙 부족이 그 성읍을 차지하고 있었다(여호 15,13 참조). 그렇지만 다윗이 그곳으로 간 것도 어쩌면 필리스티아의 묵인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사울의 죽음으로 그들의 지배가 확대되었기 때문일 게다.

 

이렇게 그는 유다 지파로 의당 유다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여전히 필리스티아의 입김이 작용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래도 나름으로는 당당한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사울의 입김이 사라지고 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때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두 아내, 곧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카르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있던 육백 여명의 부하(1사무 27,2)들도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올라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헤브론의 여러 곳에 자리 잡았다.

 

그때는 사울의 사람들, 특히 패배한 일단의 아브네르 사람들은 요르단 서편 마하나임(창세 32,3 참조)으로 떠난 후였다. 그리고 다윗의 많은 사람들이 치클락에서 돌아온 때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다 지파 사람들이 몰려 와서는, 거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기름부음은 세속적 의식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솔로몬 이후부터는 비로소 사제들이 그 의식을 엄격히 수행했다. 이렇게 다윗이 기름부음 받았지만, 여전히 유다의 왕이었을 따름이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후 다윗은 사울 왕의 장례를 치른 이들이 야베스의 길앗 사람들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심부름꾼들을 야베스 길앗 사람들에게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게 하였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군 사울에게 그토록 충성을 다하여 그의 장례를 치렀으니, 주님께 복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애와 성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런 일을 하였으니 나도 여러분에게 선을 베풀겠습니다. 여러분의 주군 사울이 세상을 떠났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십시오. 유다 집안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았습니다.”

 

사실 야베스 길앗은 요르단 동편의 중요한 성읍으로, 이스보셋이 있는 이스라엘의 수도격인 마하나임과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그곳 사람들과 나름대로 오후 관계가 맺어져야했기에 심부름꾼들을 보내 사울의 장례를 치루어 준 것에 감사의 실질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한편 사울 군대의 장수이며 네르의 아들인 아브네르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온 후, 거기서 그는 이스 보셋을 길앗과 아수르족과 이즈르엘, 에프라임과 벤야민과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그가 이스라엘 임금으로 두 해 동안을 다스렸다.

 

한편, 유다 집안은 다윗을 따랐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집안을 다스린 기간은 일곱 해 여섯 달이었다. 이 기간 내내 다윗은 야베스 길앗에 한 것처럼, 여러 곳에 우호의 손길을 보냈을 것이다. 이는 유다 지파가 그랬듯이 여러 이스라엘 지파들도 적당한 때에 자신에게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한 것일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요르단 서안으로 거처를 옮긴 아브네르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았다. 북부 지파에게는 사울의 죽음으로 지도력에 공백이 발생했고, 이를 틈타 사울의 장수인 그는 자신이 임금이 되려고 이스 보셋을 미끼로 사용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 간에는 서서히 내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계속]

 

[참조] : 이어서 ‘3. 유다와 이스라엘이 기브온에서 내전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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