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본향을 향하여♬~ 52,53처 신리 성지/원머리 성지 (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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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3-06-29 ㅣ No.102774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그곳!......2021.09.15 첫 번째 순례길


광활한 목장의 한 그림같은 신리성지란곳은 젊은이들도 쌍쌍이들

걸어다니며 사진들 찍어대는 걸보면 아마도 성지겸 힐링의 공원 같은 느낌이다.

여기또한 초입부터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 기도길은 마치도 사막의 끝도없는 길을

걸으며 한처 한처 걸어가는 느낌이다.


 

십자가 가는 동안 군데 군데 작은 방갈로?처럼 꾸며진 기도방엔

이곳을 거쳐간 많은 순교자들의 말씀과 흉상들이 모셔져..

가슴을 뜨끔뜨끔 거리게 만들어 준다.

"나는 죽는 것이 무척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천주이신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은 더 무서운 일입니다"


7처를 다가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노래하는데

곁에 다가오던 한 할머니가 함께 노래하며 나도 끼워줘~라도

하는듯해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줄 알았는데

8처로 가는동안 가족들한테 사라져 가버린다.^^


       

여기 또한 크고 정갈한 성전에 들러 예수님께 인사하고

나오는데 기다리는 스템프통!

차에서 가져온 책자 신리성지 페이지에 도장을 꾸욱~ 찍으며 만족하는

할매는 스템프찍지않고 순례길 다니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그 뭣이냐?.... 저 율법의 바리사이파들의 얽매인 성형틀 같은....

"사랑은 믿음은 .. 소망은... 오데로 갔지?"


솔뫼땅을 다 돌고. 신리성지의 광활한 평야를 완주하고보니

만 보가 넘게 걸어다닐 정도로 할매의 다리는 오늘도 수고의 땀방울을

흘려대고 있었지만 갈길은 또 바쁘다.



신리의 무명순교자들의 묘가 있는 대전리 공동묘지를 향해 달려간다.

무명의 순교자 앞에 바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적힌 간판도 서있고

묫자리 입구에 서있는 안내판형식의 14처는 또한 색다른 감정으로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깔끔하게 단장된 곳은 아니었어도 할배는 제일 가슴이 찡~한 장소라며

거듭 말하며 이쪽 저쪽을 둘러본다

목이 없는 시신 14구가 묻혀있다는 기록을 보며... 할매는 처음으로

성가로 그분들의 영을 위로해 드린다.


"기쁨과 평화 넘치는~ 하느님 계신곳 ~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며 살리라~♬



시간을 보니 6시가 안되었다. 

"할배요, 여기까지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다음에 한번더 당진을

와야 될것같은데 한군데 정도는 더 가도 될것 같지요?" 하자마자

또 달린다. 황무실 성지가 있는 10분거리의 같은 합덕읍 석우리 길을.... 

 

 

두 번째 순례길......2023.05.07

 

지척간의 거리를 오는데도 금새 또 비가 쏟아져 내린다.

황금의 연휴내내 불어대고 쏟아져내리는 자연의 심술은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버린듯 ...... 비바람 몰아치는 광활한 평야엔

역시도 아무도 없는 으시시한 머뭇거림으로...

차안에 앉아 우선 가져간 바나나와 두유로 아침을 때우며 비야비야 오지마라고

부탁해본다.


우산도 날아가버릴것 같은 저 바깥벌판을 나가긴 나가야 하는데... 끙~!!

맑고 청량한 날씨의 첫번째 순례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있는 변화무쌍한 끝없는

비바람속 을...


십리만큼 떨어져있는 각처의 십자가의 길은 제대로 골고타의 언덕길을 체험케라도

할듯이 까마득하다.



오늘같이 비바람 몰아치는 날엔 베로니카의 수건도, 하늘저높이 휘익~ 날아가 버릴것

같은 불안스런 마음도 안고가고......

무거운 십자가 끌어안고 온몸으로 버티어내며 걸어갈 시몬의 태산같은 걱정도 한짐

보탠채 엎치락 뒤치락 걸어가는 비에젖은 안타까운 길이다.












십자가의 길을 찾아 걸어가는 길에.... 따로 서계시는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며 옷자락이

2년전의 그대로인게 좀 속상하다.

푸른잉크를 병째 벼락맞은 모습으로 "옴마야 어무이요,,, 와 이리 무서운 모양새로

서 있는교?..




전설처럼 전해오는 믿거나 말거나의....

구노의 아베마리아 사연을 기억하며 다뷜리 주교관 대청마루에 앉아 어린왕자속

장미꽃의 의미를 되새기며 시대를 넘어 나누는 사랑의 인사가 이 썰렁한 아침에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신리는 조선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으로 주민 400여명이 모두 신자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신자들이 많았던 만큼 박해도 심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한 곳이다.

특히 병인박해와 무진박해를 통해 마을 전체 신자가 순교하거나 피난할 정도였는데

인근에 있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가 이를 말해준다.


신리는 박해를 겪는 조선 교회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서해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고,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신리에서 체포되어 보령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하였고 후일 성인이 되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첫번째 순례길에서 만났던 목없는 순교자들의 묘가 손자선 선조의 가족무덤이라고 분명

쓰여 있었건만.... 그때는 아! 그런 선조가 신앙을 지키기위해 그렇게 돌아가셨구나 했는데

오늘 두번째와서 만나는 다뷜리 초가집 주교관에 함께 달려있는 손자선 생가라는 현판을 보며,


신리성지의 이 넓다란 땅에 손자선 선조의 가족들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들을 도와가며 살다가

결국엔 죽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다 공동묘지 허름한 땅속에 목이떨어져 나간 채 묻혀있었던

그날의 역사속 이야기는 또 다른 애틋한 만남의 인연으로 우리부부를 엮어 주었던 것이다.


어제부터 얼음채워 넣어왔던 약간은 굳어진 김밥으로 비바람 나들이를 다녀온 차안에 앉아

든든하게 속을 채워가며 8시 25분 다음 순례지인 원머리 성지를 향해 또 달려가보자.


 

어둠도 불사하고~.......2021.09.15 첫 번째 순례길

 

 

어둠도 불사하고~.......2021.09.15 첫 번째 순례길

"할배요 , 어차피 왔는데 기냥 가는데 까지 가보입시더.."

궁합이 맞는 할배는 또 달려간다.

신평면 한정리에 있는 원머리 성지를 향하여~~ 


원머리성지를 가는 길에 신평성당이 길가에 있고, 주차장에

차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할배요? 저거 우리가 마지막 코스로 잡은 신평성당 아이요?

세상에~ 우째 이런일이... 저곳 때문에 다음번에 꼭 이곳을

들러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5분거리의 원머리 성지는 살짝 언덕이 진 높은 자리에 위치해있다.

이곳출신 박태진.마티아와 박선진.마르코 두분순교자의 무덤이 모셔져 있고,

아직도 시복전이라는 말을 신평성당 사무장님께로 부터 시복을위해

전 신자들이 기도로 열심히 간구하고 있다고 했다.


어둠이 거의 덮인 원머리성지에서 기록을 남겨두고자 셔터를 계속

누르건만 제대로 나올지 궁금하지만서도 ...우리는 물을 주고

나머지는 하느님이 다 알아서 자라게 하시니까?...!!


     

조그만한 원머리성지를 돌아서 나오는길에 아까 보았던 신평성당을

찾아 들어가니 미사가 끝났는지 신자들과 아이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성전안에 들어가 잠깐 예수님께 인사드리고 제대를 바라다보니

젊은 수녀님이 제대보를 걷으시고 정리하시느라 바쁘시다.


오른쪽 벽 저 높은곳으로 부터 아래로 쭈욱 걸려있는 현수막엔

박마르코와 마티아의 시복을 위한 문구들이 적혀있다.


원머리 순교자 묘역은 세계 유네스코 유형.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가치를 지닌 조선시대 순교자 묘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카톨릭 문화유산의

소중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순교자 시신이 온전히 모셔져있는 특색있는

성지라 한다.


퍼즐이 기가막히게 맞추어지는 신평성당과 원머리성지는

원래는 이 두분의 순교자들이 신평성당 내에 묻혀져 있었다가

2000년 새 신평성전이 신축되면서 지금의 원머리 성지로

옮겨 모셔가면서 지금은 성지성당이라기보다는 원머리성지를

관리하는 성당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신평성당 입구 성전벽엔 세분의 동상이 커다랗게

붙혀져 있는데 가운데에 계신분이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이고

뒤에 두분은 박마티아. 박마르코 순교자라고 사무장님이

설명해 주시며 기도 많이 부탁한다고 하더라~~


      

성전의 불도 꺼지고, 마지막 사람 사무장까지도 차에 시동을 걸며

퇴근하려하는 깜깜스런 밤에 우리도 오늘의 일정을 끝까지

완수하고 집으로 !로 찍으며 중부고속도로를 서두르지 않고 달리기

시작한다.


"할배요~ 오늘도 하느님이 우리시간안에 함께 해주신거 믿지요?

"응~ 믿지"


"할배요~ 안경 쓰야지요~!!"



두 번째 순례기.......2023. 05.07

 

낮은 막한 언덕 위에 오늘도 다소곳이 누워있는 형제의 묘가 이 비가 오는데

우짠일이냐고? 반긴다.

살포시 인사를 드리고 오늘은 설마 초가경당이 열려있겠지.... 싶어 재빠르게 걸어가서

밀어보니.... 끄떡도않는다. 실망..




한데.. 뭐꼬?

경당앞 마당에 없었던 십자가길이 얌전스레 앉아 "이리 온나..." 손짓한다.

이번 순례길의 십자가길은 온통 비바람... 눈물바람... 회오리바람...? 을 뚫고

걸어가는 편치않은 걸음길이다.

그래도 입으로는...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새겨 주소서"








예로부터 깊은 신앙의 뿌리로 자리 잡은 신앙 교우촌 원머리

원머리는 이존창이 내포 지역에 복음을 전한 1785년부터 조선 교회의 시작과 함께 교우촌이 형성된 아주 오래된 곳이다.

'원머리'는 갯벌을 개간하여논으로 사용하려고 둑을 쌓은 '언堰의 첫머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신자들은 염판, 어업, 농업에 종사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병인박해 때에 20명의 신자들이 홍주와 해미,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원머리 성지에는 무진박해 때 순교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 두 명의 묘가 마을 한복판에 모셔져 있다.

순교자 묘 인근에는 원머리 공소 강당이 보존되어 있으며, 원머리와 역사를 같이 하는 새터 공소와

음섬 공소의 강당도 잘 보존되어 있다.


차츰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한머리 작은 언덕옆으로 제법 럭셔리한

화장실 두개가 오늘 이 순례길에 따스한 온기와 넉넉함을 안겨주더라~!




+ 주님! 오늘도 본향을 향하여 가는 길,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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