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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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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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6-03 ㅣ No.112386

어릴 때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게 바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덕분에 바둑에 대한 용어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포석은 큰 곳을 보라는 의미입니다. 작은 곳에 연연하면 큰 곳을 놓치게 되고 결국 바둑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말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잡겠다고 내 말을 지키지 못하면 도리어 나의 말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을 욕심내다가는 나의 큰 것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쉽게 내어주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어릴 때 배운 바둑이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학생들은 신학을 배우면서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공동체에는 내규가 있습니다. 함께 살기 때문에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맡겨진 일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 몇 가지 일을 했습니다. 아침이면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을 쳤습니다. 종을 쳐야 하기 때문에 다른 신학생들보다 일찍 성당에 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일찍 일어나는 것은 제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매점을 운영했습니다. 동료들을 위해서 물건을 사와야 했고, 식사를 마치면 동료들 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매점 문을 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매점을 운영해서인지 본당의 재정을 규모 있게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가계부를 쓰고 있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의 용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교구의 신협에서 이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동료 신학생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중도에 그만두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내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규를 지키지 않으면 조금은 편할 수 있습니다. 식사시간, 수업시간, 기도시간, 외출과 외박에 대한 규정들이 때로는 힘들고,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규가 있어야만 공동체가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고, 그런 내규를 지키는 습관이 있어야만 사제가 되어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학교는 다른 것들은 이해하고, 기회를 주지만 내규를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하였습니다. 사제는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를 나를 따라라.” 중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대인들의 고소로 죄인이 되어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었고, 나중에는 군인들이 지키는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2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바오로 사도는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가택연금 중에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과 같습니다. 때로 시련의 비가 내리기도 하고, 고통의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고, 고독과 외로움의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는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멀리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에 있는 꽃들은 멀리서 볼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구름, 바람, 시냇물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미처 피지 못한 꽃도 있고, 색이 바란 꽃도 있고, 이미 시들은 꽃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얼굴도 비슷합니다.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삶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주름도 있고, 점도 있고, 작은 상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허물과 단점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꽃은 분석하고 나누고 평가하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만나는 이웃을 평가하고, 분석하여 판단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측면도 필요하겠지만 거시적인 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땅으로 내려온 사람만이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포복훈련이 있습니다. 철조망 아래에는 진흙탕입니다. 철조망 위로는 실탄이 날아다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군인은 낮은 자세로 철조망을 통과해야 합니다. 머리를 들면 철조망에 다치기 쉽고 옷이 찢겨 질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총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낮은 자세로 기어가야 합니다. 삶의 시련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겸손하게 땅을 향하면 언젠가 하늘로 들어 높여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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