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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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57 - 내가 정말 "에베레스트"를 봤을까?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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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윤 [payatas] 쪽지 캡슐

2021-06-10 ㅣ No.147466

내가 정말 "에베레스트"를 봤을까? 

 

 

포카라에 등반을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히말라야의 끝자락이라도 밟아 볼 생각으로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포카라에는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트레킹코스가 있는데 내가 신청한 것은 가장 쉬운 코스로

 

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다른 일행은 없고 달랑 나와 가이드 둘만이 히말라야로 향했다.

 

간단한 등반 장비도 필요 없이 가이드를 따라가는 코스니

 

트레킹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동네 뒷산을 오르는 정도의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 했건만

 

그래도 히말라야에 품고 있는 산자락이라 그런지 생각과 달리 평생 보지 못한 굉장한 풍경을 경험했다.

 

포카라 시내를 벗어나 꽤 높이 올라가는데도 여전히 길이 이어지고

 

이젠느 더 이상 마을이 없겠다 싶어도

 

거짓말 처럼 산비탈을 깍아 만든 마을과 다랭이 논, 밭들이 나타난다.

 

네팔 자체가 워낙 산악 지형이다보니

 

이렇게 높은 산자락에도 손바닥만한 평지가 있다 싶으면 사람들이 터를 잡고 생활하는 듯 싶다.

 

포카라 시내와 한참 떨어진데다가 산길을 한참 올라와야 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불편한 점들이 많겠지만

 

여행으로 나는 그런 불편함과는 상관없이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덮인 산들이 펼쳐져 있고 주위에는 숲이 있으며 아래에는 그림 같은 구름들이 흘러간다 ,

 

이곳에서는 자동차 소리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인공적인 소리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들릴 것이고 아침에는 새소리에 잠이 것이다,

 

히말라야에 왔으면 적어도 이런 풍경 속에서 지내다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이곳까지 누가 올까 싶을 정도로 외진 곳에도 많지는 않지만 게스트 하우스 들이 있는 것을 보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이 주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것도 많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편의점도 없으니 숙소에서 나오는 음식이 입에 안맞아도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며

 

 모르긴 몰라도 매일 더운물로 샤워할 수도 없을 것이고

 

와이파이도 사용하는에 한계가 있을 듯하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주일 이고 달이고 이런 곳에서 지내고 싶고 그럴 있을 같지만

 

정직하게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삼일 정도 지난 이후에는

 

이상 자연이 주는 호사보다는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찾아 아래로 내려 가게 같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자연이 주는 호사 보다는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대학시절 철학시간에 우리 생활 속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선한 것은 습관들이기가 어렵고 악한 것은 습관들이기가 쉽다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만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본능만큼이나 쉽다, 담배를 배우는 것은 쉽지만 끊는 것은 어렵다,

 

살찌는 것은 쉽지만 빼는 것은 어렵다, 살찌고 싶은 사람들은 반대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원리와 법칙 혹은 관습이나 욕구의 선과 악을 구분할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면서 쉽게 습관 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왔고 자연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것 보다 문명의 편리함에 쉽게 습관이 된다는 것은 

 

문명 전체는 아닐지라도 분명히 요소가 있는 것이고

 

실제로 인간이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자연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누려왔던 모든 문명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은

 

자연이 주는 모든 호사를 누리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며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하여 선한 산다는 것은 인간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리라.

 

 

 

 

 

 

 

트래킹을 하는 동안 눈앞의 높은 봉우리들이 구름에 쌓였다 나타나기를 수시로 반복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짙은 구름에 쌓였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는 중이라고하는데

 

어쩐 구름은 실타래를 풀어 놓은 모양으로 아래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것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비를 내리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높은 산의 날씨는 수시로 변하다고 하더니

 

나같이 멀리서 보는 사람이야 산과 구름이 만들어 내는 변화무쌍한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지만

 

막상 그곳에 있는 사람은 온 몸으로 그 변화무쌍함을 체험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으리라.

 

마치 찰리 체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이다라는 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년설을 얻고 있는 여러 개의 높은 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히말라야를 보니 

 

우리나라 산맥을 보면서도 웅장하고 느꼈던 나에게는


이것이야 말고 지구의 산맥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시각적인 웅장함을 물론이고 그 보다 더 큰 감성적인 웅장함이 먼저 마음에 와 닿는다.

 

과학이 발달해 자체는 그저 무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도 이렇게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데

 

순박했던 그 옛날 사람들이 

 

히말랴야는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했고 두려워했고 경외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산에 오르다’ 혹은 ‘정복하다’라고 표현 하고 우리는 ‘산에 든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는 ‘정복’이라고 표현 할만한 높고 험준한 산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신비감이나 경외감이 덜할 있었을 텐데도 든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산에 대한 존중, 넓게는 자연에 대한 존중의 의미이며 최소한 인간들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산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눈으로 보수 없는 것이나 피부로 느낄 없는 것을 제외하고도

 

나무와 시냇물과 짐승과 새들을 비롯한 온갖 생명체들과 그들의 생명 활동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우리가 정복해야 대상이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저 스쳐가는 대상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들이며 산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도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물론 산에 오르다혹은 정복하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꼭대기 서는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단련하는 과정과 도전 정신까지도 전부 포함하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든다라는 표현 보다 깊이에 있어서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은 

 

단지 내가 한국 사람고 그래서 동양적인 사상에 더 익숙하기 때문만은 아닌듯하다.

 





 

 

이곳까지 왔으니 에베레스트는 봐야지!’ 하는 생각에 가이드에게 어느 산이냐고 물었다,

 

포카라에서 가까이 보이는 산들은 안나푸르나 속하는 것들로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에베레스트는 멀리에 있다,

 

아마도 가장 높은 산을 가리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라며 가이드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니 거기에는 여러 개의 봉우리들이 있고

 

원근 법에 의해서 어느 것이 실제로 가장 높은 산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분명하게 가리켜 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말았다,

 

내가 누군가와 이곳에 다시 와서 저기 산이 에베레스트야라고 알려줘야 일도 없을 것이고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에베레스트를 봤냐고 물어 봤을 봤다라고 해도 거짓이 아닌 것이다,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있는 여러 개의 산중에 분명히 에베레스트가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에레베스트를 보고 안보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는 머리에 눈을 얻고 병풍처럼 펼쳐있는 안나프르나를 보았고 발아래 펼쳐진 구름을 보았고 

 

밑으로 아득한 포카라를 보았다.

 

변화 무쌍한 산봉우리를 보았고 다랭이 마을과 논과 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히말라야의 공기를 피부로 느꼈고 거대한 산맥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래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보지 못했다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정말 에베레스트를 보았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히말라야에 오른 아니라 이기 때문이다. 

 

 

10, 20, 30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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