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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결혼을 앞두고 골치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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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2.114.*]

2008-04-24 ㅣ No.6588

 
   남자가 여자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마리아를 성모로서 설득하기 위하여 가브리엘 대천사를 보내셨을 때 성모님은 성령을 받아
   처녀의 몸으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한 이유에 대해 순명함으로서 응답 하셨습니다.
 
   즉,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아멘'의 원조에 해당하는 성모님의 마음을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여자가 남자를 설득하는 신앙 원리와도 같은 맥락으로서 여기에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살아온 길, 보이지 않는 마음, 대화의 맥등을 잘 짚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 역시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날 여심의 속으로 담는
   심리학 법칙등에 의하여 남심보다 세배 넘게 이혼을 청구하고, 남자 또한 이곳 저곳에서 노상 방뇨를 해야 하는
   역시 동물적 인간의 마음등으로 방관함을 남의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질문자인 청년은 관면혼인을 앞 두고 나름대로 두 사람이 역동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듯 합니다.
   자매에게 가톨릭의 교황 집무실에는 '말이 빠른 사람이나 거친 사람을 멀리하십시오'라는 격자가 붙어 있다
   해 두십시오.  이에 여러가지 부작용이 따를수도 있을테니 가톨릭의 반감을 가지고 있을수 있는 그녀에게
   '천주교에서 그러더라'는 뉘앙스의 신중도에 대해서는 남자로서 배려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시 배려라 하는 것은 가급적 지상에서도 남성이 여성에게 해 줄 때 효과를 얻는 법입니다. '1마일의 넓이와
   1인치의 깊이'에 해당하는 현대의 고전하는 기성 부부들의 질보다 양적팽창 주의 또한 형제의 위기 의식과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세계 2위의 이혼 왕국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연애상의 문제 역시 자칫 그러한
   속단이 미리 올 뿐이지 현재의 종교 애착심등에 대하여 서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물론, 필자역시 형제의 천주교 동경심에 대하여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응원하고 싶은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굳이 세부 설명을 않터라도 잘 알아 나가리라 믿습니다.
 
   형제와 자매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순수와 순진이 어우러진 발상 또한 느껴집니다.
   서두에서 질문한 바와 같이 도무지 쌍날칼을 세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두사람의 '현재'에 있어 과연 배우자의
   신앙을 존중하며 방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란 의구심 문제가 대두됩니다. 반면 티격 태격 계속 싸우되,
   두 사람이 합심하여 신앙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 여건을 잘 활용하면 그 어느 부부보다 행복한 하느님의
   성가정도 시간 문제라 생각되어집니다.
 
   아무튼 형제의 이야기 속에는 젊음 특유의 단순하고 저돌적인 도전의식이 묻어있어 신선함도 얻어갑니다.
   그러나 오늘날 상업 및 퇴폐주의가 훔쳐간 그것이 아닌 두사람 고유의 '에로스의 하느님'론에 대하여 공부를
   더 할 것을 권고합니다. 첫 술에 배부르려 하지 마시고 '시장이 반찬'임의 매우 맛있고 중요한 사랑의 신비를
   깨닫는 절약 정신을 겸하며 두사람이 화해, 일치를 지향하는 그 작전 방안을 함께 숙의해 나가보세요.
 
   이것은 고해전의 성찰 통회 정개등의 준비 원리를 닮아가는 결혼전 한쌍의 좋은 부부예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멀리하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바 없이 섹스욕구등의 충족에 매달려 금새 갈라지는 연인으로 머물기
   쉽상일것입니다.
  
   여자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소속된 개신교회가 어느 종파인지도 알려주도록 해보세요.
 
   2008년 가톨릭 입문성사의 첫 관문인 세례성사외에는 1530년 천주교 사제로서 파계한 1차 개신교 창시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성사를 거부한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세례가 인정될 수 없기에 그들의 세례를 먼저 받는것이 중요한 것
   은 아닙니다. 또한 가톨릭 내에는 다시 성사의 중요성에 대한 회심으로 초교파 개신교 단체등이 이곳 저곳 있는데
   이는 시간을 두고 신앙 쇄신을 통하여 봉헌, 쇄신하면 됩니다.
 
   형제가 여자 친구와의 논쟁등에 피곤하여 민감한 언어들을 여과없이 이곳에 올린 것도 긍정적인 면이 많을 것
   입니다. 세상속의 상업형 사이트등에서는 그것이 더욱 악하고 자요로워 보이기에 영혼이 추한 사람들을 맞으면 대
   책이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세 때에도 천주교 내의 율법, 바리사이 주의자들이 마녀 재판 및 화형등의 시행착
   오를 범하였기에 우리 가톨릭의 우월주의 사상도 경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자에게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는 남자는 폭군 또는 군주 정체형 남편으로 머물기 쉽상입니다. 여인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봄 눈 녹듯 사라지는 질투감이라던가 남자 역시 기를 살려주는 말 몇마디에 연약하기에 보다 미래를 내
   다보는 여인에게 되돌아 올 수 있는 단순함등을 두 사람을 통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또한 결혼성소의 맥일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리를 신성과 인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서로 닮고자 상호의 인성적인
   대화의 맥을 통하여 신성으로의 하느님 아버지와 어머니를 심심치 않게 해 드리는 것이 또한 기도의 즐거움이며
   더 나아가서는 나의 즐거움에 머물지 않는 주님과 나 그리고 이웃과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의 기쁨이 있고 이를 통한 이웃과의 보다 밝고 긍정적인 사고로의 교류를 통한 친교의 기쁨이
   있으며 이것이 발달된 사람은 사회적 성공의 열쇠를 쥐기도 하는데 주님보다 돈 많이 벎의 즐거움에 휩쌓인 사람
   은 '시장이 반찬'인 매우 유익하고 맛있는 반찬의 신비를 잊고 어느새 낭비벽등으로 심하게 젖어있는 자신을 돌아
   보게 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내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영육적으로 부자가 되어 가
   난한 사람을 깔보는 인성에 젖을 수 있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단지 성경적 근거도 싫다는 그녀에게 신중히 차근 차근 설명해 주었다는 것 아주 잘한 일일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미사에 참례할 때 이번엔 두사람이 입당시 성수 구마를 하고 난 뒤, 그리스도의 제대인 반석(베드로 가톨릭 초대 성
   하의 영성도 기억하는 자세로서)에 깊이 절하면서 그것을 바치고 쌓아 올리는 것에도 집중하면 좋을듯 합니다.
 
   아무튼 노래도 보이지 않는 음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의 합의을 목적으로 하는 마음도 주님께 다시 의탁해 보시고
   두 사람이 원하고 있을 그네에 종일 앉아 있어도 다만 평온할 수 있는 남녀의 에로스를 침묵안도 잘 활용하여 훗날
   자연 스럽게 서로를 더욱 인정하는 모습이길 기대해봅니다.
 
   우리나라가 2003년도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낙태 왕국에서 요즘은 인터넷등의 여파로 미국의 6배 낙태왕국
   이 된 현실에서 모처럼 신앙을 가지고 태격 태격하는 예비 부부 한쌍의 이야기를 보며 한편의 흐믓함을 바라보기
   도 합니다. 좋은 방향으로의 여인의 눈치를 보며 예비 부부를 위한 'ME 주말 여정'을 다녀오는 것도 큰 개선의 기억
   으로 남을 것입니다. 목사님, 승려들도 참여하시니 설득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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