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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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다빈치코드를 읽은 친구에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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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211.30.24.*]

2005-01-21 ㅣ No.3215

먼저, 직접 다 빈치 코드를 "꼭" 읽어보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각종 리뷰나 책평론들을 보아도 그 책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잘, 어쩌면 더 잘 알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직접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다른 너무나 좋은 책들도 많고 읽어야 하는데 그런 소설책까지 읽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직접 관련 분야에서 사목하시는 분들은 직접 읽어 보시고 하나 하나 꼼꼼히 따져 보실 필요도 있으시겠지요.

 

다 빈치 코드는 말 그대로 소설입니다.  소설은 허구라는 것, 모두가 다 압니다.  너무나 그럴 듯 할 수록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그 역시 작가의 재주입니다.  다 빈치 코드의 저자 역시 이것은 허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만 제대로 상기해도 이 책 때문에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물론, 문제는 많은 독자들이 이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 빈치의 그림 역시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니라 예술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담은 예술 작품이고, 일부 미술 비평가들은 이제는 더 이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할 만큼 많은 훼손과 복구 작업을 거친 작품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알아도 또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이런 사실들을 사람들은 쉽게 간과합니다.

 

일단, 쓰신 글로 봐서는 아직 직접적으로 친구분이 가톨릭에 대한 회의를 표현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친구분께서도 직접 분별을 하시리라 믿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만약 가톨릭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면 빨리 성당으로 데리고 와서 세례받게 하는 것 보다 본인이 스스로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안드레아 형제님께서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옆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에 대해 질문을 하신 것 같습니다.

 

먼저, 다 빈치 코드는 한 소설가의 "소설"이고, 다 빈치의 그림은 한 화가의 "예술작품"이라는 것 부터 상기시키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 빈치 코드의 내용이 가톨릭 교회가 공격을 받는 여러 이슈들을 이용하여 쓰여진 "허구"라는 것도 말입니다.  그 여러 이슈들은 정말 얼토당토 않은 것들을 물고 늘어지는 웃기는 것들도 있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한번은 묵상하고 넘어가야 할 것들도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도 생각되고, 제가 읽은 많은 서평에서 성직자, 수도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황당무개한 주장들에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지지만, 왜 가톨릭 교회가 그렇게 오해받고 있는 가에 대해서는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이 먼저 스스로를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 보고 난 후에야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조건 우리 가톨릭 교회는 완전무결 완벽하고, 공격하는 인간들은 모두 사악한 인간들이고,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라는 태도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현대에 들어와서 막달라 마리아의 신앙에 대한 많은 재조명이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결혼했다거나 하는 이런 황당무개한 - 지나가는 개도 웃을 - 시각에서의 재조명이 아니라, 남성위주의 유대교 문화에서 출발한 기독교 전통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삶과 신앙이 왜곡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한 것이지요.  저도 얼마전 BBC에서 만든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마귀들렸던 여자라는 것, 창녀였다는 것 등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신학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결혼했다는 이런 황당무개한 주장은 무시하더군요.  다만 예수님의 제자 축에도 끼지 못했던 그저 언저리에서 따라 다녔던 불쌍한 마귀들렸던 창녀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실제로는 신약의 사 복음서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는 이야기가 없는데 우리는 모두 창녀로 알고 있다는 것 등을 비롯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를 제공하더군요.

 

여신 숭배사상과 결합이 되었다는 공격은 처음 듣는데 혹시 성모님 공경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인지...성모님 공격도 사실 제대로 설명해 주면 "아~, 그런 거였어?  진작 이야기 하지" 하는 개신교 신자들도 많습니다.  또한 성모님의 동정성을 공격하기 위해 야고보(제임스)가 예수의 형제였다, 그 근거 중의 하나로 뼈가 묻힌 상자가 발굴 되었는데 거기에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라고 쓰여 있었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바로 며칠 전 그 상자를 발굴한 골동품상이 그 상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기가 교묘하게 조작하여 그 글을 새긴 것이 발각되어 기소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게 설사 진짜 였다 해도,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것을 예수님께 형제가 있었다는 증거로 대지는 못합니다.  왜냐면 야고보, 요셉, 예수 라는 이름들이 너무나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영철, 철수의 아들, 영식의 형제"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도 너무 놀란 적이 있는데, 제 친구의 삼 남매 이름이 순서는 바뀌었지만 서로 전혀 모르는 제 친척 삼남매 이름과 같은 것도 보았습니다.

 

참으로 많은 공격들이 오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태양신 숭배사상 역시 알고 보면 좀 어이 없습니다.  한 예를 들어 우리의 12월 25일 주님 탄생 축일도 원래는 태양신께 제사를 바치는 날이었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게 있는데, 사실 날이 그날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제국에서 만연하던 태양신 숭배의 날을, 그리스도인은 같은 날에 태양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날로 "새롭게 확실히"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남들이 태양신 축제에 들떠 있을때 어영부영 할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는 취지이지요.  이게 바로 가톨릭 신자들이 스스로의 신앙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가톨릭에 대해 이런 저런 공격을 하는데 가톨릭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은 무지에서 나온 것인데,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결국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것이지요.  물론 자신들의 공격을 뒷받침 하기 위해 너무나 그럴 싸한 자료들과 권위들을 가져다 댑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출발을 잘 못 했는데.  석유가 나온다고 갖가지 첨단 우수 장비들을 가져와 땅을 파 대는데, 거기에 석유는 없고 쓰레기만 묻혀 있으면 그게 무슨 헛짓이겠습니까...

 

미국에서는 다 빈치 코드 순례 여행도 있다고 합니다.  다 빈치 코드에서 나오는 여러 관련 장소들을 돌아 다니는 것이라네요.  그 중 한 코스로 다 빈치 코드에서 완전 사악한 집단으로 공격받고 있는 Opus Dei를 돌아 보게 되 있었는데, Opus Dei 측에서 이를 두고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못 오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기회로 이용하자는 것이었답니다.  다 빈치 코드 추종자들이 Opus Dei에 와서 이것 저것 돌아보고, 여러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이들이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지어낸 다 빈치 코드의 저자를 고소하라고 했답니다.  Opus Dei 관계자들은 괜찮다고,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실수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지나가는 산들바람에도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가운데 위로가 되는 것은 가톨릭 교회에서 그런 책들을 강제로 금지시키거나 펄펄 뛰지 않는 것이라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이 책은 이단이다 어쩌니 해서 금서목록도 만들고 했었으나 이제는 신자들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 사사로운 일로 교회의 방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가톨릭 교회가 커지고 넓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물론, 그 만큼 커지고 넓어진 가톨릭 교회 안에서 황당무개한 것들도 난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 기존 시각들에 대한 적절한 재조명도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만 확실히 안다면 스스로의 실수도 볼 수 있고, 남의 황당무개한 주장도 분별할 수 있고, 넘어져도 일어나서 가던 길을 계속 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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