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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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다스림(용서는 분노의 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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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천사 [211.190.172.*]

2005-04-26 ㅣ No.3393

용서..............

 

 

용서하고 양해 한다는 말은 다소 무르게 들린다.

남이 나를 다짜고짜 때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용서 외에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저항 할 수가 없다.

나에게 아무리 지독한 적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용서 천사는  그대로 비천하고 저항력 없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대에게 상처를 주고 그대 마음을 병들게 하는 사람들의 힘으로부터

그대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독일어 "페어차이언"(용서하다)은 "차이언"(꾸짖다, 나무라다)에서 나왔는데

누가 다른 누군가를 지적하여 고발하고 죄를 씌우는 일을 나무란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 말에는 죄지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는 ,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얻게 된

내 권리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의미가 들어 있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용서는 언제나 분노의 끝에 있지 시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용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남아 가한 고통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통의 자각과 나란히 분노도 필요하다.

분노가 마음속에서 고요히 그대가 받은 상처 위로 싹트게 내버려두라,

분노는 그대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으로부터 그대를 떼어놓는 힘이다.

그대를 화나게 하고 상처입힌 다른 사람을 그대는 분노의 힘으로 그대 마음에서 내쫓을 수 있다.

내쫓은 뒤에야 비로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 그 역시 한 인간일 뿐이다, 그역시 상처 받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또는 십자가 위에 예수처럼 이렇게 기도할 수도 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저들은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옵니다"(루가 23.34)

아마 그대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입힐때 내 마음속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킬때 비판으로 나의 민감한 부분을

가차없이 폭로할때,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렇다,

그는 자신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문에 실제로 그대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자기 구조에 자기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업었다.

자신의 위대함을 믿을 수 있는 다른 방도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를 작은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

 

그대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대에게 이제 어떤 힘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분노에 의해 다른 사람의 힘으로 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정말 용서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용서가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상처를 준 사람의 힘으로부터 긍극적으로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것을 감지할 것이다.

 

정말 용서할 수 있기 까지는 종종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갑자기 감정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대의 아버지가 거듭 다시 그대 마음에 상처를 줄때 그대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분노다.

분노는 그대를 아버지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다.아마도 처음에는 분노가 더욱 심해져서 아버지의 가치

절하적 태도나 권위주으적 책망이 더 이상 그대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대 안에 상처를 입힌 칼이 아직 박혀 있는 한 그대는 용서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입을 테니까, 그대는 상처를 헤집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일종의 마조히즘일 수도 있다.그대는 그 상대방을 정말 그대 밖으로 내쫓아야한다.

그래야 참으로 용서할 수 있다.

 

전에는 용서란 말이 단지 자신을 포기하는것, 즉 지독한 운명에 자신을 넘겨주는 것만을 뜻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용서는 언젠가는 정말 그 점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으로부터 결코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결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용서란 다른 사람이 입힌 상처로부터 그대가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그래야 용서가 그대의 상처를 치유한다.

한 강좌에서 참석자들에게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고통과 분노를 지각한 뒤에 용서할 수 있었던

세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마음을 찌르는

옛 상처 주위에 맴돌고 있는지를 감지했다.

 

아마 그들에게는 용서 천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여전히 그들을 결정짓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

용서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처는 나를 마비 시킨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앗아간다.

그래서 많은 이가 건강해질 수 없는 것이다.

용서하는 일을 결코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용서 천사는 그대에게 여유를 주고 있다.

그는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인간 공동생활은 용서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 상처주는 일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상처받은 것을 따지려 한다면 우리 마음릉 해치는 악마들의 활동 영역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상처를 간과하고 지나간다면 우리 안에 악감정과 공격심이 생겨나서 기회가 되면 질책과 비판과 증오의

형태로 다시 분출될 것이다.

용서 천사는 복수 악마의 활동권을 차단 시킨다.

분위기를 정화시켜 상처를 박으면서 동시에 거듭 새삼 상처를 주는 우리들에게서도 인간 공동체가

가능하도록 이끌고 있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올해 만날 50천사 중 용서 천사 에서......)

 

용서 하세요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이 너무 아프니까요......

 

화 내지 마세요.

화를 내면 당신이 너무 상처를 받으니까요.......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영원히 교우님께 머무르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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