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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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2 -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 이기양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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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5-12 ㅣ No.111976




2017
05 12 () 가해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사도행전 13,26-33
요한복음 14,1-6


이기양 요셉 신부님


<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


어제 있었던 예비신자 교리 시간에 질문을 하나 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정의 화목이나 마음의 평화, 또 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화목과 평화, 또 건강이나 자녀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가지만 사회의 흐름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이 평화롭습니까?
유사이래 지금처럼 많은 가정이 파괴된 때가 없고,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이 시대처럼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역사이래 오늘날처럼 수명이 연장된 때도 없는데 유난히 건강 조바심을 내는 시대가 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생각으로는 중요하다고 꼽고 있는 가정의 화목이나 마음의 평화가 실은 반대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마음의 평화를 원하고 가정의 화목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역사이래 지금처럼 불안하고 갈증에 허덕이며 우울증으로 자살률이 매년 최고조로 갱신되는 때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왜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덕목과는 반대로 가고 있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돈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가정의 평화를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하지요. 부자가 되면 가정이 평안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돈을 많이 모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치료를 잘 받으며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아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돈만을 쫓다가 결국 가정을 파괴시키고 건강을 해친 후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요. 돈이 모든 것을 가져와 주리라고 믿고 그나마 있던 평화와 건강마저 없애가며 추구했지만 얻은 것은 더 큰 공허감뿐이었습니다.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에 기대를 하고 살아온 것이지요. 가정이 중요하고 평화가 중요하고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돈 때문에 가정을 파괴시키고 돈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돈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지요. 목적과 방법이 전도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 한복판에 커다란 잎을 가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이 나무 바로 옆에는 조그만 샘이 하나 있었는데 근방에 우물이나 오아시스가 없기에 그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에게는 더 없는 휴식 장소이자 목을 축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지요. 그러나 뜨거운 사막에서 생명의 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 샘은 주인이 있었습니다. 샘의 주인은 나그네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받고 물을 마시게 해주었는데, 사람들은 너무나 목이 마른 나머지 돈을 주고서라도 물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샘을 둘러보던 주인은 나무의 커다란 잎마다에 이슬이 송송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인은 생각했지요.
“나무에 웬 물이지? 만약 나무가 없다면 나무가 흡수하고 있는 물이 모두 샘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샘물은 더욱 불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물을 먹어 돈을 잘 벌 수 있겠지!
샘의 주인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이슬인지 깨닫지 못하고 나무를 베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생각과는 달리 나무를 베어버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샘물은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햇볕을 가려주고 모래 바람을 막아주던 나무를 잃은 샘에서 물이 솟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지요. 태양은 더욱 뜨겁게 내리쬐어 샘을 마르게 했고 나무와 샘이 없는 그 샘터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샘물 주인은 더 많은 돈에 욕심을 부리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 곧 당신이 모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시대는 “나는”이 “예수님”이 아니라 “돈”인 것 같습니다. “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가 된 것이지요.
이렇게 살다 보니까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만 것입니다. 가정도, 이웃 간의 관계도, 형제 간의 관계도, 또 지금까지 누려왔던 마음의 평화와 건강 등 모든 개념이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부모 자식 간에는 분명히 효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돈이 끼어 들면 남남처럼 지내게 됩니다. 형제 간에도 이웃 간에도, 스승과 제자 간에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가장 불안하고 목마르며 절망의 끝인 자살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정이 화목하고 마음에는 평화가 있으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

여기서 “나는”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 예수님이 되어야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시면 자연히 우리 삶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 자식 간에 효가 바탕이 되지요.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이 “부모에게 효도하여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효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을 따르며 사는데 어떻게 돈 때문에 형제와 등지고 살겠습니까? 또 가난한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이웃 사랑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늙는 것에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요. 그러나 하느님을 믿지 않고 영생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백 년 이백 년을 살아도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이 겁날 수밖에 없지요. 우리 시대의 이 혼란스러움이 다시 평화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길은 오늘 복음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

예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면 다른 것들도 자리잡아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도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실제로 사는 것은 ‘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혼란과 불안, 파괴와 절망, 우울증은 끊이지 않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14,5) 하고 묻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될 때 그 삶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우리가 원하는 참된 평화와 화목, 건강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 하느님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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