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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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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1-06-26 ㅣ No.147867

 

이 세상에서 붙들 수가 없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시간입니다. 마음 떠난 여인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동력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게 바로 시간이라는 물리입니다. 시간이라는 인생 열차는 어김없이 언젠가는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은 들어갔던 숨이 나오지 않는 순간입니다. 그 시간은 누구나 오게 되어 있습니다. 좀 더 빨리 오고 좀 더 늦게 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놓치고 다시 그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경험을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천국행 버스를 좀 일찍 타고 가느냐 좀 늦게 타고 가느냐 그 차이일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병원에 있으면서 그냥 입원했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남은 인생이 보름 남았다고 묵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좀 더 실감난 묵상을 한번 해보려고 그렇게 설정을 했던 것입니다. 위령성월도 아닌데 어쩌면 죽음을 좀 색다르게 묵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리 표현을 하면 죽음을 묵상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인간의 삶을 묵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만약 한 인간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면 무엇을 되돌아봐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제일 많이 생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하느님 앞에 가게 된다. 싫든 싫지 않든 나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백일하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다. 처음 하느님을 뵈었을 때 그때 그 순간 하느님의 표정 속에 저의 모든 인생이 다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느님이 제 인생을 총결산하실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미 결산은 지상에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어느 시점에서 다 끝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느님의 결산이 이루어진 이후에 마지막 결심공판에서 선고만을 확인하러 하느님께 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결산은 이루어진 후에라도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자신의 남은 삶을 마저 다 채우고 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결산이 완료된 시점부터 마지막 최후의 숨을 내쉬는 시간까지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자신의 시간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시간은 결산이 마친 시간까지입니다. 이미 자신의 운명의 시간은 그때 정해졌을 겁니다. 다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바로 죽기 전까지의 시간이 될 거라고 묵상했습니다. 그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그 사람 개인 개인에게 주시는 회개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시간을 사는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회개의 시간이라는 시간을 인생이라고 착각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회개의 시간이 긴 사람과 짧은 사람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 결정할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인간은 나약합니다. 그래서 살면서 무수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하느님 앞에서는 죄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는 자리가 될 수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마지막 그 시간에 자신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우리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이미 세상에서 그 죗값을 차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에 대한 수단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또 그에 대한 보속을 이미 세상에서 하면서 하느님의 결산에서 미리 차감하는 삶을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차감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고해성사라는 법을 통해서 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속량이 될 것입니다. 이 속량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속량이 있을 겁니다. 바로 사랑일 겁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이웃에게 뿌린 사랑일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육을 입고 있는 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 죄를 이웃사랑이라는 세제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것일 것입니다. 그 죄를 씻는 시간이 바로 보속의 시간이고 회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각자 자신에게 주신 인생이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가 일명 말하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그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그냥 하늘에서 툭하고 마구 쓸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의 시간인 줄 알고 일평생을 허비한 사람의 마지막은 어떨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이 정도의 서술의 내용을 이해하면 어떨지는 상상이 갈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저의 상상이고 묵상입니다. 제가 보름간 묵상한 것을 다 표현을 할 수가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착각하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간단한 결론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신의 죄를 살면서 씻고 해도 온전히 깨끗이 하지 못하고 바쁜 기결수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남의 죄를 보고 이러쿵저러쿵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 그대로 어리석은 중생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종 자신의 운명의 시간을 되돌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며 사는 인생이 되지 않아야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수레바퀴가 잘 돌아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무사히 우리를 잘 인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수레바퀴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수레바퀴의 운명은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인생이라는 최후의 숨이 멎는 시간 앞에서 우리의 지나온 삶을 바라본다면 모든 사람이 아마 한결같이 느끼는 게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살아온 인간의 욕망과 욕정 이런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욕망이었다는 것과 다 모래성 위에 짓는 허상과도 같은 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걸 그때 아는 사람과 그걸 미리 아는 사람과의 차이는 무엇일까는 각자 개인이 한번 답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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