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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렉산더>를 통해 본 인간의 유한함과 욕망의 덧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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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6-10-16 ㅣ No.767

영화 <알렉산더>를 통해 본 인간의 유한함과 욕망의 덧없음
    
▲ 올리버 스톤의 영화 <알렉산더> 포스터.
ⓒ2005 영화홈페이지
베트남전 연작 시리즈인 <플래툰> <7월 4일생> <하늘과 땅>, 록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의 생애를 다룬 <도어스> 등의 영화를 통해 1960년대 미국의 정치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탁월하게 묘사해온 올리버 스톤 감독이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기원전 4세기로 날아갔다.

거장, 2400여 년 전 마케도니아로 향하다

미국을 떠나 멀리 마케도니아에 도착한 연출경력 30여 년의 베테랑을 매혹한 소재는 30대 초반에 지구의 절반을 제 발 아래 무릎 꿇리고 통치한 영웅의 전설이다.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이 원(元)의 기병(騎兵)을 앞세워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잇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알렉산더가 죽은지 1600년이나 지나서였다. 최초의 거대왕국 지배자이자 정복자.

2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제작비에 각종 영화관련 매체가 앞을 다투어 전한 것처럼 <알렉산더>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하다. 피와 살점이 튀는 전투장면의 사실적 묘사를 위해 수만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고, 당대 의상의 생생한 재현과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웅장한 화면은 관객을 압도한다.

뿐이랴, 영화 한 편 당 출연료가 적게는 수백만에서 많게는 수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스타들이 대거 등장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알렉산더 역의 콜린 패럴과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 역할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 아버지 필립으로 분한 발 킬머에 노장 안소니 홉킨스까지.

이런 외형적 화려함에 비한다면 영화의 줄거리는 초라하리만치 간단하다. 넘쳐나는 권력욕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가 급작스런 부왕(父王)의 죽음으로 스무 살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이후 페르시아와 유럽은 물론 혹한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아시아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와 인도까지 진군해 들어가 '알렉산드리아'라는 식민도시를 세우며 승승장구한다는 이야기.

패배를 모르는 왕이라고 외롭지 않을까?

하지만, 거장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 올리버 스톤은 이 단순하고도 간명한 이야기 속에 '보석' 하나를 숨긴다.

▲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 꿇리고도 외로움의 병을 앓는 알렉산더.
ⓒ2005 영화홈페이지
그는 이미 전작 <닉슨>을 통해 미 정치사상 가장 큰 스캔들 중의 하나인 '워터게이트'에 직면한 대통령 닉슨의 인간성 황폐화 과정을 보여줬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받고 세상으로부터 박탈감만 맛본 두 명의 살인마 이야기인 <킬러(원제:Natural Born Killers)>를 연출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건 '도피처 없는 외로움'이란 사실을 설파한 바 있다.

올리버 스톤의 '인간'에 대한 연구는 <알렉산더>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수만 명 군사의 생사여탈권을 관장하는 사령관이자, 두 대륙을 지배하는 통치자이며, 만인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인 '대왕' 알렉산더. 그러나, 그런 지위와는 관계없이 '서른 살 청년' 알렉산더는 늘상 무언가의 결핍과 고독에 힘겨워 한다.

상영시간 내내 영화에 집중한 관객이라면 그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을 것이다.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대상인 어머니 올림피아와의 관계. 그 기이한 관계로 인한 숨막힘과 설핏 비춰지는 근친상간의 이미지. 어린 시절 친구인 헤파이션 장군과의 미묘한 감정 엇갈림. 그리고, '알렉산더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었다'는 암시. 거기에 어느 신하도 이해하지 못했던 고산족 공주와의 급작스런 결혼결정까지.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이쯤에서 충분히 감독이 숨겨놓은 '보석'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다.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보석은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탐구'였다. 칼바람 휘몰아치는 설산(雪山)의 정상에 서서 자신이 걸어야 할 끝없는 길을 내려다보는 알렉산더의 쓸쓸한 뒷모습은 인상적이다.

4만의 군사로 25만의 적군을 궤멸시키고, 누구도 따르지 못할 용기로 중앙아시아 정복에 나선 영웅이 아닌 다른 병사와 마찬가지로 추위에 떨 수밖에 없고, 미래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에 움츠러든 알렉산더의 모습. 그도 결국엔 '인간'이었던 것이다. 한없이 나약하고, 나약하기에 자신의 악행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인간, 외로움과 욕망에 가뭇없이 휘둘리는 인간 말이다.

유한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알렉산더는 겨우 33년을 지상에 머물다 갔다. 그러나 천 년 아니, 만 년을 살 것처럼 '새로운 영토'를 끊임없이 욕망했다. 한 사람의 정복욕이 부른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십, 수백만의 사람이 죽어갔다. 무릇 '유한한' 인간의 불행이란 '무한한' 욕망에서 잉태되는 법. 비단 알렉산더의 경우만이 아니다.

게르만 민족주의를 무기로 세계를 전쟁의 화염 속에 빠뜨린 히틀러의 욕망, 아시아 지배를 위해 가혹한 식민통치를 자행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욕망, 자국의 안정적인 원유수급을 위해 타민족 머리 위에 폭탄을 쏟아 부은 조지 부시와 네오콘의 욕망. 그들의 욕망은 인류를 불행하게 했고, 지금도 우리를 상처 속에 살게 만든 '악(惡)'이다.

▲ 한 인간의 정복욕은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불렀다. 영화의 한 장면.
ⓒ2005 영화홈페이지
올리버 스톤 정도라면 이 사실을 방기할 리 없다. 분명, 웅장한 전투장면과 아랍 댄서들의 매혹적인 춤 장면 뒤에 '무언가'를 숨겨두고 관객들이 자신의 의도를 읽어내주기 기대했을 법하다.

그렇다면 혹, 올리버 스톤은 영화 <알렉산더>를 통해 우리에게 이런 귀띔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거지건, 세계의 절반을 장악한 영웅이건 언젠가는 죽는다.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인 무력한 인간에게 욕망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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