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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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바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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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tenghong] 쪽지 캡슐

2010-07-19 ㅣ No.57427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12,38-42)

제가 좋아하는 친구부부가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하느님을 모르는 친구들이고,
자신들의 삶이 힘들어지자,
어딘가에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난데없이 부처님을 믿겠다는 통보를 하였습니다.

'아니! 젊디젊은 사람들이 불교 입문이라니?'
뭐, 젊다고 부처님 못 믿으라는 법은 없지만,
솔직히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그토록 입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 이야기를 전했음에도,
부처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그 친구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던 저였습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불교를 믿고자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친구부부의 대답은 더 황당했습니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위로를 받고 싶거나,
필요할때만 찾아 볼수 있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더라는것 이었습니다.

'참, 이기적인 사람들 같으니라구!'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기자신을 먼저 '보호' 하려는 성향이 강하구나...
자신의 삶에 새로운 '변화' 가 찾아 드는것을 두려워 하는구나...
주고 받는 식의 사랑이 아닌, 받기만 하는 사랑만 하겠다는것 이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습니다.

또 한친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친구도 제가 참 좋아하는 어린아이같이 순박한 사람 입니다.
요즘도 어느날 갑자기 배낭하나 달랑 매고,
내키는 대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날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제가 날을 잡고 그 친구와 단둘이 앉아 하느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제게,
그 친구는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을 요약하자면,

언젠가 화장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중,
갑자기 '하느님' 이란 존재가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기도 아닌 기도를 시작했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정말 존재하신다면,
 지금 내 앞에 나타나 보십시요!
 만일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나 당신의 존재를 보여 주신다면,
 내가 안믿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장 믿을테니, 어디 한번 나타나 보시지요!'

하였더랍니다...
저는 속으로, '참나, 감히 누가 누구한테 나타나 보라 마라야?' 화가 치밀었습니다.
내심 역정이 났던 저는 그 친구에게 강한 충격 요법을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 친구 말이 눈앞에 나타나는게 어려우면,
귀로 듣게 무슨 말이 라도 해보시라 하였다기에,
제가, '혹시 네가 준비 되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여 주실수도,
당신의 말씀을 들려 주실수도 없었을지 모를일 이니,
만일 내가 하느님을 보고 들었다 하면 믿어 주겠느냐.' 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흥쾌히 '그럼!'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때는 이때다 싶어 강하게! 말했지요.
"내가 보고 들었으니, 그럼 이제 믿어라!"

한동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말 못하던 그 친구는,
황급히 자리를 떳고, 그 이후로 하느님 믿는다는 말은 여전히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깨달았습니다.
어떠한 이유를 들어 요구사항과 조건을 달고,
하느님을 믿겠노라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표징이나 기적도 무용지물 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의심을 멈추지 않고,
작은 틈을 찾아 빠져나갈 궁리만 머릿속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친구는 일생을 '이성' 과 '논리' 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셔널 지오그래피' 가 사람 참 버려놨구나...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곳에 소개 된 이야기는, 가설이 사실로 둔갑이 됩니다.
혹시 그런 과학적인 증명이 불가한 일들은,
그 친구 앞에서 감히 입도 뻥끗 할수 없을 만큼,
불신과 거부감이 심합니다.

어느날 그 친구에게도 하느님의 빛이 찾아 왔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서,
어거지로 세례를 받게된 것이지요.
처가에서 반강제로 받게한 세례였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저로서는 너무나 기쁜일 이었습니다.

'아! 저 친구에게도,
 드디어 하느님의 빛이 당도하시는 구나!'
진심으로 기뻤고,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세례를 받고나서 얼마후...
세례식후에 한번도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인 친구의 아내 마저도 냉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해명은 이러했습니다.

'신적인 존재는 반드시 있고, 나도 믿는다.
 그 신의 이름이 '하느님' 이라고 하면,
 그런줄로 알고 믿겠다.
 그렇지만, 예수라는 존재는 믿을수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것 이다.'

남편의 어리석은 이성과 논리 덕분에 아내까지 냉담에 들어간 그 친구집은,
아직도 그렇게 냉담중에 있습니다.
그 가정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렵사리 하느님 품안에 들어온 자식임에도,
그 눈을 하느님께 맞추지 않고,
엉뚱한 곳만 향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처럼,
하느님께 대한 표징의 요구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며, 앞으로도 그러할것 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사람의 '호기심' 이 아니라,
하느님을 '부정' 하기 위한 사람의 '방편' 이기때문입니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은,
먼저 부정하거나, 발뺌하고 보는 것이 사람입니다.
일단 그 안에 속하고 싶지 않기에,
구차하게도 변명과 핑게거리를 찾아 내기 바쁜것 이지요.

그중에 가장 강력한 변명과 핑게거리는,
'나' 의 부족한 믿음 때문이 아닌,
'너' 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하느님께 뒤집어 씌우기 작전 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느님께 표징을 구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내가 부족해 못믿은 것이 아닙니다.
 나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게 보여주지 않으셨기에,
 내가 믿지 못할수밖에 없는것 입니다.
 이것은 나를 믿게 만들지 못하신 당신의 탓이 큽니다'
라고 말하는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녀들에게 특혜를 주시기 위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자신을 숨기십니다.
그들의 극성스러운 요구에도 결코 귀 길울이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느님을 믿고 온전히 의탁하는 당신의 신실한 자녀들에게만,
특별히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심으로서,
우리들만의 보물을 간직하기 위해 그러하신것 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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