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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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인아'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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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순 [zjungder] 쪽지 캡슐

2010-08-04 ㅣ No.57771

<아 여인아!> (마태 15,21-28)

 -유광수 신부-

 

우리는 오늘 믿음이 큰 여인을 만남으로써 정말 믿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묵상하게 된다. 교회는 이런 큰 믿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 활성화되고, 가르침을 주고, 이어져 나간다. 그리고 병든 이들이 치유 받는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 큰 이 여인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깨닫도록 하자.

 

우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 곳을 떠나"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예수님이 떠난 그곳은 어떤 곳인가? 예수님이 떠나 온 그 곳을 간단히 말하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15,8-9)라고 말씀하셨던 대로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고 입술로만 주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주님을 헛되이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눈먼 이들,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사람의 규정을 복음보다 더 중요하게 가르치면서 헛되이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에게는 복음이 소에 경 읽기와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시어 이방인들이 사는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 가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 지역인 그곳에서 이번에는 어떤 여인이 주님을 만나러 나왔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그곳에서 떠나 아예 믿음이 없는 지역인 이방인의 지역으로 가셨는데 믿음이 없는 이들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서 여인이 나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그러니까 여인은 믿음이 없는 지역을 떠나 나온 것이고 예수님은 믿는 이들이 있는 곳이지만 믿음이 없는 이들을 떠나 이방인이 사는 곳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과 여인의 만남은 믿는 이의 만남이다. 비록 이방인의 지역에서 사는 여인이었지만 이 여인은 얼마나 큰 믿음이었는 가를 알 수 있다.

 

믿음은 믿음이 있는 이를 찾아 나서서 결국은 믿음이 있는 이를 만나지만 그래서 더욱 큰 믿음으로 성숙되고 큰 은총도 받지만 반대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 믿지 않고 입술로만 공경한다고 하는 진실한 믿음이 없는 이는 오히려 믿음이 있는 이를 떠나 보내고 "자녀들의 빵"마저도 찾아 먹지 못하고 빼앗긴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이는 비록 신분이 형편없고, 은총을 받을 자격도 없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은혜를 받는다. 결국 은혜는 장소나 신분이나, 지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한 믿음을 갖고 참 믿음을 계속해서 성숙시켜 나가려는 갈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여인을 보면서 큰 믿음을 가지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다.


이 여인의 믿음이 성숙하는데 몇 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이 여인은 믿음이 없는 그 곳에서 나와 믿음이 있는 예수님께로 왔다는 것이다. 믿음을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예수님께로 나온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요, 모험이다. 우리도 우리의 믿음이 성장되려면 이런 용기와 모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믿음이 없는 이들과 같이 어울리고 다니면 우리의 믿음은 점 점 더 믿음에서 멀어져 간다.

 

즉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고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들과 어울리면 나의 믿음 생활도 입술로만 주님을 공경하는 믿음 생활이 될 것이다. 또 우리 신앙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생명인 복음을 읽고 묵상은 하지 않고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복음 아닌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면 나의 신앙생활도 복음이 중심이 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사람의 규정을 마치 복음인양 가르치며 주님을 헛되이 섬기는 신앙생활로 타락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가 만나는 어려움을 잘 극복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청하는 대로 금방 무엇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여인이 큰 소리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대로는 우리의 간청에 침묵으로 일관하실 때가 있다.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려면 예수님의 이 침묵을 견뎌내야 한다. 침묵은 무응답이 아니라 무언의 말이다. 무관심이 아니다. 침묵은 우리의 소리를 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침묵의 언어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주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세 번째는 우리 믿음의 성숙을 방해하는 잡소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 가
"저 여자를 돌려 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지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듯이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잡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소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자주 외딴 곳에 가 주님과 함께 머물도록 해야 한다. 


네 번째는 예수님은 때로는 우리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하실 때가 있다.

어떻게 들으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불신하고 조롱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보냄을 받았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전혀 당신과는 관계없는 사람처럼 또는 귀찮아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을 때 거부하지 말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아듣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또 주위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더라도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여인처럼 비록 예수님한테 청을 들였다가 오히려 모욕을 받는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본래 갖었던 그 믿음으로 그리고 그런 순순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고
"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하고 간곡하게 청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예수님이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무시하는 듯한 말씀을 하였지만 여인은 그 말씀에 화를 내거나 반항하는 자세가 아니라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무조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이다.

 

아무튼 우리의 믿음이 큰 믿음으로 성숙되기 위해서는 나의 믿음을 방해하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그런 장소나 분위기, 그런 말들과 행동들에서부터 떠나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나의 믿음의 성숙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나의 믿음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또는 믿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라는 것은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정녕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칭찬이 바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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