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집착과 사랑의 차이

스크랩 인쇄

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8-17 ㅣ No.58049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20주간 화요일 - 집착과 사랑의 차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한 수녀님께서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대부분의 고민들은 역시 공동생활을 하는 동료 수녀님들과의 갈등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것들보다 더 큰 고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고민에 비하면 다른 수녀님들과의 갈등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고민은 바로 누군가가 수녀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그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사람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밀쳐냈습니다. 물론 그 분도 잘 이해하고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슬퍼할까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녀님도 사람인지라 당신도 어느 정도는 좋은 감정을 가졌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힘든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밀쳐내야 한다는 현실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밀쳐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밀쳐내야만 할 때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신부님, 수녀님들도 성인이 아닌 이상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없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런 감정들이 일어나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런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집착이 될 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지, 집착이 사랑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프리카에서 욕심 많은 새를 잡는 방법입니다. 맛이 짠 먹이와 충분한 물을 함께 놓아두면 됩니다. 그 새들은 먹이를 먹고 물을 먹고를 반복하다가 자신들도 모르게 배가 불러 날지를 못하게 됩니다. 사냥꾼이 오면 짧은 다리로 퍼덕이며 도망을 가지만 몸이 무거워 손쉽게 잡힙니다.

이것이 집착입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걸림돌이 되어 하느님께 날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집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도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사람을 더 가볍게 만들어 하늘까지 날아올라갈 수 있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오늘 무소유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도, “버린 것은 무엇이나 100배로 받게 된다.”는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저는 ‘약속’이란 영화에서 박신양이 술이 취하여 노숙자의 가방을 빼앗으려고 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노숙자는 자신의 전 재산인 가방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지만 결국 빼앗기고 맙니다. 가방을 털어보니 신문지와 옷 몇 개만 들어있습니다. 주인공은 웃으며 가방과 나머지 것들을 그 앞에서 버리고 대신 행려자에게 수표를 한 장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도 더 많이 주시기 위하여 우리가 집착하는 작은 것들을 빼앗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잡고 움켜쥔 손이 아니라 자유롭게 펼쳐진 손이 먼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버리는 것은 무엇이나 100배로 채워주신다면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버렸는지 안 버렸는지는 내가 받게 되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소자들은 부모님을 버렸기 때문에 주님께서 맺어주신 수많은 부모님들이 생겼고 집을 버렸기 때문에 가톨릭 시설 어디에서나 잘 수 있게 되었으며 형제들을 버렸기에 수많은 믿음의 형제들을 얻게 되었고 역시 영적인 많은 자녀들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애정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한 사람의 사랑에 집착한다면 많은 사랑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 아버지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고 아버지로부터 인간이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았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그리스도와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떠남으로서 교회의 수많은 사랑을 얻은 것입니다.

집착은 한 사람의 사랑을 얻으려고 많은 사랑을 잃게 만들지만, 참 사랑은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을 잃게 만들고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정말 애인을 버리고 성소를 택한 사람이라면 사랑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랑도 그리스도의 자리엔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좋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면 배우자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를 덜 사랑해서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한 것이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온전히 애정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한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그래서 밀쳐내야만 하는 무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나 수도자들은 애인을 버렸다면 두려움 없이 만인의 연인이 되어야합니다. 누가 봐도 순결하고 영적인 만인의 연인이 되어야 그리스도를 위하여 애인까지도 버린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의 일치를 위해서 한 개인과 혼인하지 않고 교회의 신랑이 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해 한 사람과의 혼인을 버리고 교회와 혼인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집착은 하나를 좋아하면 다른 것을 잃게 만들지만 참다운 사랑은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만들고 많은 사랑을 얻게 합니다.

 

 

 
< 그대를 향한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1,529 2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