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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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다빈치코드를 읽은 친구에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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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66.67.225.*]

2005-01-23 ㅣ No.3217

벌써 윗분이 너무 좋은 답변을 써주셔서 저는 그저 간략히 덧붙일까 합니다.

저도 며칠전에 다빈치 코드를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에 미술쟁이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서 줏어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음모론이 되는 이 소설을 꽤나 즐겨 읽었습니다. 결론은 이 소설에서 가톨릭의 핵심을 흔들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이 정확히 언제인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알기론 어느 공의회에서 12월 초부터 1월 중순 중의 날짜 세개를 놓고 합의를 통해 12월 25일로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봄에는 궃은 날씨, 4월 경부터 날씨가 풀리는 유럽의 기후에 맞추어 사순, 부활이 놓이도록 날짜가 잡혀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요는 예수님의 탄생일을 맞아 우리가 그 의미를 되새기고 경축하자는 데에 있는 것이지, 그 정확한 날짜가 24일 12시 정각인지 25일 밤 1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신 축제와 이교 숭배를 견제하기 위해 날짜와 전나무 트리 장식을 지금처럼 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저 그럴 수도 있겠군하며 넘어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기독교가 ''여신이 중요한 반쪽을 차지하던 이교''를 탄압하면서 고의적으로 여신 숭배를 악마적인 것으로 몰아가서 결국 반쪽의 세계. 남성만의 세계. 테스토스테론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 냈다.. 고 주장합니다. 저도 실제로 신약을 읽으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인 예수님에게 감탄하고, 상대적으로 유대 사회의 계율에 젖어있는 사도들이 성차별적이다라는 발칙한 생각을^^ 해보긴 했습니다. 허나 사도들은 잠에 빠지고, 배반하고 무지하기도 했던 ''인간''입니다. 하느님과 그 아래 천사들, 천국의 영혼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들이라고 성서에 나와있습니다. 윗분께서 ''여신 숭배란 혹시 성모 공경을 빗댄 말이냐''라고 착각하실 정도로 천주교에서는 성모 공경에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일부 개신교에서 ''성모님을 신격화한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성모님은 우리의 전구자로서 예수님의 곁에서 자리 매김하고 계십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교리를 보면 교회의 성모님 공경이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보실 수 있습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교회를 물려받았음에도 ''여자이기 때문에'' 창녀로 폠훼된다거나, 예수가 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신성에 흠이 되기 때문에'' 예수의 직계들을 암살하려 해왔다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한 억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 소설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하며 읽다가도, 가끔씩 보이는 저자의 얄팍한 단정에 문득 그가 쌓아올리던 음모가 유리장처럼 깨져버리는 느낌이 들어 사뭇 안타까운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조금 인용해보자면,

 

''....기독교의 상징이 된 한쪽 다리가 긴 라틴 십자가는 원래 로마인들이 쓰던 고문 도구였다. 랭던은 항상 놀라웠다. 십자가 위에 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이름 자체에서 드러나는 잔혹한 상징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자가(crucifix)라는 말은 라틴어 동사 ''크루시아레(cruciare)''에서 왔는데, 이 말은 ''고문하다''라는 뜻이다.''

 

주인공은 이렇듯 시종 일관 ''기독교인들이 자신도 모른체 이교의 상징을 써오면서 허구의 세계를 쌓아왔다''라는 뉘앙스를 비추고 있는데, 십자가가 고문 도구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독교인이 있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끝없이 거룩한 존재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비참하고 굴욕스러운 고문 도구 위에서 스스로를 희생하셨다는, 그 어마어마한 간극이 기독교인들에게 더할 수 없는 감동과 참회를 불러 일으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희생으로 십자가는 더이상 굴욕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말은 교리 시간에 몇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상징의 숨겨진 의미들을 소개해주는 것은 흥미로웠으나, 상징의 의미를 고정불변으로 보려하는 태도는 약간 거북스러웠습니다. 고대의 식인 습관, 다신, 제의 중 성행위 등등의 종교들이 득세하다가  점차 식인대신 다른 제물을 바치는 제의 형태, 일신교쪽의 종교들로 자리바꿈되듯이 상징들도 성장 발달을 합니다.

 

이야기가 두서없이 옆으로 샌 듯 하네요. 믿음의 본질을 보는 사람은 얕은 지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넓은 ''가톨릭''인이라면 비난과 음모 중 긍정적인 비평을 골라내어 더욱 공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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