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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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너와 나는 하느님의 탁월한 걸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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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59.86.231.*]

2007-06-09 ㅣ No.5475

 

단순하고 여린듯한 자매님 글 잘 보았습니다.

자매님이 착하고 소심한 분인것 같네요. 문맥으로 보아 성사생활도 열심할 소지가 풍성하기에

하느님께서 애쓰신 남자 친구의 세례 은사도 열린 마음이었기에 나누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 속이라는 방을 깨끗이 치우면 그 안에서 활동하던 마귀가 사라졌다가 더 큰 일곱 마귀를 데리고 들어온다는 성경 말씀이 있답니다. 이는 바로 자매님같은 분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아니 이 땅의 어둠의 세력들이 그들을 주님께로 보내고자 헌신하는 평화의 도구들의 마음과 섞이는 과정에서 그것을 어지럽히고 방해하는 현상이랍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부족한 그 것들을 마음의 비밀법정으로 제단하고 또는 그것의 공과 사를 망각한 채 태클을 걸고 그러는 것 자매님도 잘 아시리라 봐요. 이것이 누구의 탓이라고 보시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탓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며 내 마음의 창을 세번 두드리는 미사의 은사를 시작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명동의 어느 땅도 사람들에게 많이 밟힐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비싸집니다. 그런가 하면 또다시 비싼 맘으로 '나홀로 신앙'에 젖는다면 상처를 나눌 수 있는 성직자, 또는 교우들과의 친교 활동을 회피하게 됨으로써 나는 결국 덤핑이나 싼 가격으로 세상에 되 팔아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도 신앙생활은 보편 다수가 '나의 평화'를 위하여 입문하지만 '이타적인 평화'라는 그 어려운 신앙생활을 배우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교우들이 걸려 넘어지거나 다시 쉬는 교우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일단 신앙은 과정도 매우 소중한 관계이기에 또한 수만 광년의 거리 우주조차 모두 주관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우리가 알 수 없을 때가 많기에 성부와 성모님을 닮고자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자매님께 말씀하신 첫 영성체론은 그 과정에서 그 것을 가타 부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과적인 입장에서 과연 자매님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1. 많이 밟히는 땅이 비싸듯 나 역시 흙으로 돌아가 성체를 영하는 평화의 도구로써 주님을 영접하게 해주세요.

 

2. 삼위일체 은총을 지향하는 나이기에 또한 모든 복음의 정신이 삶과 죽음이기에 고스톱(으로 비유해서 죄송합니다)의 1타 3피처럼, 그 신부님과 그 수녀님께 평신자보다 세배로 상처 받음을 감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3. 제 삶이 앞으로도 더 밟히고 더 찟기우고 상처받을 소지가 다분하오니 그래도 반드시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서 끝장을 보는 그런 신자로 거듭나게 이끌어주소서.

 

글을 써보니 좀 무식한 기도인듯 싶습니다^^

그래요. 사실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표현에 인색한 분들 참 많답니다.

별별 종자들도 참 많아요~~ 인터넷 상에서 이방인들과 복음을 나눌라 치면 대게 신앙생활좀 했다 하는 분들이 먼저 태클을 걸지요. "여기는 노는 자리이지 그런 말 들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구요.

 

물론, 악령에 물든 사람들도 염장을 지를 때가 참 많답니다. 자매님이 마음이 깨끗한 상태인듯 하니 그 사례는 구체화 하지 않겠습니다.

 

이대목에서 중요 결론 한가지 밝혀드리겠습니다. 호흡을 고르시구요^^ 이 말씀 한마디면 당분간 마귀들 줄행랑을 칠 태니 잘 들어두세요.

 

"하느님을 위하여 봉사하면 기쁨만 남고, 나를 위해 봉사하면 외로움만 남는다!"

 

이거 정말 사람잡는 이야기랍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야 해요. 그리고 자매님은 현재 순진과(투명한 잔이 비워진 상태)이시기에 순수과(투명한 유리잔에 맑은 물이 가득한 상태)의 여정이 좀 멀게 보이실 수 있답니다. 가까이 가고 싶으시면 자매님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시면 됩니다. 한번 더 세미나 해볼까요?

 

1. 시끄럽고 산만한 것이 많은 현대 사회 가운데 먼저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은 매우 특별한 것이다. 따라서 조용히 기도할 소지가 많은 자매님께 축복이 함께 하기를...

 

2.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려 하면 재빨리 그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다. 따라서 내 안에 더이상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순간부터 다시 그렇게 차근 차근 기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하느님의 질서에 나의 질서를 의탁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늦었지만 다시 단순하게 사족을 버리고 다만 직면한 그것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염치없고 죄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사랑하는 사람이 세례를 받아 기뻐하는 것도 보기 좋습니다. 정말 순진해 보이십니다.

기도+봉사+성사+공부+공동체 생활의 조화가 계속 이루어지도록 기도지원해 드리세요.

본시 악은 우리의 이러한 신앙들을 혼돈으로 몰고 가려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천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상선벌악으로 어떠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떠한 창도 막을 수 있다는 방패의 '모순'을 너그러히 지배하시며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를 들어 자매님과 자매님의 현재의 남자 친구와 다르게 정말 많은 부부들이 '부부의 대화'보다 '침묵'으로 파괴되어가는 현실을 봅니다. 그리하여 세계 2위의 이혼 왕국화가 되어있는 현실속에서 애석하게도 또한 보편 연인들이 자매님의 경우처럼 서로가 엄청 사랑을 나누지만 이러한 이혼 왕국화의 결과에서도 자유롭지 못함을 봅니다.

 

이것은 '사랑'이 고대 그리스에서의 '에로스'로부터 시작 되어 현대의 '아가페'까지의 발전 경로를 단면으로 이야기 해 주기도 합니다. 자매님의 현재의 경우는 '에로스'이기에 지금의 정신으로는 흙먼지 묻히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와도 같은 입장이기에 과연 '아가페'를 실현할 수 있는가? 냉정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부님의 그말씀, 수녀님의 그 말씀은 늘 첫마음을 지향하자는 취지에서 첫 영성체론을 말씀하신듯 합니다. 즉, 자매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방법론으로 이끄신 것이니 자매님의 생각으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조차 은총으로 여기며 주님께 감사 예물로 제대위에 바쳐보십시오.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 누가 나를 시험하려 든다 하더라도, 아니 나 스스로조차 자주 남을 판단하고 미워하려 할 소지가 생기더라도 무조건 그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머잖아 자매님께 필수의 엄청난 은총으로 변모될 지도 모를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장된 마음으로 다시 봉사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실, 어느 심신단체든지 이러한 기도가 누락된 채 봉사를 하면 과연 누가 좋아할 지 곰곰히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인데, 그렇기에 사제 또는 교형들이 이럴 경우 안식기간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줄 것입니다. 그냥 상식 정도로 기억해 두십시오.

 

봉사하다 보면 상처받은 분들 정말 많으세요. 주님께서 자매님 역시 큰 몫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저같은 경우는 자매님과 비슷한 경우로서 불쾌한 상대의 말도 스스로 자주 판단하여 듣고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자주 받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패, 창의 기도가 소홀하였기에 그것이 누적되어 터뜨려야 했던 적도 참 많이 있었습니다.

 

이방인 모임들 가운데 요한의 흉내를 내면서 복음화를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여인들의 그것을 싫어하는 힘까지 얻은 상태입니다만, 정작 교회안에서는 여전히 이들과의 열린 관계의 노하우(?)를 모르고 순수한 의도의 성령쇄신적 발언을 하여도 스스로 점잖음의 착각에 빠진 분들의 너그러운 표정이 동반된 방해를 만날 때 웃어 넘겨야 하는 아픔도 만납니다.

 

저는 이분들에게 칼을 갑니다. 그리고 대화가 타이밍을 맞춰야 하기에 언젠가 부드러운 기회가 닿으면 이분들을 설복시키고픈 욕망도 갖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내가 이때에 과연 이분들을 위하여 기도를 먼저 했는가? 일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사랑의 기도가 동반되지 않았다면 주님께 용서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처럼 많은 말들을 하여야 할까요? 한마디로 주님 은사로서 평화의 도구로서 끝장을 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부질 없는 것이라기보다, 것이기도 하답니다^^ 혹자는 저사람 오늘 위험한 말 많네~ 할지도 모를 일이랍니다.

 

아무튼, 자매님 참 아름다우세요. 그리고 역시 온실 속 꽃 같으세요.

숱한 묵주기도와 여러가지 지향도 예쁜 마음으로 하기에 주님께서 더 잘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세례받기 전의 대표적 인간 스스로의 자아적인 유혹은 세가지입니다.

게으름, 교만, 불안의 회색 안개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었고, 남자 친구에게도 보필해 주었다니

그 역시 축하 받아야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세례받기 이틀전 수도자에게 상처 받았다 한 것을 나중에 수도자와 옛 이야기 나누듯 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시 묵상은 필수입니다. 염경(기존 기도를 입으로 하는것)+묵상(곰곰히 생각하는 것)+관상(보는 것)의 1타 3피인 순교자들의 기도였던 묵주기도로 바치는 것도 미사에 버금가는 훌륭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다시 성수를 이마에 바르며 모든 악을 씻고, 다시 내가 악령도 물리칠 수 있는 무소욕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제단을 제일 먼저 바라보는 성당으로 입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 감고 그러한 성당에서의 묵상을 하는 것도 한 편의 기도가 되겠군요. 필자는 갑자기 복잡한 광고디자인을 금주안에 처리해야 하기에 자매님과 편지를 쓰며 잠시 쉬고 있답니다. 우리같은 쟁이들 일의 욕심이 많아 말 나온김에 성당 그리기 묵상으로 편지 마무리되면 저녁기도를 해야겠어요.

 

암튼 기도가 즐거운 것도 감사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자매님도 기억하며 수많은 철없는 우리 교우들을 상대하는 성직자들의 고심도 잠시 묵상토록 하겠습니다.

 

머잖아 자매님 또한 종전처럼 상대의 기분 나쁘다는 표정조차 않보일 것입니다. 그 때가 또한 행복한 일이지요.

우리 교회는 신덕의 순명으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온 종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왕이면 성직자에게도 너그럽게 순명하는 힘을 기르시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성령의 의지로 아멘을 외치는 성호경까지 보다 정성되히 바침으로서 악령의 입김에 현혹되어 내가 악령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남자 친구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방해 주문일 수 있슴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자매님의 내가 이렇다 이렇다 하는 정직한 분노는 일면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으나, 할머니들이 고해소에서 자신의 죄보다는 며느리의 죄를 고백하기에 바쁜 형상도 보이고 있답니다^^

 

확대 해석을 시키는 악령에게 속아 '일단 신자의 첫 영성체론을 성직자가 된다, 만다, 이런 말씀하는게 아니라고 생각드는건 느낌(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윤리성이 필요없는 영육의 진화 과정)이지만 판단이라는 올무에 걸릴 소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칫 지금은 남친안의 깊은 분이신 그분과의 '에로스'는 탓할 게재가 없겠으나 남친의 전부가 주님이심을 믿기 어려운 즉 아가페가 아닌 에로스의 대상일 수 있기에 주님보다 남친에게 더 영광을 전하려 한다면 그것은 여인으로서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이 이야기 남친에게 알려주지 마세요. 알려주시면 우리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벤뎅이 속알딱지일 수 있기에 앞서 말씀드린 기도보다 저주가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농담이구요. ㅎ

 

아무튼 님같은 상처로 신부님, 수녀님의 인성적인 모습이 싫어 성당을 옮기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가 신부님, 수녀님 보러 성당을 가는 것은 아닐테니 아예 그 신부님과, 수녀님을 선의의 경쟁 대상으로 삼아드리는 것은 어떨런지요? 이것은 마치 엄마품에 안긴 아기보고 엄마와 경쟁하라 권하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어떠한 힘도 저에게 주시는 것 같지 않다 고백하신 자매님, 훌륭하십니다. 정말 성모님 품, 아기같으십니다.

쉬는 시간이 필요한듯 싶습니다. 용기 잃치 마시고 끝장을 보자는 승부 정신으로 그렇게 쉬세요.

 

사실, 전능하신 하느님께 무엇을 해드리려 함은 위험한 것이랍니다.

자매님이 형제님의 세례를 위하여 은총을 돌리는 것도 매우 착한 마음이겠으나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골구로 은총, 은혜, 복(이상 같은 뜻이죠?)을 주시오니

중요시기 막바지의 유혹을 참아 이겨내시어 성모님이 예수님을 보며 그러하셨듯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원래 산고보다 탄고가 더 어렵기 때문이랍니다.

낼 모래 절두산 미사곡은 자매님과 남친을 위해서도 기억하며 부를테니 언제 함 봅시다 두 친구님들,

남친의 세례 축일도 미리 이곳에 공지하면 많은 분들이 기도 지원해 주실테고,

절두산 매주일(첫주 제외) 오전 열시 미사 오시면 거기서 솔로 미사곡 봉송자인 필자를 만나

혹여 두분 나중에 혼인성사 이룬다면 축가 불러드리지요. 곡명은 살베레지나(성모찬송) 그레고리오 송가입니다. 어때요?

 

제가 제 자랑 별로 하고싶지 않은 입장인데 암튼 너그러히 용서하여주시고 좋은 만남 이루도록 하세요.

부연해서 부부의 세가지 대화를 보호본능을 가진 여인의 마음으로 미리 공부해 두세요.

 

1. 감성의 대화

2. 이성의 대화

3. 육체적 대화(결혼의 완성이라고도 함)

 

따라서 가톨릭의 '성사생활'을 망각하게 되면 혼인 전 섹스의 유혹을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이야기지요. 이로부터 무책임한 남성, 피해를 떠 안는 여성들을 봅니다. 또한 상기 세가지 대화의 정의를 모른채 혼돈속을 해매는 이웃을 봅니다. 이것은 영성적으로 더 심각한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두분도 노파심이다 생각하고 기억해 두시고. 상기 강조한 기도의 방패 잘 활용하시어 두분 여정 더욱 아름답고 더 깊은 행복으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결론

 

1. 365일 낮과 밤 끊이지 않는 그리스도 미사(크리스마스)는 완전한 기도이다. 예수님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를 싫어하셨다. 그래도 사랑하셨다.

 

2. 예수님의 생애가 담긴 묵주기도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장미 화관을 쓴 모습으로 주님을 배알하는 순교자들로부터 이루어진 기도로서 '안심하라'시며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로서 미혼의 두 남녀가 장차의 살아있는 묵주여정으로 변모 되어야 마땅하다.

 

3. 이 모든 하늘의 복도 내가 닫힌 상태라면 나도 주님도 답답할 뿐이다. 이 때에 유혹이 기승을 부릴테니 악을 굶겨 죽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크게 밟힘은 크게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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