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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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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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09-01 ㅣ No.58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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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루카 4장 38-44절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사랑과 소유>

 

 

    참으로 많은 사랑이 ‘깨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랑이 비극으로 끝납니다. 사랑이 향기로움으로, 아름다움으로, 풍성한 결실로 열매 맺지 못하고 참담하게 끝나고 마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사랑과 소유를 혼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소유를 혼동합니다. 사랑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하기보다는 해방시켜주는 사랑입니다. 참 사랑은 상대방을 억압하기보다는 성장시켜주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보다는 편하게 해주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을 속박하기보다는 해방시켜주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본성상 얽매이기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속박되고 싶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이렇게 근원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인데,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마치 수족관에 들어있는 열대어처럼 생각합니다. 아니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애완견처럼 여깁니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은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결과는 깊은 상처요, 괴로움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군중의 태도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보다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바람 같으신 하느님, 좁디좁은 인간 세상에 묶어두기에는 너무나 크신 하느님이십니다. 오지 중의 오지 갈릴래아 지방에만 머물기에는 너무나 아까우신 인류 전체의 하느님이셨기에, 이런 말씀을 내려놓고 또 다른 길을 떠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율법으로 좁혀진 세계를 뛰어넘는 그분의 크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작디작은 사랑, 사랑도 아닌 사랑에 목숨 거는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신앙에 던진 도전장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따라 점점 성장해나가길 바랍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에 대해 가졌던 사랑에 대한 허상과 환영들을 깨트리길 요청합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청합니다. 상대방의 약함과 쓸쓸한 뒷모습, 실수와 허물 등등.

 

    사랑이 쉽게 깨지는 또 다른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기대입니다. 그토록 목숨 걸고 예수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사람들, 목숨 걸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맹세했던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다들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잘 나가는 예수님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죽어가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치유시키시는 ‘명의’ 예수님만 눈에 보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것 내려놓고 십자가 길을 걸어야만 하는 순명의 예수님은 죽어도 보기가 싫었습니다. 마침내 원수들의 손에 넘어가 치욕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고통의 예수님은 절대로 원치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이 무너질 때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 보다 영속적인 사랑을 추구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첨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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