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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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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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0-09-14 ㅣ No.58586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desert,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Jn.3.14-15)
 
 
제1독서 민수 21,4ㄴ-9
복음 요한 3,13-17
 
제가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차로도 한참 걸리는 거리를 어떻게 자전거로 다녀올 수 있냐면서 신기해하시지요.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를 자전거로 다녀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적은 나이도 아니십니다. 자그마치 80세나 되는 할아버지께서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서부 태평양에 인접한 샌프란시스코까지를 자전거로 86일 동안 달린 것입니다. 미국 대륙을 동서로 완전히 횡단하신 것이지요. 그 거리는 자그마치 3,244 마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10번 이상 왕복해야만 나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직업적인 자전거 선수도 이런 장거리 기록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80세 할아버지께서 이런 놀라운 일을 해낸 것은 바로 인간 의지의 승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목적지였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도착한 그에게 기자들이 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60세 이상 된 사람들이 대부분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무덤으로 가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십 년이나 이십 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큰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셨기에 남들이 할 수 없던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스스로를 한계 짓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면서 포기하는 것을 당연한 결정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큰 목표를 갖고 의미 있게 사는 우리로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며, 이로써 주님 구원에 더욱 더 가까워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며 세상에 들어 높이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상에 들어 높여질 수 있었던 것은 최선을 다해 사셨던 예수님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뱀에게 물렸을 때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이 죽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현양한다는 것, 즉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지으며 할 수 없다며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며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 완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의 결정체인 십자가를 제대로 바라보며,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 살아갔으면 합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더욱 더 의미 있는 세상으로 내게 다가올 것입니다.


충분한 재물이 아니라, 만족하는 마음이 없을 뿐이다(묵자).




막막한가? 그래도 가라(이주형, ‘그래도 당신이 맞다’ 중에서)

조정래 선생이 20년 동안 대하소설 삼부작을 완성하면서 정신적으로는 물론이요 육체적으로도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도 오래 꼼짝 않고 앉아서 글을 쓴느 바람에 엉덩이에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고, 오른팔이 마비되는가 하면, 탈장 수술까지 받았다. 사람도 안 만나고 술도 안 마시고, 글 쓰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하루에 13시간 이상씩 중노동을 계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최소한 하루에 원고지 30매씩은 꼬박꼬박 채워 갔다. 그래도 대하소설 10권을 쓰려면 5년은 걸린다.

선생도 절망감을 느꼈다. 원고지 1만 5,000장이다. 생각의 범주를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 많거나 멀면 오히려 비현실적이어서 실감이 안 난다. ‘태백산맥’ 280여 명, ‘아리랑’ 600여 명, ‘한강’ 400여 명... 등장인물의 수다. 선생은 호흡이 멈출 것 같은 급박한 심정으로 한 매듭을 써 놓고 나면 또 다른 사건이 밀려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타는 것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4~5년을 산다고 했다. 그 암담할 정도로 아득한 길을 어떻게 달려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다른 것은 없었다. 그냥 썼다. 계속 썼다. 잘 쓸 때까지. 글은 대개 뜻대로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은 법이다. 선생은 글이 안 써지면 기분 전환한다고 술을 마시거나 여행을 떠나기보다 더욱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마음먹은 대로 쓰일 때까지 썼다.

위대함은 평범함 속에 있었다. 조정래 선생이 그걸 깨닫게 해 주었다. 대가도 허망함을 느낄 때가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고 심지를 굳게 하라는 것, 막막함을 돌파하는 데 특별한 비결 따위는 없으니 그냥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

 
 
 
 
 
 
 Comme Ce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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