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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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드러나지 않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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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0-12 ㅣ No.59178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8 주간 수요일 - 올바른 스승


 

제가 사제가 되어 처음으로 간 성당은 신자가 만 삼천 명이 넘는 성당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제는 저와 본당신부님 단 둘이었습니다. 신학생 때 외국에서 공부하여 전례나 본당 실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큰 본당으로 왔던 것입니다.

본당에 처음 간 날 어떤 의사 신자분이 당신 병원으로 링거를 맞으러 오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제가 왜 링거를 맞냐고 했지만 조만간 오시게 될 것이라고 하셨고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고 너무 힘들어 그 병원으로 링거를 맞으러 갔습니다. 링거 맞으면서 쉬는 한 시간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도 몇 번 링거 맞는 겸 쉬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 예로 성지 주일날 하루 동안 주임신부님과 둘이 고해성사를 준 숫자가 구백 명이 넘었습니다. 어떤 때는 밥은 고사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쁜 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쁘다보니 어떤 때는 좀 일찍 쉬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교사들이 늦게까지 회합을 하는데 먼저 들어와 잔 때도 있었고 몸이 피곤하여 그렇게 살짝살짝 요령을 폈습니다.

그러다가 멜 깁슨이 나오는 한 전쟁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이 ‘We were soldiers’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과 베트남과의 전쟁 이야기였습니다.

때는 1965년, 미국은 하버드 석사 출신의 할 무어 중령을 비롯해 젊은 군인 395명을 베트남 아이드랑 계곡 X레이 지역에 투입합니다. 이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군은 무려 2000여명의 정규군. 험준한 정글 지형에서 벌어진 미국과 베트콩의 최초 전투에서 미국은 처참하게 병력을 상실하면서 가까스로 승전을 거둡니다. 이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할 무어 중령과 죠 갤러웨이 종군기자는 미국 전쟁사에서 잊혀진 72시간을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는 논픽션으로 집필했고 93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읽은 렌달 월레스 감독이 영화화한 것입니다.

다른 것보다도 무어 중령의 역할을 맡은 멜 깁슨이 전쟁에 투입되기 전 젊은 군인들에게 설교한 내용이 저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살아서 집에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우리가 전투에 나감에 있어서 내가 땅에 발을 가장 먼저 내딛고 철수함에 있어 내가 맨 마지막으로 발을 뗄 것이며 어느 누구도 적진에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건, 살아남은 자건.... 모두 함께 집에 온다.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저는 이 말을 그냥 한 줄 알았는데 정말로 무어 중령은 적지에 가장 먼저 뛰어 내렸고 마지막에 헬기로 탈출 할 때도 자신의 남은 모든 부하들이 타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헬기에 오릅니다.

적지에 처음으로 내리던 그 발과 마지막으로 헬기에 오를 때의 그 발이 저에겐 큰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봉사자들이 다 모였을 때에야 마지막으로 나타났고 봉사자들에게 일만 시켜놓고 먼저 살짝 빠지던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이렇게 꾸짖습니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도 어는 정도는 짐만 지워놓고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했던 율법학자와 다를 바가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에 어떤 신학생이 기도나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오락이나 영화만 보며 시간을 때우면서 서품을 기다리고 있기에 “네가 그렇게 살면 나중에 서품을 받고서 어떻게 신자들에게 잘 살라고 할 수 있겠어?”하며 충고를 했습니다.

그 신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못 살아도 강론만 잘 하면 되지 않나요?”

이것이 아마도 당시 율법 교사들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은 자신이 하는 말을 행동으로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신 그리스도는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십자가는 당신이 3년 동안 가르치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신 모습이고 그래서 참다운 스승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가르치는 입장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면서 부모인 자신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 말다툼을 한 적은 없습니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보내면서도 정작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사에 빠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가끔은 거짓말을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언행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참다운 스승이 될 수 없고 존경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저의 교수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다른 신학자들과는 달리 그 분은 가르치시는 대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옷을 주워 입을 정도로 검소하시고 가난한 사람과 나누시며 사제관에 집 없는 이들을 들여놓고 함께 사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마태 28,19)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모든 민족 앞에서 당신이 가르치신 사랑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무덤

 

제가 남미에 한 달여간 있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지도자가 중요하다’였습니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중미의 멕시코 같은 나라들은 자원도 풍부하여 잘살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라들입니다. 거기 사는 한국 사람들이 그들이 잘 살지 못하는 이유로 말하는 것, 두 가지는 ‘국민성’과 ‘타락한 정치인들’입니다.

저는 국민성보다도 정치인들의 타락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똑똑해지면 안 되기에 교육에는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겐 못 배운 사람들이 많을수록 유리한 것입니다. 즉, 선거 때가 되면 못사는 사람들에게 세금 감면이나 약간의 도움만 주면 그들은 고마워서 그 정권을 또 찍어준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수도세나 전기 값만 깎아준다면 그 정권이 최고인 것입니다. 마치 북한 사람들이 굶지 않도록 쌀을 줄 수 있었던 김일성이 최고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똑똑해지면 이런 장난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백성을 우민(愚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풍부한 물적, 인적 자원을 지니고 있어도 가난할 수밖에 없고 국민성이 변화되기 힘든 것입니다. 마치 좋은 스승을 두어 훌륭한 신앙을 지니게 되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좋은 국민성은 좋은 지도자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이 IMF를 초래한 주범으로 몰리는 것은 그렇게 몰아붙인,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탓이 크다고 했습니다. 역사가 진실을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즉,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IMF가 터졌을 때,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달 동안 자살한 사람의 숫자가 9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거의 전쟁에서 죽는 사람 숫자와 비견할 만합니다. 이런 어려움이 초래되었을 때 한 나라의 책임자로 있었던 사람이 차기 대통령들 탓만, 그것도 대답을 할 수 없는 고인들의 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그런 정치인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고해소에 들어와서 고해하시는 분들 중, 신호등을 위반했다, 금육을 어겼다 정도만 고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혹시 주일 미사 빠지거나, 거짓말 했다거나,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예, 있기는 있는데~”하며 그 때서야 그런 고백들을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그냥 금육을 지키지 마시고, 사람은 미워하지 마세요. 그게 더 유익합니다.”라고 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유대 지도자들을 나무라시는 것도 바로 그들이 십일조와 같은 작은 계명들(물론 이 계명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은 잘 지키면서도 사랑과 정의 같은 큰 의무들은 무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백성들도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뱀 머리가 구덩이로 떨어지면 몸도 함께 떨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도자가 잘 못 된 유대인들을 결국 회개시키지 못하시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셨습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들이라도 잘 하는 것들이 몇 개씩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필요할 때, 그 잘 하는 것 몇 개씩만 대단히 강조하며 드러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은 못하고 있는 그런 대단한(?) 일들을 한 그 사람을 높게 보아주고 지도자로 치켜세웁니다. 그래서 결국 본인들만 피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겉이 아니라 속이 깨끗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겉은 그렇지 않지만 속은 송장들이 있는 ‘무덤’과 같은 위선자들이 우리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되는 것도 하나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인성은 부모로부터 저절로 습득됩니다. 겉이 아닌 속이 깨끗한 윤리적인 사람을 지도자로 택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나에게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결코 ‘무덤’과 같은 속이 전혀 다른 그런 사람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해도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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