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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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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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12-21 ㅣ No.6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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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루카 1장 39-45절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거품을 빼는 대림 시기>

 

 

     돌아보니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도생활 초년병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작음’ 때문이었습니다. ‘낮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결핍’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지니고 있었던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 딸랑 몸 하나 뿐인 ‘가난한 나’였습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다 보니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었습니다. 가장 쫄병이기에 실수해도 괜찮았습니다. 낮은 곳에 있다 보니 넘어져도 그리 충격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리도 행복했었나 봅니다.

 

     요즘 들어서 자주 드는 생각이 한 가지 있습니다. 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높이 올라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큰 사람이 될수록, 높이 올라갈수록 섭섭함도 비례해서 커져갑니다.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상처도 커져갑니다. 내려올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이 대림시기 우리는 복음서를 장식하는 인물들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세례자 요한...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한 가지 덕이 있었습니다. 겸손의 덕입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낮음을 추구했습니다. 자주 자신의 내면을 비워냈습니다. 그 빈자리를 주님의 성령으로 가득 채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죽기까지 지속적으로 겸손의 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림 시기는 우리 안에 잔뜩 들어있는 거품을 빼는 시기입니다. 우리를 부풀려보이게 만드는 헛바람을 빼는 시기입니다.

 

     언젠가 낚시 갔다가 복어 새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육지로 딸려 올라오자마자 그녀석이 보여준 행동은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부풀렸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몸을 크게 보여 상대에게 위협을 주어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몸짓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 녀석의 그런 몸짓은 두려움은커녕 웃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우리들, 곧 내려갈 날이 얼마 남은지도 모르고 높은 곳에서 기고만장해있는 사람들, 영혼을 위한 투자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겉멋만 잔뜩 든 사람들, 엄청나게 자신을 부풀린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바라보시고 쓴웃음을 짓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때로 안쓰럽고, 때로 대견스런 수련자 형제들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젊은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수련소 입소 때 개인 소유 물품은 모두 압수당했습니다. 휴대폰도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는 팍팍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더 이상 행복할 없다는 표정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는 아무런 거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완전히 빈손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남아있는 대림시기 우리 안에 들어있는 거품을 빼내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는 힘을 좀 빼면 좋겠습니다. 본래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나, 모든 측면에서 결핍된 나의 모습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낮아진 우리, 비워낸 우리, 바닥으로 내려 선 우리를 기쁜 얼굴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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