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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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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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5-12 ㅣ No.111985

 

2017년 5월 12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복음 요한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책을 읽다가 어느 신부님의

체험 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께서 미사 후에

신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자매님께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시더랍니다.

그리고 오늘 미사가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감동적인 미사였다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묻자 글쎄

성체를 받아 모시는데,

그 성체에서

향기가 났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주님께서 아시고 이러한

 응답을 주신 것이라면서

기뻐하시더랍니다.
이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미사 나오면서

향수를 조금 발랐는데 그때

향수가 손에 묻은 것 같습니다.

저도 미사 중에 분심이 들었는데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매님께서는

 왜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훼손하시냐면서 역정을 내고

성당을 빠져 나가셨다고 하네요.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요?

영적인 부분만을 생각하는

자매님이 맞을까요?

아니면 사실에 입각해서

말씀하신 신부님이 맞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체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는 진짜

영적 체험이 아닐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에서

생겨난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인성녀들은

자신들의 영적체험을 혼자만

간직하거나 영적 지도자에게만

고백하셨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영적 판단의

가장 큰 원칙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바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굳은 믿음 안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삶에 동참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당신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며,

그릇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진리 자체이며,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겸손이 아닌 교만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말과 판단을

더 따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매님처럼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훼손시켰다면서

화를 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믿음을

갖춰야 합니다. 겸손의 삶,

주님의 영광이 먼저 드러나는데

노력하는 삶 등을 통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끊이지 않고, 끊어졌다가도

다시 잇는 것이 생명이다.

놓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살려니, 되려니

하는 것이 믿음이요,

 그 믿음이 생명이다.

(함석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믿음"

종종 영적체험을

고백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미사의 성찬의 전례 때에

환한 빛을 보았다는 분

(제가 보기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성합이나 성작,

성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를 보았다는 분,

 자신 안에 성모님께서

계시다면서 미사 중에

제단으로 올라오시는 분

(자신이 성모님이기 때문에

예수님 옆에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등등 참으로 별의 별

영적 체험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의 대부분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아픔과 성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화를 낼 때가 많고,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서 때로는

폭력까지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분들을 향해서는

“벌 받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견디기 힘든

상처까지 주신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일까요?

그런데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아닐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 영적지도

신부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고

하느님의 숨을 받은

우리 각자는 분명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이웃들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웃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과연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일까요?
제대로 된 믿음은 하느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께 대한

제대로 된 믿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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