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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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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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1-03-09 ㅣ No.62668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9일 재의 수요일
 
 

 
"Take care not to perform righteous deeds
in order that people may see them;
( Mt.6.1) 
 
제1독서 요엘 2,12-18
제2독서 2코린토 5,20--6,2
복음 마태오 6,1-6.16-18
 
어느 백인 교사가 인디언 보호구역 내 학교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특별히 어려운 문제를 낼 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 아이들이 갑자기 책상을 가운데로 끌어당기더니 한데 모여 앉는 것이 아니겠어요? 교사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부정행위는 안 된다고 훈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도리어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듯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는 지금껏 어려운 문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요?”

이 인디언 아이들의 말이 크게 와 닿습니다. 사실 지금의 시대는 ‘나 홀로 최고’만을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모든 것을 다하려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으며, 더 큰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어렵고 힘들 때 함께 힘을 합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함께라면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혼자서 만이 무엇을 하려하고, 혼자서 만이 모든 것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바로 욕심과 이기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우리 주님께서 이천년 전 수난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들은 속죄와 보속의 시기라고 불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도록 더욱 더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지난해 ‘성지주일’에 사용했던 성지를 태워 만든 재를 머리에 바르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흙에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함께 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의 욕심과 이기심을 모두 버리고 주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또한 기쁜 소식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때,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과 진정으로 화해하여 가장 은혜로운 순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사순시기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가장 특별한 가장 의미 있는 사순시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말은 인간이 사용하는 약 중에서 가장 약효가 세다(루디야드 키플링).




앞 못 보는 피아니스트(‘행복한 동행’ 중에서)

코리아 W 필하모닉의 김남윤 음악감독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2004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정기 연주회를 준비할 때 일이다. 그는 신시내티에 거주하던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혁재의 연주 비디오를 보고 협연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베토벤의 코럴 판타지를 연주해 주시겠어요?”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난감해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저, 그동안 제가 연주해 왔던 곡을 협연하면 좋겠는데요.”

연주회까지는 5개월이나 남아 있던 터라 김남윤 감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주회는 가을입니다.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나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듭되는 요청에 피아니스트는 제안을 수락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 피아니스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드디어 찾았어요! 이제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찾았다니, 무얼?”

미국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뒤져도 베토벤의 코럴 판타지 악보를 구할 수 없었는데, 일본의 한 도서관에 점자 악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악보를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아! 그는 일반 악보를 볼 수 없구나!’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 앞에 김남윤 감독은 너무도 미안했다. 그는 점자 악보를 손으로 읽어 연습하고 외우는 데 일반인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연습 시간이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에 아무 이유도 대지 않던 피아니스트의 마음이 그제야 헤아려졌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상대의 입장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가. 우리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오해와 갈등도 사실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얼마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Beethoven's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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