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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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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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2-02-09 ㅣ No.7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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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마르코 7장 24-30절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더 큰 성장을 위하여>

 

 

    제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교도이자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의 어머니라고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딸 하나 있는 것이 더러운 영, 곧 마귀에 들렸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붙임성 있는 딸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착하던 딸이었는데 입에 담지 못할 불경스런 욕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키면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딸은 비명을 질러댔고 어떤 때는 머리를 아무데나 짓찢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온 몸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온 집안 전체를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그 집안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고 정말이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대신 더러운 영에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어린 것이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자기한테 왔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전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앞뒤 따지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더 이상 간절할 수 없는 마음으로 딸의 치유를 청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어머니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보여준 예수님의 태도는 꽤나 의아합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척척 치유해주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때로 이방인, 유다인 가리지 않고 즉석에서 순식간에 소원을 들어주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십니다. 그러면서 여인에게 던지는 말이 꽤나 굴욕적입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순간 제가 그 여인이었다면 정말 빈정 상했을 것입니다. 아니,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사랑과 친절, 자비와 온유의 예수님이라면서 어떻게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실 수 있지? 그럼 내가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란 말인가? 그래 우리 딸 상태가 정말 위중하지만 이런 수모까지 받아가면서...난 못해! 아마 저같았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다릅니다. 마지막 배수진을 쳤던지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도에 지나치는 굴욕적인 발언에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또 한 번 크게 자신을 낮춥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여인의 딸을 향한 지극한 사랑, 겸손한 자세,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결국 기적을 불러오게 됩니다.

 

    가끔씩 사람을 키우는 큰 스승님들의 제자 교육방식을 눈여겨봅니다. 때로 칭찬도 필요합니다. 당근과 격려도 필요합니다.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위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 더 큰 성장, 더 큰 도약을 위해, 더 큰 완성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보라는 차원에서의 자극, 채찍질도 필요한 것입니다. 더 큰 사람이 되라, 스승인 나를 넘어서라는 의미에서 혹독한 과정도 의도적으로 거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셨을까요? 여인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 자극을 주신 것입니다. 더 크게 한걸음 나아가라고 살짝 튕긴 것입니다.

 

    딸의 치유는 사실 그녀가 얻은 것 가운데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더 큰 선물, 더 큰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이 세상에서의 일회적인 치유와 회복뿐이 아니라 영원한 치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 하느님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인의 내면 안에서는 큰 도약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치유자를 넘어 영혼의 치유자란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주인임을 넘어 또 다른 세상의 주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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