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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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영혼(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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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회 [swan1010] 쪽지 캡슐

2002-05-09 ㅣ No.6299

오늘도 난 내 영혼을 팔았습니다.

내 판 영혼만큼 그 속에 독주도 부어 채웠습니다.

 

처음 공직사회에 들어와서는 내 몸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내 몸을 팔아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었기에

난 내 몸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건 즐거움이었고 누구도 쉽게 경험치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몸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 사회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데 우리들의 몸과 피와 땀은

자양분이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난 내 영혼을 팔고 있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공직사회는 갔습니다.

 

그 속에는 자유와 정의, 고단한 자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분노와 독선, 광기, 철밥통으로 표현되는 기득권의 유희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조직 상층부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염불을 외는 중이 되라고 합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면서...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맡기면서

자신의 비굴함은 예의바름으로, 타인의 용기는 무례함으로 규정짓고는

천박한 아부근성과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마련한 자리 하나를 바라보면서

수동적인 마음의 안식을 누려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입신을 위하여 몸부림치면 칠수록

내 영혼은 더욱 야위어갔다는 것입니다.

 

’80년대까지 아무도 넘보지 못하던 ’선구자적 사명감과 철학’은

시대의 변화라는 미명하에 싸구려 서비스를 강요하는 ’정보기능 지상주의’로

대체되었습니다.

 

뜻 있는 후배들이 피와 땀으로 지키고자했던 공무원의 정의와 자유와 가치는

출근 길 열린마당에 내팽개치고 오직 기회와 보신이라는 개목줄에 끌려

자판기처럼 동일한 아부를 양산하고 있었습니다.

 

공무원에 대한 기대와 갈채는 이제 날카로운 질타로 바뀐지 오래되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컨베이어 벨트에 승차를 강요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저를 포함한 같은 급의

동료와 선배들이었습니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지나간 과거를 연상해보십시오.

예의를 빙자한 아부의 굴레에서 그동안 자유로웠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정말 후배들 보기가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불과 엊그제 누렸던 중간 관리자로서의 권위는 이제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대다수의 동료 및 선배들과 같이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광기를 팔며 나는 오늘도 허기진 배를 채울 것입니다.

그나마 거품뿐인 직위 대신 굴종과 침묵으로 얻는 또 다른 입신과 기회주의자라는

처절한 별칭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이제 내게 있어 팔아야 할 영혼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내 영혼을 팔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내 영혼을 다 팔고 나면 난 아마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동고동락해온 동료와 선배들에게 고합니다.

우리에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더 이상 구차한 변명과 침묵으로

후배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일부 과장과 동장 등 비교적 젊은 5, 6급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채

자신의 보신을 위한 노력들이 능력과 봉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대로 세월이 흘러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아직은 살아있는 후배들의 원성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느새 비쩍 말라버린

내 사랑하는 영혼을 붙잡고 통곡한 뒤 결단코 영광스럽지 않게 절을 등질 것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렇게는 되고싶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용기를 갖고 헌신하는 직협임원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고싶습니다

 

 

공직은 내 청춘이었고 내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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