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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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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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10-16 ㅣ No.7460

 

 

지난 토요일 오후, 버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고 있는데 시장 쪽에서 아버지가 걸어오고 계셨다.

허름한 작업복에 빗물에 젖은 윤기 없는 머릿결, 순간 난 아버지가 날 모른 척하셨으면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쪽으로 다가오셨다.

"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아버지를 알아보고 일어서려 하기에 난 최대한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제야 나를 알아보신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으셨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내 시선은 아버지에게 머물렀다.

손질하지 않은 덥수룩한 흰머리가, 밉살스럽게 돋아난 수염이 아버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고, 내 가슴을 아프게 방망이질했다.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외면한단 말인가?

유난히 눈이 많았던 지난 겨울, 아버지의 왼쪽 팔이 갑자기 마비되었다.

아버지는 피가 잘 안 돌아 그런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셨지만, 그 즈음부터 아버지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지셨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이른 아침 늘 쓰시던 까만 모자를 더욱 깊게 쓰고 일터로 나가셨다.

몇 해 전 겨울, 공부한답시고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더니 아버지가 독서실에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오다가 샀다며 까만 비닐봉지에 싼 찐빵을 내미셨다.

유난히 내게 자상하신 아버지였지만 독서실까지 오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날 버스 정류소까지 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며 거친 손을 꼭 잡았는데, 온기가 없이 싸늘했다.

난 그때 추운 겨울에 새벽차를 타고 올라오신 까닭이라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이미 그때부터 병을 얻으신 것이었다.

"여기 같이 앉아서 가자"

"아니요. 괜찮아요."

문득, 아버지의 음성에 정신이 들어 얼른 대답했다.

그리 멀지 않음에도 아버지는 같이 앉아 가자고 몇 번을 권하셨다.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들킬세라 창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정곤호 님 / 경기 평택시 비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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