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측은지심의 향기

스크랩 인쇄

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1-08-13 ㅣ No.2672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던 한 아이를 저희 집에 데려오려고 가정법원에 나갔습니다. 법정에 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안전 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열 서너 살 밖에 안된 꼬마들까지도 양손은 수갑이 채이고, 포승줄에 줄줄이 묶인 채 호송차에서 내려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판순서가 될 때까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쥐죽은듯이 기다립니다.

 

다행히 담당 판사님께서 잘 선처해주셔서 아이에게는 훈방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인수증을 쓰고 아이를 법정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수감되기 전에 입고 있었던 남루한 옷에다 다 떨어져 가는 슬리퍼, 초라한 옷보따리 하나... 아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얼굴빛이 안좋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재판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걱정을 좀 했더니, 체했는지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측은하다", "가엾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때 써야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련한 아이를 가만히 제 품에 안고 등을 두드려주면서, "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가"에 대해서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나서 또는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가련함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나약함이나 부족함, 실패, 한계 같은 요소들은 하느님을 우리 삶안에로 개입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측은함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때로 우리 자신의 한계나 비참함, 자기 낮춤, 작아짐처럼 우리 공동체나 가정의 쇄신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진정 우리가 스스로를 낮출 때, 우리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낱낱이 드러낼 때, 그래서 보다 적나라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 그분께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함을 당신의 자비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덕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어떤 덕행에 앞서서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덕행입니다. 이 겸손의 덕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그 빈자리를 하느님의 향기로 채우려는 노력 끝에 얻게 되는 결과입니다.

 

이 은총의 하루,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 겸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아침 주님 선물

 

1. 하늘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세상을 보십시오. 모든 근심과 걱정은 바람결에 날려보내고 단순히 주님만 바라보십시오(성 프란치스코).

 

2.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 줍니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찾아옵니다.

 

3. 인간의 위대함은 체력이나 지식에 있지 않고 오로지 맑은 혼에 있습니다.

 

4. 버려야 할 것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향상이 있고 희망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5. 나의 하느님, 나의 삶의 궁극적 목표, 나의 성취의 과녁,

나는 당신의 어제이고 당신은 나의 내일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당신의 뿌리이고, 당신은 저 하늘에 핀 나의 꽃입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함께 해 아래서 자라고 있습니다(칼릴 지브란).



2,21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