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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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잘 끓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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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1-10-29 ㅣ No.2919

우리는 한 주일에 딱 한번, 주일 점심이면 아이들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식당에 가면 각 식탁 위에는 휴대용 가스렌지와 큰 냄비, 라면과 계란, 파 등이 미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에 모여든 아이들은 저마다 맛있는 라면을 끓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기여를 합니다. 어떤 아이는 라면을 봉지에서 꺼내고, 어떤 아이는 스프를 한데 모아 놓기도 합니다. 또 다른 아이는 계란을 깨는 등 다들 뭔가 합니다.

 

저만 그냥 앉아있기가 뭣해서, 제 오랜 습관대로 라면을 하나들어 반을 쪼개서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순간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왜 라면을 반으로 쪼개냐구요?"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아이의 논리에 따르면 라면을 반으로 쪼개 끓이면 라면의 참 맛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꽥" 소리를 지르는 녀석 때문에 제 마음이 무척 언짢았습니다. 그리고 제 머리 뚜껑이 확 열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품위를 유지하느라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 친구의 그 한마디 말에 좋았던 주일 오전 기분이 확 잡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참 나도 속이 좁은 놈이구나. 아이가 생각 없이 내뱉은 그 한마디 말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다니!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은 어찌 그리 다른가?. 십인십색이란 말이 정말이구나"   

 

그 작은 일을 통해서 한가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이런 사소한 일 하나로도 이렇게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에서부터 미움이 싹트고, 분노가 폭발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한번 돌리니 거기가 바로 천국입니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천국 체험은 아주 작은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음에도 불구하고, 한 3분만 참을 때, 바로 거기서 천국은 시작됩니다. 우리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을 조금만 자제할 때 거기서부터 천국은 시작됩니다.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마음 한번 돌려 진정하는 것이 천국에 드는 길이며, 구원받는 길입니다.

 

부모들과 교사들이 아이들의 진정한 스승으로 태어나는 순간 역시, 마음 한번 돌려 인내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진정으로 죽는 순간입니다. 어디 자살이라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서 한번 더 인내할 때, 권위를 버릴 때 참 스승의 길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내가 책임자인데, 내가 지들 부모인데" 하는 마음을 버릴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교육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인내하면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그 순간, 아이들도 당연히 우리 앞에 죽습니다. 그 때 아이들은 비로소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옵니다.

 

진정한 부모, 진정한 교육자는 끊임없이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상황에 따른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이 세상 것에서 초월하려는 사람입니다. 성화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부활의 여정을 걷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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