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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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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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hunter14] 쪽지 캡슐

2015-04-13 ㅣ No.8454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여보!  사랑해! ......     꽃마을 신부님



꽃마을에 있는 환자 분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고 가시는데 나도 저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까지 갖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 같은 죽음을 연출하신 분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는 정말로 잘 나가던 분입니다.

건설업을 하셨는데 이 지역에서 누구하면 같은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부러워했던 분으로 평소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IMF 때 불경기를 맞으며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직장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년 6개월 동안의 투병생활, 엄청난 통증,

만신창이가 된 하반신...

하지마비로 인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할 게 없으니 퇴원하라는 말을 듣고

꽃마을로 오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죽음선고를 받은 후

한동안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죽음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주변정리를 해나갔습니다.


임종 12일 전부터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음식을 삼키지 못하였고, 복수까지 차서 호흡곤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환자는 정신이 들 때마다

아내에게 항상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고

아이들 건강하게 키워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루는 배에 있는 인공항문에서 변이 흘러나와 더럽혀지자

그것을 닦아주고 있던 아내에게 “여기 좀 잘 보고 닦아.

저 윗분도 내가 깨끗이 닦고 가야 좋아할 것 아냐?” 하며

자신의 죽음 앞에 여유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임종 전 날

“하늘나라 가실 준비는 다 되셨어요?” 하고 물으니 “신부님 아직 안 됐습니다.

내일쯤이면 될 것 같아요. 아직 정리 안 된 게 남았어요!”


그러더니 다음 날 아침

“신부님 저 오늘 하늘나라에 갈 것 같으니 기도 좀 해주세요?”

“오늘은 준비가 되셨어요?”

“네. 준비되었어요. 신부님 저 손 좀 잡아주세요.

그리고 당신 손도 이리 주고.” 하면서 직접 아내의 손을 끌어다 포개어 놓았습니다.


“신부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저 그곳에 가면 사랑하는 우리가족과 꽃마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줄게요.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내가 보답할 게 그것밖에 없네요.

그리고 신부님 내 아내도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봉사하게 해주세요.

우리 같이 약속하는 겁니다. 당신도 알았지?”


“네. 약속할게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으세요?” 

하니 아내의 손을 꼬옥 잡고서

“여보 고생시켜 정말 미안하고 당신과 사는 동안 너무 행복했었어.

그리고 투병생활 하는 동안 끝까지 지켜줘서 고마웠고......

처음으로 불러본다. 여보! 사랑해.”


눈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내를 보면서 한 손으로

머리맡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아내에게 꺼내보라고 했습니다.

예쁜 시계였습니다.

“당신 생일선물로 준비했어.

이번 달에 당신 생일 있는데 못 챙겨주고 갈 것 같아서

친구에게 부탁해서 사다놨어.

당신이 평소에 갖고 싶어 하던 거잖아!

시계 예쁘지? 할머니 될 때까지 손목에 차고 있어야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아내에게 직접 시계를 꺼내어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아내와 입맞춤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위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내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남편의 등을 끌어안고 긴 작별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만나 행복했었음을

고백했고 남편은 죽어서도 아내를 사랑하겠노라고 속삭였습니다.


잠시 후 주위사람을 둘러보더니 고맙다는 말을 한 후

환자는 자신의 손으로 코에 꽂은 산소 호흡기를 직접 빼버렸습니다.


1시간 후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둘러선 봉사자들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그의 영혼은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소화해 낸 연기자처럼

그는 할 말 다하고, 할 것 다하고 떠나갔습니다.

모두에게 죽음은 이렇게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질 무렵의 기도 (Praying at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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