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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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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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lswkj221] 쪽지 캡슐

2016-09-08 ㅣ No.88425

 

   

초가을 어릴 적에는 눈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빛과 강둑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면서 괜스레 울적해지곤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밤이 되니 이제 곧 또 한 살을 먹는구나 하는 허전한 생각이 들고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어느 누가 저 바람 속 소리 없이 지나가는 세월을 마디마디 끊고 맺으며 백 살도 안 되는 나이를 셈하게 만들었는지....... 고향 강변에 침묵으로만 서 있는 앞산처럼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하얀 구름 안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예쁜 들꽃이나 초롱초롱 빛나는 맑은 별들과 기인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나이테가 늘어가면서도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유도 없이 마음만 왜 그리 급해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닮아가는 듯 눈물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버지 계신 청산만 보아도 목이 메이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높은 울타리에 걸터앉아 시들어 가는 노오란 호박꽃이랑 메마른 길섶의 짓밟힌 질경이 같은 들풀이나 바위틈에 끼어 겨우겨우 목숨 부지하는 키 작은 소나무가 더욱 더 애틋하게 다가오고 성당문을 나서며 티 없이 웃던 어린 장애아의 맑은 얼굴이 콧등을 시큰하게 내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날이 갈수록 삶의 지혜는 보이지 않고 여린 눈물만 가득 고이는데 알록달록한 돗자리 위에서 분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눈 부신 햇살 맞으며 온몸에 남아 있는 것 죄다 토해내고 쭈글쭈글해진 몸이 되어버린 기다란 고추의 그 검붉은 빛깔이 오늘따라 왜 그렇게 섧고 아름답게 보이는지요 성큼 다가선 초가을, 나도 몰래 못다한 그리움 좇아 파란 하늘에 빨간 줄 그으며 마음껏 날아다니는 한 마리 고추잠자리가 됩니다 이상원이레네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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