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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No.2 BWV1003 - Henryk Szeryng│바흐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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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9-01-19 ㅣ No.12523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아련한 추억과 태고의 신비감을 가져다 주는 선율
1.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관하여
바흐(1685.3.21~1750.7.28)는 어느 작곡자보다도 독주 악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율 악기를 반주의 도움이 없이, 홀로 연주 될 수 있도록 작곡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바흐의 이러한 무반주 음악은, 첫째로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와 소나타 6곡(BWV1001~1006), 둘째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BWV1007~1012), 셋째로 무반주 플룻 파르티타1곡(BWV1013) 도합 13곡으로 구성된다. 이 곡들 중에서 바이올린곡과 첼로곡은 그의 생애 중 비교적 안정적이고 행복했던 시기(쾨텐시절)에 만들어진 것들이며, 무반주 플룻 파르티타의 경우는 그 작곡시기를 확실히 알수는 없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역시 쾨텐시기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무반주 바이올린곡은 대략 172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음악적 후원자인 레오폴트 공작의 따뜻한 배려로 바흐는 음악창작에 힘을 쏟을수 있었다. 모음곡형식으로 일관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는 달리 바이올린곡의 경우에는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엇갈리게 배치하고 있다. 여기서 소나타는 "교회 소나타" 양식을 관념하고, 파르티타는 모음곡 형식의 "실내 소나타"를 의미한다. 교회 소나타 형식은 4악장으로 구성되는데 1.3악장은 느리고 2.4악장은 빠른 형식을 취한다. 2악장에서는 모두 푸가를 안배하여 대위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소나타곡들은 파르티타곡보다 훨씬 명상적이고 엄숙한 분위기가 난다. 이에 비해 파르티타곡들은 춤곡을 연속적으로 배열하고 있으며 곡의 분위기도 서정적인 특색이 있다. 이런 무반주 바이올린곡이란 장르는 바흐가 독자적으로 개척한 것은 물론 아니다. 바로크 기악의 특징이기도 한 이런 독주형태의 곡은 17세기 후반 작곡되기 시작 하였다. 그 효시를 이루는 작품으로는 ‘비버(Heinrich Ignaz Franz von Biber/ 1644∼1704)’가 1681년경에 쓴 것이 현존한다. 그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사칼리아 g단조는 적적하고 굉장히 운치있는 곡으로 아주 멋있다. ‘피젠델(Pohann Georg Pisendel/ 1687~1755)’같은 음악가도 무반주 곡에 관심을 가진 바흐의 동시대인인데, 그는 바흐의 무반주곡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바흐이전부터 무반주 작품이 창작된 것을 볼 수 있지만, 무반주 연주의 최고의 예술적 정점을 이룩한 것은 역시 바흐이기 때문에 그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집이 무반주 연주의 전범처럼 숭상받는 것이다.
바흐와 비교적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의 “12개의 무반주 환상곡” 같은 곡도 들어보면 무반주 음악의 조촐한 소박성을 느낄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크 음악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텔레만의 무반주 환상곡은 무반주 플룻이 그렇듯이 바흐음악 보다도 오히려 더 투명하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그렇듯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에서도 바흐는 바이올린이라는 자족적이지 못한 선율악기에 화성적이고 대위법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인접현의 모든 화음을 고려하고, 중음연주의 광범한 활용으로 선율악기에게서는 이례적인 예술적 실험을 시도했다. 바이올린의 작고 아기자기한 울림을 빌어 건반악기에나 가능할 음악적 위업을 달성하고 있는데, 이는 바이올린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지금까지 바이올린 음악의 최고봉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음악적 역량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곡을 당대의 음악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듯이, 바흐의 이 악곡에 대해서도 낭만파 음악가들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무반주 음악이 부여하는 관념은 첫째는 고독이요, 둘째는 음악적 상상력이라고 본다. 본 작품을 위시하여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생각해보라! 반주의 도움이 없다는 점에서 철저히 음악적 홀로서기를 실현하는 장르가 이 무반주 음악이다. 이는 관념상 고독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반주 음악은 음악의 전개에 있어서 하나의 악기 선율만이 존재하지만, 연주하는 이는 자신의 내적 감수성 혹은 영감으로 반주가 없는 그 허전한 빈 공간을 채워서 메꿀 수 있는 커다란 잇점이 있다. 더 나아가 듣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연주자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 여백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무반주 음악이 주는 매력은 엄청나다. 즉 연주자나 감상자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음악장르가 이 무반주 음악인 것이다. 그런데 낭만파 음악가들은 형식논리에 빠져 이 악곡을 피상적으로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태수난곡을 리바이벌한 멘델스존이나, 슈만같은 대가들 조차도 이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진가를 모르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특히 슈만은 이곡을 미완결의 음악으로 이해하여 피아노 파트를 부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수고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바로크음악과 낭만파 음악이 바라보는 음악관의 단적인 차이(낭만파음악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만, 바흐음악은 추상적이고 완곡하다고 생각됨)를 나타내려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흐는 이런 행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 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만약 슈만이 이 악곡의 진가를 알았었다면 피아노 반주를 붙일 것이 아니라 원형 그대로 연주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지금 피아노 파트를 부가하여 연주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아주 희귀하지만 피아노 반주를 동반한 레코딩(1995/ MDG/ 바이올린: 벤자민 슈미트, 피아노: 리사 스미르 노바)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극히 이례적일 따름이다. 그것은 피아노 파트를 부가한 음악가에 대한 후대인의 예우랄까? 아니면 낭만파 음악가들이 바라본 바흐음악 관념에 대한 미지의 호기심이랄까? 일반적으로는 원곡그대로 연주된다. 다만, 음악 감상이라는 차원에서 피아노 반주가 수반된 연주도 반드시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돈이 좀 문제지만) 이 역시 바흐라는 전체 틀 속에서 용해 될 수 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적 궁금증이 발동하는 애호가들이라면 들어보라! 피아노 파트가 있으면 나은지? 아니면 원곡 그대로가 나은지?
 
2. 곡궁(특히 VEGA BACH BOW)에 대하여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 연주와 관련하여 아르놀트 쉐링(A.Schering)이나 알베르토 슈바이쪄 박사(밀림의 성자로 알려진 위대한 인물로 그는 의학. 철학. 음악등 다방면에 능력을 보였는데, 그의 오르간 연주는 아직도 훌륭한 평가를 받음)같 은 음악학자들이 곡궁 에의한 연주를 언급한 이래로 오토 뷔흐너, 롤프 슈뢰더(콜롬비아 레코드사)와 에밀 텔마니(1953 ~54녹음/ TESTAMENT)등의 바이올리니스트 등이 실제로 그런 시도에 동참 하였었다. 여기서 곡궁이란 이른바 "바흐활"로 불리는 등이 휘어 있는 활을 말한다. 물론 이런 곡궁은 바흐당시의 활과는 관계가 없으며, 20세기에 와서 위에서 적시한 음악인들의 머릿속 가설에 근거한 것이고 악보그대로 연주해보자고 하는 지나친 객관주의의 산물인 듯 하다. 이러한 곡궁은 활의 볼록한 도상학적 모양을 가지고 너무 심하게 오버하는 것 같아서 약간 황당한 측면도 있다. 특히 에밀 텔마니(Emil Telmany/ 1892~1988/ 헝가리)는 게오르그 무파트( 1653~1704 )의 글에서 힌트를 얻어서, 덴마크 활 제작자 "Arne Hjorth" 에게 연주하는 동안 엄지손가락의 작동으로 활의 인장력이 조절될수있는 움직이는 Frog를 가진 등이 휜 활을 주문하였다. 활을 느슨하게 하면 활이 최고 4줄까지도 감싸고 일시에 보잉할수 있어서, 다성부의 화음형의 연주가 아르페지오나 나눔 연주로 대체됨이 없이 악보그대로 표현 될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에 텔마니는 이 활을 사용하여 에딘버르 페스티발에서 바흐서거 200주년 기념연주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타이트한 활의 인장력을 요구하는 단선율의 연속된 흐름을 갖는 소나타곡들의 마지막 악장에서 발생하였다. 연주자에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너무나 무리한 사용을 요구하였었다. 이에 다른 활 제작자 "Knud Vestergaard"가 연주 동안 활의 Frog 가 자동적으로 조작될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활을 텔마니는 일생 동안 마스터하기 위해 연습하였다. 엄지손가락의 기능이 보통의 활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즉, 다성부 연주시에는 활의 인장력을 낮게하고 단선율 연주시에는 통상의 활처럼 인장력을 높이기 위해 연주하면서 일일이 조절해야 하므로, 많은 연주상의 어려움을 안고 있음은 불을 본듯 뻔할 것 이다. 이후 이활은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VEsterGAard →VEGA) "VEGA BACH BOW"혹은 "VEGA BOW"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곡궁하면 이"VEGA BOW"를 지칭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에밀 텔마니음반 영문 해설지 참조) 앞서 보았듯이 곡궁을 사용하자는 주장은 다성음악의 특성을 잘 포착할수 있다는 전제에서 제기된 것이다. 다만 지금은 통상의 활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컨데, 곡궁 을 사용하자는 견해는 중음연주 특히 3성부,4성부의 화음의 음가를 정확히 연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장되었다고 보인다. 곡궁을 사용한 위 음반(특히 에밀 텔마니의 음반)에서 샤콘느부분의 연주를 들어보면 화음연주의 음가가 통상의 활을 사용한 연주보다 세밀하다는 것을 감지 할수있다. 이런 점에서는 일응 이들의 주장이 입론될 여지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선율의 전개에 있어서는 곡궁이 곡을 둔중(너무 꿈뜨고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주며 음색의 강약이나 흐름상 어색함)하게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것 같다. 즉 중음연주이냐 단선율 연주이냐에 따라 활의 인장력을 조절하여야 할 뿐아니라 보잉시의 힘의 조절에서 어색함이 느껴지고 선율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따라서 곡궁이라는 도피처를 찾기보단 통상의 활로 밀어 부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음가의 불가역적 한계는 나누어 연주하는 방법이나 풀어서 아르페지오형태(다 만 이런 아르페지오 형태를 취하면 음악이 완곡해져서 엄정성이 날아가는 단점은 역시 있어서 어떠한 방식을 취하여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난점을 제공한 것은 결국 어쩌면 불가능을 요구한 바흐의 작곡 방식 때문일 것임. 이곡들은 바이올린 곡이지만 그의 본령답게 오르간 곡을 상정하고 있는 듯 함)을 취하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곡궁을 사용하자는 견해는 지금은 설득력을 거의 상실하여 지지하는 자를 찾기 어렵게 된 것 같다.
 
3. 이곡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초기연주자들/ 최초의 전곡 레코딩
지금 음반으로 확인되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레코딩은 바이올린 연주로만 근 50여종이 넘는 것으로 안다. 여기다가 다른 편곡 레코딩까지 포함시킨다면 한 60여종에 이를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능력의 잣대로서 이 곡이 원용되는 현실을 보면 이에 도전하여 레코딩을 남기는 것이 하나의 영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초로 전곡녹음이 있었던 30년대 중반을 기산점으로 잡으면 벌써 70여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바흐의 생명력은 당대가 아니라 그 이후에 후세들에 의해 새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무반주 바이올린곡도 그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19말, 20세기 들어와서 요하임, 조르지 에네스코(Georges Enesco/1881~1955/루마니아), 아돌프 부슈(1891.8.8~1952.6.9/독일), 요제프 시게티(1892.9~1973.2.20/부다페스트)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 의해서 이곡의 진가가 확인되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무반주 바이올린 곡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본연의 모습대로 바흐를 실현한 개척자들이며, 이곡 연주의 사실상의 선구자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들이 연주한 녹음을 들어 보면 초기 녹음의 특성답게 순수한 맛이 느껴진다. 또한 다소 거친 보잉 속에서도 카리스마 같은 음악적 흡인력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연주를 감상하는 것은 이 곡집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들 연주가 발산하는 음악적 응집력과 아름다움은 오래된 석상처럼 고색창연함을 잃지 않는다.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필청 음악들이며, 연주음반 애호 목록의 최고의 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다.
이 곡의 레코딩은 대략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돌프 부슈, 에네스코, 시게티, 밀스타인등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시작된다. 초기 이들이 무반주의 연주에 불어 넣은 생명력은 지대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헨릭셰링의 정제된 연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최초 전곡 녹음(1934~1936/EMI)의 역사적인 위업은 당시 18세의 예후디 메뉴인(1916.4.22~1999.3.12/뉴욕 태생)에 의해 이루어 졌다. 10대의 소년의 연주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연주라고 생각된다.(지금의 연주자들과 평가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메뉴인은 이미 10대 초반부터 이곡에 관심을 가지고 공개연주회를 가지며, 관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곡 레코딩은 20년 정도 후에 재녹음된 음반보다 오히려 음악적 호소력이 더 높다고 본다. 순수한 면과 사춘기 소년이 간직한 순박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메뉴인의 최초 레코딩은 그 자체 역사적인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연주자체의 완성도 면에서도 훌륭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 이다.
 
4. 샤콘느의 위대성
1.샤콘느와 바흐 샤콘느
너무나 유명한 것이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인데, 이 샤콘느는 바흐 음악 전체에서 그 비중이 상당히 큰 곡에 들어간다. 범위를 좁혀 무반주곡이란 카테고리에서 보아도 이 “샤콘느”의 중요성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샤콘느는 멕시코에서 스페인으로 전래된 무곡이었다. 특히 독일 이태리등지 에서는 샤콘느가 기악곡의 형식으로 발전했다. 즉 이것은 3박자의 장중한 리듬을 바탕으로 변화무상한 변주를 구현하는 곡 형식으로 전이된 것이다. 샤콘느라는 기악형식은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서 쉽게 이미지를 부각시킬수 있으며, 연주자나 작곡자에게 곡의 운용에 있어서 해석과 창작의 영감을 주기 때문에 음악 감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작곡자 연주자 모두에게 큰 매력을 준다. 그래서 바로크시대에는 이런 악곡이 작곡되는게 아주 유행하였는데, 샤콘느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작곡가의 음악들로는① 헨리퍼셀의 현을 위한 샤콘느 g단조, ②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의 샤콘느 g단조, ③앙투안 포르크레의 "비올라를 위한 작품"중 샤콘느, ④북스테후테의 샤콘느 e단조, ⑤장 필립 라모의 발레 모음곡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 "중 샤콘느, ⑥요한 밥티스트 쉔크의 샤콘느 G장조 ,⑦요한 파스카르 케를 의 샤콘느 C장조, ⑧루이 쿠프랭의 샤콘느C장조/ F장조 등의 작품이 있다. (최근에 BMG에서 나온 앨범 "샤콘느의 예술"에서 감상할수 있음) 이 작품들은 바로크음악답게 그지없이 투명하고 소박한 선율로 물밀듯이 조용히 가슴을 파고 드는데, 샤콘느라는 기악곡에 대해 무한한 동경을 일깨운다. 들으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샤콘느라는 기악곡형태에서 최고의 위업을 이룬이는 바흐이다.
글쓴이가 이 바흐의 무반주 샤콘느를 들어본 결과, 곡의 전반부 말미(통상 한 5~6분정도 진행한 상태에서)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처리가 서로 다름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아주 짜릿하게 처리하는 헨릭셰링, 밀스타인, 에네스코, 하이페츠, 레오니드 코간, 스토코프스키의 편곡 연주등이 있는가 하면 시게티, 그뤼미오, 메뉴인, 마르치, 쿠이켄, 에밀 텔마니등등의 훨씬 더 많은 연주자들은 술렁술렁 넘어가듯이 연주하고 있다. 어느 것이 더욱 악보에 충실한 해석인지 궁금하여 음악하시는 분한테 문의해 보았더니, 샤콘느 전반부 끝부분은 화음표시로만 되어있어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해석자마다 다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전자의 해석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데, 2대가 연주하는 느낌을 줄 뿐아니라 곡의 조형감 측면에서도 더욱 설득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이런 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나탄 밀스타인일 것이다. 이 샤콘느는 베이스라인을 주축으로 하여 끊임없는 변주를 구축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네마디씩으로 된 두개의 악구를 가진 8마디의 주제가 화성을 바탕으로 중후하고 위엄있게 제시 되고있으며, 정교하게 계산된 30여개(4마디를 기준으로 하여 60여개의 변주형식이라고 분석할수도 있음)의 다양한 변주형식의 음악적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비버의 무반주 파사칼리아가 바흐 샤콘느의 모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곡을 분석해보면 크게 3가지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주제~제15변주/ d단조 조성의 장중한 오르간풍의 주제가 점차적으로 자잘하게 쪼개어져서 클라이 막스에 이르렀다가 다시 주제의 모습으로 복귀한다. 화성적인틀을 축으로 하여 선율적인 맛도 은근히 배여 있는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진행이 인상적이다. ②제16변주~제24변주/ D장조로 조바꿈하여 극히 정화된 감정상태를 노래한다. 좀더 선율적인 맛이 더해져 있으며, 앞의 단조 조성과 절묘한 대를 이루고 있다. ③제25변주~제30변주/ 다시 d단조 조성으로 복귀하여 주제 선율과 같은 형태의 진행을 하며 정교하게 발전하다가 곡을 끝맺는다. 바흐전기를 쓴 슈피타 같은 이는 샤콘느를 일컬어["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이며, ["인류음악이 가질수 있는 최고의 조형미와 아름다움을 가지는 최고의 곡"]이라고 찬사를 던지고 있다.
 
2.(글쓴이가 생각하는)샤콘느를 가장 잘 연주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들
1) 순수와 직관이 교차하는 부슈, 에네스코등의 초기 연주들
6.70 년이상을 소급하는 긴 시간의 간극에서 오는 열악한 음질도 이들 연주의 뛰어남을 가로 막지는 못한다. 모든 외형상의 기교를 초월하고 단지 음악이라는 직관적인 통찰력에 의거하여 곡을 풀어 나가는 이들의 연주 앞에서는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없을 정도이다. 낭만성과 엄정함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어느 한쪽에 치우쳐있지도 않고, 다만 듣는 이의 영감에 호소하며 뚜벅 뚜벅 나아갈 뿐이다. 다소 와일드한 기교상의 거침도 연주자체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기 보다는 곡의 순수성과 신비로움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상승 작용하는 것 같다. 이들이 연주하는 샤콘느를 듣노라면 인간적인 따사로움과 순수미를 느낄 수있다. 샤콘느의 아름다움을 깊히 공감하려면, 이들의 연주는 반드시 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에네스코(Georges Enesco/1881~1955/루마니아)의 연주는 어떤 이의 샤콘느 보다도 선굵은 진행을 보여준다. 그의 샤콘느를 들어보라! 처절한 절규같은 느낌이 들것이다. 몇 군데의 미스터치가 존재하지만, 아주 진솔한 느낌을 전한다. 이 연주는 직접적으로 헨릭 셰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연주는 시게티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영적인 초절함이 연주 속에 녹여져 있다.
 
2) 영적인 선율이 전율로 다가오는 마력적인 시게티의 연주(연주시간: 15‘ 59)
요제프 시게티(1892.9~1973.2.20/부다페스트)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녹음한 전곡 레코딩은 무반주 연주 전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가 연주하는 샤콘느를 들어보면 최근의 연주자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연주속도가 상당히 느리고, 최정상급 연주자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교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곳곳에 도사린다. 비브라토가 매우 거칠고 액센트를 많이 사용하여 곡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예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주외형을 가지고 이 연주를 평가절하하여 판단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간다 할 것 이다. 시게티 역시 어떤 연주자보다도 샤콘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인데, 그의 연주가 애호가를 열광시키는 것은 결코 "하이페츠"같은 고난도의 아찔한 피상적인 기교가 아니다. 그의 연주는 기교를 초월한 고고한 음악적 자태로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시게티가 샤콘느에 불어 넣은 음악적 위업은 영감을 자극하는 소박하고 솔직 담백한 조형미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그의 연주를 단적으로 말하면, 기교를 초월하고 직관적 통찰과 무한한 영감이 빛을 발하는 지성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가 논란의 대상이기도 한 이 음반을 굴지의 음반으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이 샤콘느를 너무도 감명적으로 연주하는데 있다.
 
3) 셰링의 오르간풍의 점착성의 연주(신반/ 연주시간: 14'' 22)
     
     
헨릭셰링(Henryk Szeryng/1918~1988/바르샤바)의 이름은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대명사 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는 바흐연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흔들림없는 냉철함으로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샤콘느 연주를 들어보면 바이올린을 마치 오르간같이 연주한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보다도 그는 현을 균질적으로 연주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르간을 염두에게 두고 작곡되었을 법한 이 곡집 특히 샤콘느에서 셰링식의 해석이 감명을 준다는 것은 너무나 확연하다. 고음이나 저음이나, 단선율이나 중음연주나, 추호의 흔들림 없는 탁월한 균형감각을 그는 이 샤콘느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유난히 화음형의 연주가 많이 배치된 이곡을 그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마치 건반악기 연주하듯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런 이유로 그가 만들어 내는 샤콘느는 매우 끈적끈적한 흡인력을 발산한다. 오르간풍의 이런 점착성의 연주는 바이올린으로는 좀처럼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음정을 흔들림이 없도록 유지하면서, 균등한 음색을 만들기가 그리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화성의 틀을 벗어날 수도 있으며, 음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셰링은 이런 어려움을 전혀 개의치 않고 덤덤하게 연주 하는데, 그리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매우 강인한 맛을 들려 준다. 또한 유리같은 맑은 음색과 냉정함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내면에서는 뜨거운 정열을 느낄 수 있다. 표현에 있어서 고전주의적인 명쾌함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 내면은 용암 처럼 뜨거운 느낌을 무한정 담고 있다. 요컨대, 그의 샤콘느는 고전주의적인 명료함과 낭만주의의 멋진 조화를 통해 이룩한, 또 하나의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라고 해도 좋을 것 이다.
 
4) 밀스타인의 드라마틱한 바이올린 본연의 울림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1904~1992/러시아)은 낭만파음악을 잘 연주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연주자이지만, 스스로 술회하듯이 샤콘느를 어떤 곡보다도 좋아했다. 그가 연주한 샤콘느를 들어 보면 드라마틱하고 기교적인 아찔함에 놀라게 된다. 강약의 대비감, 템포의 완급조절, 음색의 다변화 등을 통해 샤콘느가 가질 수 있는 감춰진 또 다른 측면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화음형의 중음 연주에 있어서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음향처럼 울려 퍼지며, 빠른 부분의 연주는 하이페츠보다 더 스피디하게 연주한다. 전체적인 템포는 느린 편에 속하지만, 속도의 가감조절과 비트의 강약조절로 인해 음악적 조형감이 탁월하고, 음악의 밀도가 매우 높다. 또한 기교적인 훌륭함 때문에 곡 자체가 매우 정교하게 연주되고 있다. 최고의 비르투오소인 밀스타인의 낭만성이 샤콘느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 놀라운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언제 들어도 놀라울 정도의 매력을 선사하는 곡이다. 밀스타인은 대표적인 기교파에 속하는 연주자이지만, 바흐음악처럼 기교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는 않는 이러한 장르에서도 아주 훌륭히 그 진가를 발휘하는 몇 안되는 명인이다. 하이페츠같은 20세기 최고의 비르투오소조차도 자신의 수업을 빠질지언정, 밀스타인의 연주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극찬을 하였다고 한다.
 
5)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청아한 그뤼미오의 연주
     
     
아르투르 그뤼미오(Artur Grumiaux/1921.3.21~1986/벨기에)는 외형상 유미주의적인 요소가 강조된 연주를 들여주고 있다. 날카로운 음색이 아닌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음색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음색의 아름다움이란 측면에서 그뤼미오는 20세기에 유명을 달리했던 명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서도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되는데, 몇 백년이 지나도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음색의 소유라인 것 같다. 또한 그뤼미오는 모차르트 음악에 탁월한 연주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뤼미오의 샤콘느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지나간다. 사춘기시절의 청춘의 애상감이 끝없이 펼쳐지는 듯하다. 어느 누구의 샤콘느보다도 음악적 내용이 구체화 되어 있다. 그가 연주하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어봐도 역시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비탈리의 샤콘느도 그뤼미오 연주가 최고중의 하나(물론 하이페츠의 연주도 초절한 기교를 바탕으로 아찔하고 절규하는 느낌이 인상적이고 감명적이며,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멜쿠스의 원전연주도 탁월하기로 정평이 나있음)라 고 생각한다. 음색자체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면 바이올린으로는 이례적인 허스키 보이스에 가까우며,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청아한 음색으로 들린다. 이런 음색이 무반주 바이올린의 성격과 맞물려 아주 화성적이고 대위법적인 맛을 더하게 해준다.
 
6) 차가운 풍모에서 뜨거움이 분출하는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연주시간: 13‘ 51)
이 연주는 음반으로 들어본 것이 아니라 음악파일의 형태로 입수하여 듣게 된 샤콘느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와 관련하여 어떤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음악이 주는 호소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의 연주가 기분좋게 하는 것은 전반부 말미부분의 아르페지오 부분을 나탄 밀스타인처럼 연주하는 것이다. 코간도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서 지명도가 높은 음악인으로 명인으로 칭송이 자자한 연주자인데, 그의 샤콘느는 헨릭 셰링. 나탄 밀스타인. 그뤼미오를 합성한 듯한 느낌을 준다. 구체적으로 매끄러운 선율의 흐름을 중시하는 것을 보면 셰링의 연주가 느껴지고, 기교상의 짜릿한 측면을 보면 나탄 밀스타인의 연주가 떠오르며, 부드러운 선율진행을 보면 또한 그뤼미오가 생각나게 한다. 꼿꼿하게 서서 연주하는 그의 차가운 보잉장면이 그의 음악의 진면목이 아님을 알게한다. 무표정한 다소 뻣뻣한 그의 풍모와는 달리 그의 연주는 너무나 뜨겁다. 최근 알게 된 샤콘느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샤콘느라고 생각된다. 앞에 든 3명의 연주와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다고 보여진다.
 
7) 슬픔과 청결미가 돋보이는 슬픈 요한나 마르치의 연주(연주시간:15‘ 17)
제1곡인 알레망드 부분 부터가 떨리듯이 시작되는데, 샤콘느 악장에 이르면 그러한 떨림은 흐느낌 처럼 애잔하게 가슴을 진동한다. 서두부분의 음정이 약간 불안정하다. 그러나, 이는 이곡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비극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가져다 주는 쪽으로 작용한다. 전체적으로 요한나 마르치(1926~1979)의 연주는 느리고 가요적인 선율미가 두드러지게 부각되어있다. 아름다운 그녀의 우수어린 모습이 고스란히 샤콘느에 녹아 있다. 아름답다는 것이 그녀에겐 삶의 비극으로 작용한지도 모른다.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최초로 이 음반을 녹음 했으며, 지금도 그녀를 능가하는 여성 연주자는 없다고 본다. 한음 한음 조심스럽게 풀어 나가는 그녀의 연주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녹여져 있으며, 청결미가 감돈다. 조각가인 글렌 암스트롱 같은 이는 마르치의 음악에 경도되어 그녀의 음반을 출반할 목적으로 레코드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3.샤콘느가 영화속 전면에서 주제로 쓰인 경우/ 영화[바이올린 플레이어]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에서는 샤콘느가 전편을 감싸고 있는데, 영화 말미부분에는 샤콘느 전곡연주 장면이 흘러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르몽은 자신의 성공이 보장된 솔로이스트의 자리를 박차고 허름한 지하철에서 거리의 악사가 되어 샤콘느를 연주한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연주한다. 세상이 버린 지하철 노숙자 사이에서 그들을 위해 눈물 머금은 샤콘느를 연주하면서 영화가 페이드 아웃된다. 빈민가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걸인같은 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이 샤콘느를 연주할 때 할렘같은 어두운 골목거리에는 희망의 빛이 감돈다. 찡그리는 얼굴에서는 웃음이 생긴다. 만물이 활력을 얻은 듯 발돋음한다. 여기서 영상과 어우러진 샤콘느 연주는 극히 정화된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실제 연주는 기돈 크레머가 담당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한 고뇌하는 음악가를 통해, 음악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데, 음악의 본질은 무엇이며, 또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음악연주를 하는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을 통해 음악과 음악가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한다. 이 영화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바를 역설적으로 표출한 영화일수도 있다. 음악학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샤콘느를 통해서 표출하는 멧세지는 개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따스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희망의 노래는 반목과 불신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고 할 것이다. 특히 아픔을 겪고 사는 이 땅의 소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는 바흐 샤콘느를 또 다른 방식으로 구체화시킨 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흐라는 ‘거대한 음절’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5.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 6곡에 대한 해설
1. 소나타 제1번(BWV1001/ g단조)
이 소나타는 곡전체가 명상적인 느낌을 주며 선율이 대단히 아름다운 곡이다. 느린 부분의 음악적 흐름이 매우 심도가 높다. 각 곡간의 유기적인 조화와 대조의 묘미도 뛰어나다. 작곡자 자신도 유달리 애착을 가진 곡이라고 한다. 이 곡도 매우 건반 악기적으로 작곡되어져 있다. 가을에 어울릴 깊은 사색과 독실한 정서가 곡 깊숙히 침전되어 있다. 아다지오 악장은 즉흥적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력 높은 악곡이다. 다음의 푸가악장은 약간 격정적인 느낌이 드는 무곡풍의 곡이며, 악곡의 치밀한 구성 때문에 오르간 곡(BWV539/2)및 류트 곡(BWV1000)으로 편곡되어져 있기도 하다. 시칠리아노 악장(B플랫장조)은 조성이 장조로 바뀌어 그런지 다소 평온한 느낌이 들며 서정적인 맛이 감돈다. 격렬한 푸가악장과 활발한 프레스토 악장사이에 놓여 대비감을 극대화시키는 가교역할을 하고있다. 마지막 곡인 프레스토는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느낌이 드는 경쾌한 곡이다. 이 소나타 제1번이 지향하는 바는 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안과 관조라고 생각된다. 이곡의 구성은 제1곡//아다지오//4/4박자, 제2곡//푸가(모방 대위선율 형식이 극도로 발휘된 음악 형식)//2/2박자, 제3곡//시칠리아노(시칠리아 지방에서 유래한 전원적 분위기의 춤곡)//12/8박자, 제4곡//프레스토//3/8박자로 되어 있다.
 
2. 소나타 제2번(BWV1003/ a단조)
심금을 울리는 선율미가 가슴을 파고들 정도이며 곡 전체가 무거운 맛이 감돈다. 그라베 악장은 비장한 선율미가 심혼에 육박한다. 제2곡 푸가 악장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느낌이 드는 곡으로 당당하고 순수한 맛이 풍긴다. 이 푸가 악장도 쳄발로곡 d단조(BWV964)로 편곡 되어져 있으며, 대위법적 기교가 사용되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곡의 전개가 매우 다채롭게 와 닿는다. 안단테는 조성이 나란한 조인 C장조로 사용되어 있다.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하며 서정성이 뛰어난 곡이다. 알레그로는 바로크 음악의 특징이기도 한 메아리 효과를 사용하고 있으며, 민활한 바이올린의 역동적인 표현이 불꽃을 튀긴다. 이 곡의 구성은 제1곡//그라베//4/4박자, 제2곡//푸가//2/4박자,제3곡//안단테//3/4박자, 제4곡//알레그로//2/2박자 로 되어 있다.
 
3. 소나타 제3번(BWV1005/ C장조)
이 3번 소나타는 전 6곡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 숭고한 분위기가 나는 곡이다. 아다지오 악장의 근엄한 느낌은 종교음악처럼 심각한 맛을 부여한다. 이 아다지오 악장도 작곡자에 의해 쳄발로곡 G장조(BWV968)로 편곡되어져 있다. 푸가악장은 샤콘느에 비견될 정도의 내실을 겸비한 긴 곡(그의 전 푸가곡 가운데 가장 긴 곡이라 함)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 푸가의 주제는 "오소서 성령이신 주님이시여" 라는 코랄에 의한 것으로 바흐자신이 특히 사랑한 선율로 알려져 있다. 이 선율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과 "하느님은 그의 양들을 부르시는도다" 라는 두개의 칸타타 곡에서도 다시 사용되고 있다. 이 3번 소나타의 푸가는 개인적으로 헨릭 셰링의 해석이 초절하다고 생각된다. 완전히 건반악기로 연주하는 것 같은 호소력을 준다. 라르고 악장과 알레그로 악장은 앞의 두 악장에 비하여 다소간 서정적인 맛을 간직하고 있다. 인내를 가지고 깊이 음미해 볼 곡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라르고 악장은 조성이 F장조로 사용되어 변화의 묘미가 뛰어나다. 바뀐 조성때문인지 곡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느낌이 든다. 이 곡의 구성은 제1곡//아다지오, 제2곡//푸가,제3곡//라르고, 제4곡//알레그로 앗사이 로 되어 있다.
 
4. 파르티타 제1번(BWV1002/ b단조)
이 곡은 매우 전 6곡 가운데서 가장 서정적인 곡이라 생각된다.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오는 듯한 애뜻한 선율미가 가슴을 여미게 한다. 국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 파르티타 제1번 제1곡 알레망드를 잠시 사용하여 극을 드라마틱하게 하고 영화의 격조를 높이고 있다. 영화에서 원용된 연주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그뤼미오의 연주가 이 영화와 가장 어울릴것 같다. 파르티타의 애절한 분위기가 영화의 내용적 흐름과 멋지게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컨데, 이곡은 향수를 자극하여 과거에 대한 회상을 불러 일으키는 선율인 것 같다. 이 파르티타 제1번은 다른 곡과는 달리 두블(Double)이라는 변형적인 악곡이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템포 디 보레아 등의 뒤에 부가 배치되어 모음곡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곡의 구성은 제1곡//알레망드, 제2곡//Double, 제3곡//쿠랑트, 제4곡//Double, 제5곡//사라방드, 제6곡//Double, 제7곡//Tempo di borea, 제8곡//Double로 되어 있다.
 
5. 파르티타 제2번(BWV1004/ d단조)
전6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 말미부분에 자리한 장대한 샤콘느는 알려진 바 대로 미증유의 걸작이다. 바흐는 이 샤콘느에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기능적 한계를 넘어 불멸의 음악적 위업을 이룩하고 있다. 샤콘느의 규모가 이례적으로 너무나 커서 앞의 곡들 전체가 샤콘느과 댓구를 이루는 형세이다. 샤콘느는 독자적으로도 그 구성과 음악적 내용이 완벽에 가까운 기악곡으로 오케스트라, 피아노등의 건반악기, 기타와 류트등의 탄현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기까지 한다. d단조 조성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서 다소간의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알레망드는 활기찬 두도막 형식의 중후한 무곡으로 외형상 서곡으로 곡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한다. 쿠랑트는 좀더 경쾌한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곡이다. 사라방드는 느리고 무거운 아다지오 성격의 악장이다. 지그는 바이올린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으며 불꽃을 뿜는듯한 열정으로 가득찬 악장이다. 이곡의 구성은 제1곡//알레망드// 4/4박자, 제2곡//쿠랑트// 3/4박자, 제3곡//사라방드// 3/4박자, 제4곡//지그// 12/8박자, 제5곡//샤콘느// 3/4박자로 되어 있다.
 
6. 파르티타 제3번(BWV1006/ E장조)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파르티타 제3번은 여름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곡이다. 경쾌하고 명랑한 분위기가 전편을 감도는, 밝고 아름다운 곡으로 아기자기한 울림이 귓전을 맴돈다. 무엇인가 희구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도 느껴지는 외향적인 곡이라 생각된다. 이곡은 다른 모음곡과는 유달리 소박한 느낌의 무곡인 루르(프랑스에서 유행한 춤곡)가 원용되어 곡 자체의 명랑성을 돕고있다. 이 곡의 프렐류드는 칸타타곡(BWV29, BWV120a)에 차용되어져 있기도 하다. 또한 전곡이 바흐 자신에 의해 류트곡으로 편곡(BWV1006a)되어 있기도 한데, 현대 기타로 연주해도 그 맛을 잘 전달할수 있다.(특히 존 윌리암스나 나르시소 예페스의 연주가 훌륭하다고 생각됨) 이 곡가운데 변화무쌍하고 자유로운 프렐류드 선율과 상큼한 가보트 선율은 특히 그 유명세에 힘입어 연주회에서 앵콜곡으로 자주 선호된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호에 탑재된 동판에 수록된 몇곡의 바흐 음악가운데 이 파르티타 제3번 제3곡인 가보트 악장이 포함되어 있다. 선곡된 음악은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연주로 알려져있다. 이 파르티타 제3번은 6편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 가운데서 가장 근대적인 양식을 가진 곡이라 한다. 이곡의 구성은 제1곡//프렐류드, 제2곡//루르, 제3곡//가보트, 제4곡//미뉴에트, 제5곡//부레, 제6곡//지그로 되어 있다.
 
6. (글쓴이가 생각하는)이 곡집의 최고의 명반들
1. 요제프 시게티/ 뱅가드 클래식/ 1955~56
     
     
요제프 시게티의 이 연주는 바이올린 선율의 배후에 내재된 무언의 영적 느낌이 그의 연주를 매우 신비스럽게 한다. 사실 모든 것을 배제하고서 기교 하나만으로 그의 연주를 판단한다면,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와닿는 그의 연주의 흡인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성적인 음색, 거친 비브라토, 빈번한 액센트의 사용 등이 그의 연주를 특징지우는 외향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런 그의 연주는 일반적인 연주자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시게티는 내면적인 지성이 기교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시게티의 이 음반은 지금까지 논란이 많아 왔다. 무반주 역사상 최고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수구적이다 혹은 구태의연하다라는 혹평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글쓴이는 이 음반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뚜벅뚜벅 바흐를 향해 매진하는 시게티의 무반주는 다소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순수한 열정이 소박하게 표출되어있어 자신의 내면세계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그의 연주는 거친 음색이 카리스마처럼 느껴지는 보기드문 지성적인 연주라 할 것이다.
“셰링을 비롯한 여러 바이올린 주자들이 완벽한 기교를 과시하는 바흐에 비하면 시게티의 연주는 너무 나이 들어 녹음한 때문에 고지식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나 기교 따위를 초월한 그의 해석에서 하나하나의 음에 담은 바흐의 의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시게티가 바흐의 음악 속 깊숙이 육박하여 구조적으로 힘차게 표현해 나가는 치열한 정신력에는 압도된다. 성실한 태도, 진지한 감정의 접근은 그대로 바흐 음악의 본질과 하나가 되어 혼연일체의 융합을 이룬다. 바흐 음악이 지니는 카타르시스의 힘 - 정화(淨化), 성화(聖化)의 엄숙한 감동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감싼다. 시게티의 연주를 들으면 숱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바흐 음악의 본질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읽어버린 채 겉돌고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안동림 선생님의 글 중에서)”
 
2. 헨릭 셰링(55년레코딩-소니클래식컬/ 67년레코딩-DG)
     
     
셰링의 위대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불멸의 음반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바흐 전문연주자란 사실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6곡 어느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고르게 연주하는 그를 보면, 들을 때마다 경외감이 생긴다. 특히 소나타 같은 곡의 연주는 셰링을 따를 자가 없다고 생각된다. 파르티타곡에서도 그는 흔들림 없는 초절함으로 서정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보다도 깨끗한 음색을 들여주며, 뜨거운 내면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곡집의 이상적인 연주로 이 음반이 거론되는 주된 이유는 화려한 기교나 과도한 감정 처리가 아니라, 무뚝뚝한 표현과 냉철함을 바탕으로한 내적 열정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흐의 위업을 어떤 연주보다도 잘 전달하는 연주로서, 좀처럼 싫증이 나지 않는, 이 곡집의 불후의 명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는 전곡을 2번 녹음했는데, 55년레코딩은 청장년에 다다른 그의 힘있는 보잉을 엿볼 수 있다. 매우 순수하고 유미로운 연주이다. 윤기가 감도는 굵은 선율의 호소력 짙은 바이올린음색은 청춘의 애상감 마저 느끼게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 음반이 훨씬 음악적으로 더 와 닿을 수도 있다. 음악적 구체화란 측면에서의 이음반이 주는 솔직 담백함과 명확성은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67년 레코딩은 10년 이상의 시간의 간극 탓인지, 바이올린의 음색에서는 약간 기름기가 빠진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쁜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음색을 초월하는 내적인 성숙미가 발현될 수 있는 단서를 부여 한 것으로 볼 수 도 있으니 말이다. 이 67년 음반을 들어 보면 훨씬 감정조절이 냉철해 졌으며, 감성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그런 음악으로 내실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력히 받게 될 것이다. 통상, 셰링하면 이 67년 앨범을 최고로 치지만, 55년 녹음도 결코 이에 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반,구반 모두 최고의 음악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양자 중 어느 것에 더 우위를 둘지의 판단은 오로지 감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3. 나탄 밀스타인(50년중반레코딩-EMI/ 73년레코딩-DG)
     
 
     
구 소련 출신으로 밀스타인은 기교파에 속하는 대표적인 연주자라고 할수 있을 것 이다. 그가 표현하는 바이올린 음색은 셰링만큼 깨끗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오하고 깊은 맛을 주는 선율도 아니다. 오히려 매우 날카롭고 가는 음색으로 연주한다. 그런데 그의 연주가 셰링과는 또다른 의미에서의 최고의 대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음악적 정교성를 드높이는 초절한 기교와 음악을 조형적으로 구축해가는 낭만성에서 일 것 이다. 한음도 놓임이 없는 그의 세밀한 악구 처리는 어떤 연주보다도 훌륭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한홀의 빈틈도 없는 촘촘히 짠 비단처럼 헛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기교파 연주자들이 실패하곤 하는 음악의 내용실현 측면에서의 감정이입도 훌륭하여 매우 내실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파르티타 제2번, 제3번 연주를 들어 보면 그의 악구처리와 감정처리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수 있을 것이다. 그는 두번정도 전곡을 녹음 했는데, 이들 50년대 레코딩과 73년 레코딩 모두 뛰어난 음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구반은 전체적으로 속도가 약간 더 빠르며, 기교적으로 더 안정적이다. 모노 녹음 특유의 정갈한 맛도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하여 73년 음반은 곡의 내면화에 진일보한 연주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곡의 밀도와 조형감 측면에서 신반이 약간 더 우세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신반 구반 양자의 우위성 판단에 있어서는 헨릭 셰링이 그러하듯이 단적으로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4. 아르투르 그뤼미오/ 필립스/ 1960~61
     
     
그뤼미오는 클라라 하스킬(여류 pianist/1895.1.7~1960.12.7/루마니아)과 협연한 모짜르트음악이 전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연주자 이다. 그의 바이올린음색은 매우 유려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색이다. 이런 음색상의 특이점은 그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와는 달리 활을 비교적 느슨하게 하여 연주한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트라베르소 플룻 음색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엠마 커크비의 목소리같기도 한데, 청초하고 단아한 음색은 수채화의 채색처럼 은은하게 귓전을 맴돈다. 음색 하나만을 놓고 판단 한다면, 이세상의 어떤 바이올린 소리보다도 아름답다. 필립스 레이블에서 녹음한 이음반도 극히 아름다운 연주로 새로운 시각에서 바흐를 바라본다. 유미주의적인 그의 이러한 연주 스타일은 엄정한 맛이 풍기는 소나타보다는 서정성을 보다 더 간직한 파르티타에서 아주 큰 설득력을 갖게 한다. 특히, 파르티타 제1번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수 없는데, 뼈에 사무치도록 깊이 가슴을 파고든다. 파르티타 제2번, 3번도 최고의 예술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바흐음악이 꺼리는 비브라토의 대담한 사용이 우선 눈에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상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뤼미오가 구축해 나가는 음악적 응집력은 모든 것을 기우로 만들어 버린다. 음악의 진행에 있어서 ,결코 속됨이 없다. 또한 결코 감정이 넘쳐 흐르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그뤼미오의 연주는 낭만적인 정신이 충만한 연주 이지만,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중용적인 조화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5. 요한나 마르치/ EMI/ 1954~1955
무반주 연주에 도전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는 몇 되지 않는데, 마르치는 그 중에서도 단연코 선구자적인 존재이다. 근자에 여성 연주자들의 녹음이 종종 행해진다. 고난의 삶을 살다간 음악가들을 보노라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어찌보면 축복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그들이 남긴 보석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행운, 아니 그 이상이라는 생각도든다. 마르치도 비운의 음악가 가운데 한명일 것 이다. ‘월터 그레그’라는 PD의 성적인 요구를 뿌리친 그녀에겐 음악가로서의 명성에 많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레코딩은 얼마되지 않는데, 이유는 그의 농간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가 남긴 이 무반주 레코딩은 그녀의 삶과 자태가 음악에 녹아있다. 슬프디 슬픈 비가를 연상시키는 흐느낌 같은 가요적인 선율미가 전 6곡을 흐르고 있다. 그녀가 들여주는 바이올린의 음색은 순백색의 청결감 그 자체라고 보면 될 것이다.
 
6. 지기스발트 쿠이켄/ DHM/ 1981(바로크 바이올린)
     
     
쿠이켄(1944년 출생/ 벨기에)은 인간적으로 따스하고 존경할만한 인격의 소유자인 듯하다. 그가 입양해서 잘 키운 우리나라 출생의 자신의 아들.딸을 보면 고개 마저 숙여진다. 얼마 전 방한하여 자식들의 생부모들을 찾아 주려 다니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시골장터서 파는 칡차를 마시고 그것의 깊고 독특한 맛에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기스 발트 쿠이켄은 바로크 원전 바이올린의 선구자적인 존재이다. 원전 연주는 거트현을 달아서 바로크 스타일로 연주하는데, 거트현 자체가 주는 부드러운 인간적인 울림은 아주 매력적이다. 다만 낮은 현의 인장력은 연주를 곤혹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내몰기도 한다. 소나타 제1번 푸가악장이나, 샤콘느를 들어보면 연주시 의도하지 않은 현의 이완작용에 애를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처럼 바로크 바이올린연주는 장단점을 동시에 가진다. 최근 원전 연주가 유행이어서 레코딩도 자주 행해진다. 원전연주 중 단연코 두각을 드러내는 연주자가 바로 쿠이켄이라 할 수 있을 것 이다. 그의 연주를 들어 보면 엄정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도처에 보인다. 그리고 거트현 특유의 따스한 맛이 음악자체를 낭만적으로 들리게 한다. 녹음 한지가 벌써 20년을 넘는데, 원전 무반주연주 역사에 있어서 그의 선구자적인 업적과 음악적인 성취는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서 자리매김 받고 있는듯하다. 인간미 물씬 풍기는 이 쿠이켄의 음반은 아무 꺼리낌없이 부담없이 와 닿는 음악으로, 초심자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연주이기도 하다.
이상이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대하여, 각종자료를 참고하고 음반을 통해 습득한 저의 생각입니다. 무반주 바이올린곡은 무반주 첼로곡보다도 출반된 음반의 음악적 완성도가 훨씬 높다고 봅니다. 무반주 첼로곡은 음반간의 우열이 현격하지만, 바이올린곡의 경우는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60여종의 레코딩을 다 들어보면 제일 속이 후련하겠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아무 음반이나 들어보아도 그렇게 많은 편차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은 제가 다른 데에 3번 정도 올린 것 인데, 내용을 더 강화하고 다시 정리하여 제 블로그에 싣습니다.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무반주 바이올린 곡의 이해와 감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end)
글: BACH2138
     
Allemande
무곡(舞曲)의 일종. 모음곡의 처음 또는 2번째에 두어져 4/4박자(아우프탁트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의 중간속도를 지니고 있다. 이 <독일풍>이란 뜻을 지닌 무곡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15세기 말의 이론서에는 바스 당스의 일종으로 취급되어 있고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16세기부터이다. 초기의 알르망드는 3부분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2박자계의 춤이었으며 스텝도 단순하였다. 파반 등과 마찬가지로 뒷부분에 빠른 3박자 무곡이 계속되는 경우도 많다. 17세기 초 독일에 나타난 악기 앙상블용의 작품(J.H. 샤인·S. 샤이트 등)은 이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무용으로서의 알르망드는 17세기에 들어와서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양식화된 무곡으로서 모음곡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이 새로운 알르망드는 17세기 프랑스의 류트양식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짧은 선율악구(旋律樂句)가 성부(聲部) 사이에서 받아넘기는 대위법적 방법이 중심이 되어 있다. 동서문화사
     
Wilhelm Kempff, piano - Henryk Szeryng, violin - Pierre Fournier, violoncello
     
Henryk Szeryng 헨릭 쉐링
무반주 바이올린 곡의 대명사 헨릭 세링(Henryk Szeryng), 그는 1927년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하여 13세 때 베를린에 가서 가알 플레시에게 사사바았다. 청년기시절에 파리로 이동한 후 자크티보에게 바이올린을 다시 배웠다. 그는 이들 스승들의 장점을 자기화하면서 바이올린 실력을 닦았다.
그 의 실력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2차대전 뒤에는 멕시코에 정착하다던 그를 1956년 연주여행 중이던 루빈슈타인이 발견하여 당장에 자신의 실내악 파트너로 삼았던 것이다. 그가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 56년 멕시코를 찾은 아르투르 루빈시타인과 협연을 하면서부터였고, 그 결과 그는 원숙과 기교의 극치를 보이면서 세계 정상에 서게 된 것이다. 루빈슈타인은 셰링을 세계 각지에 헌신적으로 소개했는데 이유는 그의 연주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엄격하면서도 유연하고 서정적이면서도 지적인 상방된 논리를 갖고 있는 것이 그의 연주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 까지만 해도 그에게는 하잘 것 없는 콩쿠르 입상 경력 하나 없었고, 초절기교를 드날리던 젊은 시절도 없었으며, 변변한 레코딩 하나 없었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의 특징은 마치 건반악기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점이다. 음정을 흔들림이 없도록 유지하면서, 균등한 음색을 만들기가 그리 수월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리같은 맑은 음색과 냉정함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내면에서는 뜨거운 정열을 느낄 수 있는 연주를 한다. 그는 현을 균질적으로 연주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것이다. 고음이나 저음이나, 단선율이나 중음연주나, 추호의 흔들림 없는 탁월한 균형감각은 그의 장기이다. 특히 바흐의 곡을 연주하는데 그를 따를 자는 없다. 소나타 같은 곡을 연주 할 때는 언제가 경외감을 자아내게 한다. 파르티타곡에서도 그는 흔들림 없는 초절함으로 서정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보다도 깨끗한 음색을 들여주며, 뜨거운 내면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표현에 있어서 고전주의적인 명쾌함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내면은 용암 처럼 뜨거운 느낌을 무한정 담고있다. 요컨대, 그의 샤콘느는 고전주의적인 명료함과 낭만주의의 멋진 조화를 통해 이룩한, 또하나의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1988년 한국 연주를 추진중이었는데, 지난 3월 4일 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최희선 - 대중음악애호가
     
     
출생: 1918/09/22, Zelazowa Wola, Poland
사망: 1988/03/08, Kassel, Germany
1918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근교의 한적한 시골마을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 1926년 고향에서 어머니에게 첫 레슨을 받았는데, 정식 음악교육은 열살이 되던 1928년 베를린의 칼 플래쉬(Carl Flesch)에게서 받았다.
1933년에 셰링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바르샤바에서 첫 솔로 데뷔를 한 후. 1933년부터 1939년까지는 파리 음악원에서 나디라 블랑제(Nadia Boulanger)에게 작곡을 배웠다.
2 차 세계대전 중에는 폴란드 망명정부군에 입대하여 연락관과 통역관으로 근무부하였으며 이 시기 동안 전세계를 돌며 연합군을 위한 100여 회가 넘는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 때 연주회를 가진 멕시코시티에서 그에게 그 곳 대학의 현악교수를 부탁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1946년 멕시코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1954년 다시 바이올린 연주회를 가질 때까지 바이올린 교육에 힘썼으며, 1954년 뉴욕에서 미국 데뷔무대를 가졌고 많은 갈채를 받았다. 1988년 카젤에서 죽을 때까지 셰링은 세계를 돌며 남은 여생을 콘서트 투어로 보냈다.
그의 연주는감정의 커다란 기복 없이, 평탄하고 덤덤하게 끌고 나가는 듯 하면서도 전체의 구도는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있었고 감정과 기교의 컨트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 탄탄한 안정감이있었다. 아를레키노 레이블을 통해 소개되는 그의 젊은 시절 녹음들은 협주곡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그가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균형감과 남다른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음반을 통할 경우 그의 안정감 있고 정확하며 전체적으로 흔들림 없는 연주는 더욱 빛나게 된다. 그는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나를 포함하여 다수의 레코딩을 남겼으며.직접실내음악과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링의 연주를 보면 한 가지 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웬만한 연주가들이 공들여 연주할 것을 그는 전혀 어렵지 않게, 마치 부담 없이 연습이라도 하는 양 연주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음악은 견고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감정의 커다란 기복 없이, 평탄하고 덤덤하게 끌고 나가는 듯 하면서도 전체의 구도는 완벽하게 잡혀있다. 감정과 기교의 조절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 탄탄한 안정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중용의 도를 지키면서도 전체의 구도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시각을 지닌 것이다.
1921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출생.
1926년 다섯살 때 어머니께 첫 레슨을 받았고,
1928년 브로니스라브 후베르만이 그의 재질을 알아보고
1930년 아홉살 때 베를린의 칼 플레쉬 문하로 들어갔다.
그는 "내가 아는 바이올린에 관한 모든 것은 칼 플레쉬에게 배웠다."라고 할 정도로 활, 쉬프팅과 비브라토에 있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뒤 파리 음악원의 나디아 블랑제의 문하로 들어가서 훈련을 쌓았다. 그와 동시에 문학, 철학, 과학, 역사와 언어를 솔본느에서 공부하였고, 그는 7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2차 대전이 시작될 무렵, 그는 지원병으로 폴란드의 군대에 입대했으며, 연락관과 통역관으로 에딘버러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셰링은 많은 연주를 연합군의 병원과 캠프에서 가질 수 있었다. 400명의 폴란드 난민을 대신에서 정치적인 피난처를 얻기 위하여 멕시코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멕시코인들이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데의 즉각적이고 신속한 용기에 깊은 인상을 얻어서 종전 후 멕시코 시민이 되었다.
1956년 연주여행 중이던 루빈슈타인이 그를 보고 당장에 자신의 실내악 파트너로 삼았다. 그리고 루빈슈타인은 셰링을 세계 각지에 헌신적으로 소개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연주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가 언제 그렇게 완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깊었다. 그때까지 그에게는 하잘 것 없는 콘쿠르 입상 경력 하나 없었고, 초절기교를 드날리던 젊은 시절도 없었으며, 변변한 레코딩 하나 없었다.
최근에 아를레키노 레이블을 통해 소개되는 그의 젊은 시절 녹음들은 협주곡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그가 실은 남 못지 않은 연주력의 소유자였고,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균형감과 남다른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세상에 소개되어 나가자 그의 연주는 높은 평가를 얻게 된다. 특히 음반을 통할 경우 그의 안정감 있고 정확하며 전체적인 흔들림 없는 연주는 더욱 빛나게 된다. 또한 초절기교를 요하는 곡들과는 거리가 먼,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아주 드문 존재로서 인식되었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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