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박인환 - 노래가 된 詩「세월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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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mic2885] 쪽지 캡슐

2010-07-21 ㅣ No.53525

고교시절 영세를 받기위해 교리 배우던 때에

본명이 세실리아인 선배누나가 가르쳐 주어서

한창 흥얼거렸지요.

당시 양희은과 쌍벽을 이뤘던

포크가수 박인희의 노래입니다.

시인 박인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시죠?

이래서 방학이 좋으네요.

매일 미사도 안거르고 봉사활동 열심히 하면서

좋아하는 site도 열심히 들락거리면서

방학을 유용하게 보내게 해 주시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과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박인환 - 노래가 된 詩「세월이가면」­





                                        박인환「세월이가면」­(노래가된 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모더니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후 폐허의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비던 박인환(1926∼1956)의 「세월이 가면」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연인을 잃고,혹은 살아 있는 사람과 이별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 화제작이었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명동성당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간 명동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이끼가 낡고 앙상하게 묻어나는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의 2층에는 놀랍게도 딜레탕트 박인환의 흔적을 기억이라도 하듯 「세월이 가면」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들어서 있다. 바로 이곳이 전후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명동싸롱」이었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문우들과 어울리다가 계단을 내려와 죽음이 휩쓸고 간 세월의 쓸쓸함을술로 달래기 위해 맞은편 대폿집(은성: 당시 새로 생긴 술집이었다.)으로 향했다. 동석했던 가수이자 배우인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자 끝내 빼는 바람에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박인환의 친구 이진섭이 제안을 했다. 인환이 니가 시를 쓰면 내가 곡을 붙이겠다고. 그리고 시가 나오자 이진섭은 즉석에서 샹송풍의 곡을 붙여 흥얼겨렸다. 이렇게 「세월이 가면」은 명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누구나의 가슴 속에있지만 미처 명확한 단어로 규명하지 못한 "그 눈동자와 입술" 을 발굴해냈다 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햇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 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 「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다...

[해설]  도시의 감상주의와 보헤미안 기질이 넘치는 작품이다.  1956년 환도 후의 폐허가

  깃든 명동의 어느 술집에서 작자는 이 시를 읊었고 그를 받아 그 친구가 작곡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의 미남 시인(美男) 박인환(朴寅換)은 당대 문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
♪^ 댄디보이였다고 합니다.



흐르는 곡 : 박인희

술집「銀星」에서 외상값 때문에 작사했다는

♪^ 세월이 가면(박인환 작시, 이진섭 작곡,)  


  

  이 詩가 노래로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9·28 수복 이후에 피란갔던 문인들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 朴寅煥 등을 비롯한 한 떼의 친구들은 명동에 둥지를 틀었다. 폐허가 된 명동에도
하나 둘 술집이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서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나게 되었다.

  당시 탤런트 崔佛岩(최불암)의 모친은 「銀星(은성)」이란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박인환 등이 밀린
외상값을 갚지도 않은 채 연거푸 술을 요구하자 술값부터 먼저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때 박인환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펜을 들고 종이에다 황급히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은성」 주인의 슬픈 과거에 관한 시적 표현이었다. 작품이 완성되자 朴寅煥은 즉시 옆에 있던
작곡가 李眞燮(이진섭)에게 작곡을 부탁하였고,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가수 현인을 불러다 노래를 부르게 했다.
모든 것이 바로 그 술집 안에서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이 노래를 듣던 「은성」 주인은 기어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밀린 외상값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제발
그 노래만은 부르지 말아달라고 도리어 애원하기까지 하였다. 이 일화는 이른바 「명동백작」으로 불리던
소설가 李鳳九(이봉구)의 단편 「명동」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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