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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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대화(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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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진 [joyro] 쪽지 캡슐

2002-11-27 ㅣ No.4302

인간들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화" 일 것이다.

 

나의 의견과 너의 의견, 우리의 의견을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과연 인간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설혹 함께 머물고 있다고 하나

어떤 매체를 이용하든 서로간의 교류가 없다면

과연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그런 교류가 없으니 진정한 관계도 아니고

갈라서는것이 오히려 낫다고 말하는 것은아니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간에도,형제간에도 어렵다고 하는

그 "대화"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쎄, 그것은 항간에 유행하고 있는

한낱 기술이나, 요법은 아닐 것같다.

왜냐하면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상담가들이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취하는 그런 식의 기술을 익혀서

모든 대화의 순간에 이용한다면

과연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십자가를 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라고 하는 것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릴 것같은 생각이 든다.

 

난 오히려 어느 영성작가의 말처럼

"대화"란 "하나의 삶의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삶의 양식(mode)" "삶의 스타일" 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말로만 이루어지는 공허한 말장난이 아닌

자신의 온 존재 즉,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

타인을 공감하고, 수용해주는, 그들에게 온전히 자신을 주고자하는

마음과 실천이 있는 그런 삶의 태도 말이다.

그런 식의 대화 말이다.

우리 신앙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창조라고 말한다.

 

혹자는 지나친 이상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너무도 높은 이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돌처럼 굳어진 마음"이 아닐까?

 

오늘 복음의 내용은 참으로 섬뜩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왔음에도  

우린 그 종말에 대해 무관심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 세상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마치 인생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듯이

모든 인간은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차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종말에 대한 내용이 문제가 아닌

그 종말의 내용을 대하는 나의 굳어진 마음 때문이 아닐까?

진정한 대화의 자세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복음을 통해 자신의 온 존재를 던져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이루는 진정한 대화의 순간,

 

그 순간에 만나는 그 복음 말씀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나를 통해

육신을 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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