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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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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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수 [fr1004] 쪽지 캡슐

2001-01-27 ㅣ No.2516

초등학교 3학년 때 였는가 보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었다. 비록 서울의 한복판에서 우리집에 살고 있기는 했지만 무허가였다.

 

아침에는 늘 밥을 먹었다. 밥안에 납작보리가 얼마가 들어갔는지가 문제다.

 

납작보리는 그냥 쌀보리보다 밥할 때 뻥튀기가 잘 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애호하는 혼합잡곡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점심밥에 늘 아침에 먹던 밥을 끓여서 죽처럼 해서 먹었다.

 

식구는 많고 밥은 적기 때문에...

 

저녁에는 늘 수제비솥이 늘 밥상위에 올려졌다. 수제비를 만드는 밀가루는 할아버지가 노역을하고 동회에서 그댓가로 받아온 것이다.

 

지금은 밀가루가 하얗고 뽀얕지만 그 때는 거의 황토빛에 가까웠다. 그래서 수제비도 약간 시커먼 색깔을 띤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하루 삼시세끼는 굶지 않았다.

 

노역거리가 없어 밀가루 배급을 장기간 받지 못하면 저녁때꺼리가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밀주 만들어 파는 집에 술찌게미를 바가지에 얻어와 먹은 적도 있었다.

 

그 때 그 집 아주머니는 쭈빗쭈빗 대문에서 어슬렁거리는 아이를 보면 들어오라고 하여 큰 바가지 듬뿍 술찌게미를 퍼주곤했다.

 

그 술찌게미를 들고오면서 손으로 집어먹어 보고는 달착지근한 맛에 약 10여분을 걸어오면서 여러번 퍼먹는다.

 

집에와서 그릇에 나누어주는 술찌게미를 먹고는 술에 얼근하게 취해 졸려서 헤메다가 어느 구석에 골아떨어진 적도 있다.

 

그래도 그때는 창피하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어찌되었든 그 때는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고 ..왜냐면 모두 떼꺼리 구하기에 바빠 신경쓸 겨를이 없었으므로..

 

조금만(약 1시간) 걸어가면 성북동이었는데 그 때 개울물은 무지하게 깨끗해서 멱감고놀기에 좋았다.

 

어쩌면 놀기에 바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을 지 모른다.

 

학교에서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반에서 제일 못사는 축에 속하고 운동신경도 빠르지 못했으며, 옷은 헤진 옷에 공부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엔가 음악수업중에 아버지가 오셨다.

 

나는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그 때 육성회비(?)가 약 500원쯤 했는데 몇개월이 밀려서 집에 쫓겨오곤 했으므로 3개월치쯤 마련해서 납부하러 오셨는데 서무과에 내는 것도 모르시고 담임선생님한테 드리러 온 것이다.

 

아버지 역시 초등학교도 못다니셨기에 그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눈치빠른 담임선생님은 그 때 음악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나를 불러내어 배우던 노래를 시키셨다.

 

아버지가 빨리 일을 마치시고 돌아가시기만 기다리는 내게 교단앞으로 끌어내신 것이다. 그냥 선생님은 하시던 수업이나 계속하시지..

 

공부라고는 학교수업시간외에는 해본적도 없으므로 내가 오선지에 어지럽게 걸쳐진 콩나물 대가리가 무엇을 의미하느지 알길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목소리도 째졌지만.. 박자,음정이 맞을리 없다. 그냥 귀동냥으로 들은 가락을 흉내내는데 불과했으므로

 

아이들은 박장대소, 아예 바닥에 배꼽을 움켜쥐고 구르는 애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가신 후 들어가라고 해서 자리로 오고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가뜩이나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데다 창피해서 학교에 못올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에 가지않았다. 그때가 2학기 시작하고 1달남짓 지났는데 무려 3개월을 학교에 무단결석하였으니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적표를 기다리는 부모님께 다른 아이에게 들려보낸 성적표를 받으시고 내가 학교에 장기결석한 사실을 아시고는 ..

 

어머니가 우시면서 매를 드셨는데..

 

나는 그날 다리몽뎅이 부러지도록 맞았다.

 

그 때 어머니의 눈물의 의미는 너는 나처럼 무식쟁이로 커서 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말라는 메세지였다는 것을 그로 부터 8년후인 고3때 알게 되었다.

 

- 이창우님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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