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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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용기 목사의 장,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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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5-18 ㅣ No.4181

 

   † 찬미예수

 

 

   장점

 

   1) 조 목사는 우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못지않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세를 확장, 단일 교회로써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룩.

 

   2) 갖가지 어려움을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성령 충만, 내, 외적 치유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임.

 

   3) 조 목사는 탁월한 설교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하느님 사랑을 깨닫게 하며, 그의 능력에 힘입어 하느님 말씀이 활발하게 전파.

 

 

   단점

 

   1) 조 목사는 요한 3서 2절의 말씀 "나는 사랑하는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잘 되어 나가기를 빕니다. 또 그대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건강하기를 빕니다."에 근거하여, 소위 '삼박자 구원'의 영혼, 육신 건강 및 사업 번창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건강하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이 구원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고, 기복 신앙으로 치우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데, 즉 현세적인 복락과 건강에만 매달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2) 조 목사는 세계 최대의 단일 교회 건설을 자랑하지만, 교회 성장의 이론으로 볼 때 너무 과욕을 부리는 것 같고, 진정한 교회 성장에 역기능을 초래할 것이 우려된다.

 

   3) 조 목사는 교회 성장에 너무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 있으며 종종 강압적 방법을 사용, 하느님 사랑에 혼선을 야기 시키고 있다.

 

   4) 조 목사는 자기 교회의 조직에 가톨릭 교회의 직명을 빌려 사용, 자신의 권위를 가톨릭 고위 성직자와 같게 보이려고 한다.

 

   5) 조 목사는 구역 조직 안에 세포 조직원리와 자아 비판적 반성 원리를 도입, 교회 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반교회적인 방법을 교회 내에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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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 사상의 질서는 공자형의 '너살고 나살자'보다 더 우선적이야 할 것이 예수형의 '너살고 나죽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선의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보여지지만, 미천한 이사람이 볼 때, 현세의 물질적 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순복음 교회로 가족의 신앙을 권고 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례로 가톨릭 내부에서도 수도 성소는 '가난 서원'을 하지만 도시 성소는 사목 관계상 '가난 서원'까지 할 필요성을 가지지 않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성경 한줄 읽지 않는(그러나 몹시 시간과 공간적 희생직으로서, 기형적인) 사목위원들이 정치성 및 개인 영달에 젖은채, 교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어제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몇몇 본당 사목 계획서를 장기간 인쇄, 제작하는 업무에 참여해 왔는데 내부 페이지 내용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년도 내용으로 도배하는 안일한 혈실들이 팽배하더군요.

 

극히 일부의 본당만 빼고 말씀인데 개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천주교는 세 사람중 한 사람이 그나마 선데이 신자의 명맥을 유지하며 전체 대비 8%의 숨은 공로자들이 오늘날 최고 인기종파로서의 입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자유의지를 허락하시어 당신으로 하여금, 거룩한 주님의 침묵에 안기는 강물같은 평화를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기도생활, 공부생활, 봉사생활, 성사생활, 공동체 생활의 조화에 인색한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러한 순복음 또는 여호와의 증인(여증인들은, 골수 신자가 아니면 무지 막지하게 숙정하는 종파로서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가톨릭을 유린하는 이들의 가짜 선의적 표정과 2인 1조로써 주문 기도를 행하는 선교 방식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등의 신흥 종파들의 '밥'이기도 한 것이 현실이기에 우리는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설 지라도 겸허한 자세로 성찰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의 겸손력의 저력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내가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시간을 우선적으로 봉헌하고 있는가? 아니면 물질이나 현세 영달 우선주의에 물들어 하느님을 종으로 삼고 있는가?의 성찰로부터 가차없이 새로운 탄생(부활)을 바라보게 만드시어 쇄신의 성사생활 은총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성체를 영함으로써의 용서의 하늘과 화해의 바다를 가로지으신 예수님을 믿고, 닮고, 따를 것을 권면하는 가톨릭(보편성) 교리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모았을 때에 내안으로 들어가는지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지 잘 살펴 보십시오. 그것은 선과 악의 갈림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매님의 경우는 그리스도안의 갈려져 나간 형제들과의 대화를 보다 유연하고, 지혜롭게 구하시고 싶다면 가톨릭의 성사생활을 더욱 지향해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셔야 한다고 봅니다. 매달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가톨릭 사상으로 무장되어진 마음으로 순복음 교회를 오간다면 틀림없이 분심들도 가중 될 것이기에 자신의 입지를 남편을 통하여 분명히 밝히며 준비할 기회를 달라고 청해 보십시오.

 

시부모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순복음 교회를 소개해 드린 것은 그분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순복음도 프로테스탄트(대응하는), 즉 개신교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준비 기간을 통하여 내가 죽을때까지 성경공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 보다 새로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면서 또다시 성사생활을 시작하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성부와 성자의 성령 공동체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매님으로 하여금 순복음 권고를 묵인하여 주신 것은 자매님의 실수일 수 있는 그러한 것을 통하여 먼저 자매님의 성사생활 쇄신을 통하여 한 가정의 무술이가 아닌 왕비 역할을 부여하심이라 봅니다. 우리 큰 형수 '조 카타리나'도 여전히 2년전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아 냉담을 벗고, 요즘은 봉성체중에 있기도 한데, 아무튼 자매님께서는 적극적인 분 같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베드로처럼 무식했기에 용기를 가지고 그러한 단편적 종파를 권고했다 할까요? 모쪼록 그 적극성을 잘 살리시어 다시 한번 가녀린 숨 고르기의 혜택등을 누릴 수 있는 미사, 영성체, 성체조배, 묵주여정의 평화를 누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적극성은 주님과 나의 여리디 여린 숨고르기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성가정을 지향하는 자매님으로 하여금, 하느님 찬미를 자신의 공치사로 돌릴 수 있는 시댁 식구들의 그것을 웃어 넘기며, 그들로 하여금 가톨릭의 성사생활 치유등의 기쁨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을 청원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성탄과 부활은 상호 보완적인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가톨릭은 신약을 믿음(구약을 올바로 묵상하지 못한다면 선 침묵 가운데 신약을 여신 예수님께 의탁함이 매우 중요)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미천한 자의 외람된 충고에 너그러운 용서를 청하며, 자매님과 우리 모두의 영육간의 건강을 재삼 청원하는 마음으로 또한 아내(안의 해)와 남편(남중 내편)이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어느 수녀님이 제공하신 '우리의 아름다움'이라는 시를 전해 드리오니 잘 활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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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름다움(이 시는 2000년대 초반경, 평화방송의 '살며, 기도하며' 프로그램을 통하여 전국의 고통받는 환우들과도 치유의 은총을 나눈 복음 말씀이기도 합니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초해 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우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우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또한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 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우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내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내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우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태어난 거기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입니다.

 

 

1. 제 1탄생(육의 탄생) : 전적인 부모님의 의지로 이루어진다.

 

2. 제 2탄생(세례 또는 결혼) : 나와 그분의 의지가 반반씩 섞여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3. 제 3탄생(거룩한 죽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 : 전적인 성부와 성모님의 의지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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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의(同意) : 당신과 나의 생각이 같다


2. 동감(同感) : 당신과 나의 느낌이 같다


3. 공감(共感) : 생각과 느낌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느낌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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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聖 미카엘 : 무엇이 하느님의 일인가?


2. 聖 라파엘 : 하느님의 치유


3. 聖 가브리엘 : 하느님의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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