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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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금식과 금육)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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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9-04-10 ㅣ No.45276

 
 

4월 1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금식과 금육) - 요한 18,1 -19,42

 

 

“다 이루었다.”


<누군가의 더 큰 고통>


   끔찍한 고통, 그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계시는 분들을 바라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던지 신음까지 터져 나옵니다. 슬픔이 얼마나 깊던지 식음까지 잊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무거운 십자가가 다가와 도무지 떠나갈 줄을 모릅니다. 이웃들이 던지는 위로조차 이제는 지겹습니다.


   이런 분들 앞에서 “인내는 모든 것입니다. 고통은 은총’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옵니다.”라고 말씀드려보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분들의 반박에 할 말을 잃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시련,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혹독할 뿐, 그저 참혹할 뿐, 그저 죽고만 싶을 뿐...”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의미 부여입니다.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대한 가치 부여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작은 고통을 예수님의 수난과 연관시키는 일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합치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견뎌내고 있는 이 끔찍한 고통, 이 깊은 슬픔, 이 아린 상처가 조금이나마 완화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그 누군가가 겪고 있는 더 큰 고통, 더 깊은 슬픔, 더 아린 상처를 바라볼 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가장 극단에 서 계신 분, 이 세상 슬픔 중에 가장 깊은 슬픔을 체험하신 분, 가장 큰 상처를 입으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오늘 혹독한 수난을 온 몸으로 당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한계를 지닌 나약한 인간들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고통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인생의 동반자가 십자가입니다.


   고통과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한 노력은 우리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입니다. 고통과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성 금요일, 구세주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당신 몸에 다 지시고 높이, 높이 매달리시는 날입니다.


   결국 인류 구원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기적으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신 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였습니다.


   “천국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곳은 겟세마니 동산입니다.”(반 고호)


   천국은 내일, 모레, 10년 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들어가게 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25번 / 거룩한 주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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