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써 기도하십시오.

인쇄

사랑과영혼 [61.106.108.*]

2005-09-10 ㅣ No.3696

 

 

   † 찬미예수

 

   1. 삼위일체

 

   성령의 오심으로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하시는 일에서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삼위일체 교리는 성서에 명백하게 고백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삼위(三位)를 함께 거론하는 구절들만이 등장할 뿐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마태 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바랍니다."(고린 13,13).

 

   삼위일체 교리는 상당히 후대에 형성되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형성과정을 크게 두 단계로 구별할 수 있는데, 첫 단계는 삼위의 하느님을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체험하는 단계입니다. 구약의 유일신 사상을 이어받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은 하느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의 서로 다름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가 서로 그 활동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과 우리 인간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삼위일체 교리를 다음과 같이 구원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셨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다. 하느님의 외아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이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셨는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대외적인 관점에서 삼위의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삼위의 대내적인 관계에 대해서 숙고하는 단계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시는데 이분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성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시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발하셨다. 즉 아드님은 지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으셨고, 성령은 낳음을 받지 않고 발하셨다는 것이 삼위의 관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위(位)로서는 각각이나 본체(本體)로서는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사랑으로 서로 완전히 일치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단계에서 이와 같은 숙고가 이루어지고 신학적으로 정리되어 삼위일체 교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것은 하느님 셋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여럿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이신 하느님께 세 위(位)가 계시다는 것인데, 그 세 위의 이름을 성부, 성자, 성령이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계시는 참 하느님이십니다. 이처럼 삼위(三位)는 누가 높고 낮음이 없이, 먼저와 나중이 없이 똑같이 하느님이십니다. 이 세 위(位)는 사랑으로 서로 하나가 되고 완전한 일치를 이루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사랑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는 구별되나 성부와 성자와 똑같은 참 하느님이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는 서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신비는 셋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데에 있지 않고 삼위가 사랑으로 서로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는 데에 있습니다.

 

삼위가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신비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아듣기 어려운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법대로 살고자 하지만 세속의 거센 물결에 몸을 맡깁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는데 서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찌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가정에서도 우리는 분열을 체험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보모와 자식이 어찌 완전히 이해하겠습니까? 우리 민족도 분열된 상태로 있고, 세상 여러 민족들이 서로 분열되어 다투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더욱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그리고 우리 민족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조금이나마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기성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전도활동을 합니다. 특별히 가톨릭 신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성서를 독특(자의적, 교의적으로)하게 해석하면서 끈질기게 공격합니다. 대부분의 천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귀찮게 생각하고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일단 집 문안에 그 사람들을 들여놓으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으니까 아예 문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상대하지 않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무슨 교리를 갖고 있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증인 교를 창시한 1대 교주에 대해 고찰해 보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들의 2,3대 교주 및 주장들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은 1931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출처는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라는 이사야서 43장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공식명칭은 영어로 워치 타워인데, Watch Tower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파수대 즉 망보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파수대>라는 간행물을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므로 파수대 또는 Watch Tower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잡지나 팜플렛은 그들의 교리를 선전하는 책자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는 럿셀(1852-1916)입니다. 미국 펜실바니아 출신으로 잡화상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의 부모는 전통적인 장로교 신자였는데, 그러나 럿셀은 장로교에서 가르치는 예정론과 지옥에 대한 교리에 의심을 품고 회중교회로 개종하였습니다.

 

럿셀은 어렸을 때부터 지옥에 대해서 공포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7세에 어떤 사람을 만나 성경토론을 하던 중 지옥이 없다는 말을 듣고 크게 안심하였다고도 합니다. 그 후 안식교 신자들의 영향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4세기의 이단자 아리우스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것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 교리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칼뱅의 예정론, 예수님의 재림문제, 아리우스 이단)는 나중에 여호와의 증인의 핵심적인 교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럿셀은 1870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성경 공부반을 조직하였는데, 문제의 또하나의 심각성은 신학대학에서 정식으로 학사, 석사과정을 마쳐도 성경 공부반을 조직해서 운영하는 것이 어려운데, 제대로 신학교육도 받지 못하고 더구나 신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18살의 소년이 성경 공부반을 조직했다는 것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어쨎든 그 성경 공부반 회원들은 18살의 럿셀을 목사로 추대하였고, 럿셀은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국 성서 연구회''를 창립했는데, 이것이 여호와의 증인의 시작입니다. 럿셀은 요한 묵시록 7장 4절에 나오는 144,000명이라는 숫자가 여호와의 증인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144,000명이 되면 세상은 종말을 고하고,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만 살아남아 세상을 통치할 것이며 자기들 외의 모든 종교와 나라들은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4년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을 요한 묵시록 16장 16절에 언급된 하르마게돈(혹은 아마게돈) 전쟁이라고 주장하였고, 하르마게돈 전쟁은 천사가 쏟아 부은 여섯번째 재앙으로서 묵시록에 따르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전쟁이다.

 

럿셀은 ''세상은 1914년으로 끝난다. 그때까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144,000명에 이르게 되면, 세속정부와 모든 교회는 다 불과 유황 속으로 던져지고(묵시 14,10). 우리 여호와의 증인들이 세상을 통치하게 된다"고 말하였으나 이 예언은 들어맞지 않고 빗나갔습니다.

 

이즈음 두 가지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은 기적의 밀 사건과 법정고소 사건이었습니다. 럿셀은 자기가 축북한 밀은 다른 종자보다 5배나 수확을 많이 거둔다고 선전하며 비싸게 팔았습니다. 럿셀은 자기의 이러한 사기 행각을 보도한 신문사를 상대로 재판을 벌였으나 패소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럿셀을 비난하는 글을 쓴 침례교 목사를 상대로 고소한 사건입니다. 이 재판과정에서 럿셀이 성서 희랍어를 모른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럿셀은 탁월한 희랍어 학자 행세를 했습니다. 그리고 18살부터 목사행세를 하였는데, 목사안수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도 들어났습니다.

 

1914년 세상 종말 예언이 빗나가고, 또 이런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교단을 이탈하였고 기성교회로부터 비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러던 중 1916년 전도활동을 마치고 뉴욕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사망하였습니다.

 

+++++++++++++++++++++++++++++++++++++++++++++++++++++++++++++++++++++++++++++++++++++++++++++++++++

 

   여호와의 증인 사람들은 정말로 열심히 그리고 끈질기게 전도하는데, 그 비결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용어부터 다른데, 그들은 교회라 하지 않고 왕국 회관이라 하고 선교 또는 전도가 아니라 봉사라 하고, 신자나 성도가 아니라 전도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다른 개신교 신자들보다 가톨릭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합니다. 정통 성삼위를 믿는 기독교(그리스도교)안의 한핏줄인 개신교 신자들은 성서에 대한 지식이 많으며 여호와의 증인의 문제점을 교육 받았기 때문에 쉽게 넘어오지 않는데, 우리 가톨릭(보편성) 신자들은 자칫 종교 다원주의의 유혹등에 약할 수 있고, 성서에 대한 지식도 약하고 여호와의 증인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딸려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개종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왕국 회관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신자들이 전체 신자의 반 이상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열심히 전도하는 이유는 교리 때문입니다. 매달 최소한 90시간 이상 전도할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매달 90시간이라면 하루 3시간 이상 밖에 나가서 전도 활동을 해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전도 활동을 나가기 전에 철저한 교육을 받는데, 매주 최소한 5시간 이상은 교육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전도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성경에서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찾아주십시오." "예수가 하느님이라는 것이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져서 기성교회 신자들을 당황케 한 다음 자기네 교리를 설명합니다.

 

성경토론을 하다가 수세에 몰리면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가 왕국회관에서 자기가 겪었던 곤란한 이야기를 얘기하고 그에 대해 재교욱을 받고 반드시 찾아갑니다.

 

이 사람들과의 성경토론에서 흔히 겪게 되는 것은 용어의 차이와 해석의 차이에 따른 논쟁입니다. 자기네 성경만이 올바른 성경이고 나머지는 잘못된 번역이라는 주장을 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성경 지식은 체계적이지 않고 아주 단편적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교육받고 달달 외운 것밖에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이 들이대는 성서 구절을 가지고 싸우려 하지 말라! 그랬다가는 백전 백패입니다. 아무 구절이라도 좋으니 그 사람들이 들먹이지 않는 다른 성서 구절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그러면 말문이 막혀 돌아가 그것을 공부하여 다시 올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절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말고, 또 다른 구절의 뜻을 물어봅니다. 결국 지쳐서 그만 두던지 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같이 딴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6장에 보면 천막으로 주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하는데, 당신네 왕국회관은 왜 벽돌로 지었는냐? 신명기 25장 5절에 보면 형님이 아들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으라고 되어 있는데 당신네들도 그렇게 하는냐? 당신네 교파의 창시자 럿셀이 1916년 기차 안에서 죽었는데, 사람이 기차 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구절을 성경에서 찾아주십시오." 이런 엉뚱한 질문이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발췌 문헌)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 가톨릭출판사 / 이중섭 신부 편저



334 1댓글보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