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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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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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7-09 ㅣ No.6722

 

 

잊지 못할 손님

 

어느 날 네댓 살쯤 된 사내아이와 함께 젊고 선해 보이는 여자가 우리 유아복 대리점에 들어왔다. 가만가만 손끝으로 아이 옷들을 쓰다듬어 보던 그녀는 방긋 웃으며 `배넷저고리`라고 입술만 움직이는게 아닌가.  내 가슴 저 끝에서 `찡`하고 알 수 없는 뭔가가 울렸다.  그녀의 입모양을 보고 둘째아이에게 입힐 배넷저고리를 사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내 가슴에 찡하게 여운을 남기며 배넷저고리를 사간 그녀는 한 달이 지났을 즈음 아이를 업고 큰아이 손을 잡고 가게에 들러 애기 아빠가 구운 거라며 호떡이 든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그 뒤로도 그녀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입모양과 글로 서로 얘기하며 웃다 가곤 했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에는 밀가루가 묻은 천 원짜리와 동전을 꺼내며 작은아이가 입을 목티를 달라고 했다.  돈이 모자라 하나만 달라는 것을 눈치챈 나는 가슴이 아팠다.  혹시나 마음이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아이 것은 내가 선물해도 되느냐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그녀에게 나는 거절하면 내가 미안하지 않느냐며 억지로 손에 들려줬다.

   그 뒤 몇 달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내 선물이 그녀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그 다음해 그녀가 신문 한 장을 들고 나를 찾아와서는 자신의 시가 신문에 실렸다고 자랑하고 싶어 왔다는 것이다.  네 살 때 갑자기 아파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된 자신을 안고 밤새 울며 간호하고, 그 병을 고쳐 보겠다며 사방으로 뛰어다니시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며 빙긋이 웃던 깨끗하고 맑은 그녀.

   가게를 그만두고 1년이 지난 며칠 전.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뛰어가 덥석 손을 잡았다.  이제는 아이들도 컸고 남편도 일자리를 구해 많이 안정되었다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오물오물 입모양으로 안부를 전하던 그녀. 내내 잊지 못할 손님인 그녀에게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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