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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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랑은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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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03.132.188.*]

2007-11-25 ㅣ No.6056

 
 
      아래의 글은 월간 잡지 '생활성서'의 별책부록 '소금항아리'내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글을 필타할 수 있도록
   기회 주신 평화의 도구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연중 마지막 주간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주간에 이르러 더욱 뜻 깊은 복음화 여정을 위해 기억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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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5일 성서주간,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루카 복음 23장 35ㄴ-43절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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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관의 왕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죄수 중의 한 사람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입을 통해 구원의 소식을 듣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참회하는 죄수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조건없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놀랍고 신기한 기적사화 때문에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귀를 쫒아내는 구마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빵과 물고기를 생산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풍랑을 잠재우는 신통력을 가졌다고 해서 예수를 왕으로 또 주님으로 고백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궁극적이고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고 깨우쳐주기 위한 삶을 사셨고
   몸소 그 가치와 하나가 되었던 참된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의 구원자이자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덧없는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는
   예수님 옆 두 죄수의 삶 사이를 방황하지 않나 싶습니다.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생활과 참회를 반복하는 우리의 십자가는
   아마도 두 죄수 사이의 한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그 한가운데에, 우리의 죄짓는 생활 한가운데에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계십니다.
   진리와 정의의 왕, 사랑과 평화의 왕,
   봉사와 희생의 왕, 섬김과 겸손의 왕, 봉사와 희생의 왕으로 화려한 금관 대신
   가시관을 쓰신 그분을 우리 삶의 참된 왕으로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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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사랑만이 유일한 헌법인 나라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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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변상련
 
   요즈음 부쩍 내 주위 사람들, 혹은 그들의 가족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우울증, 중풍, 위암, 자궁암, 치매..., 그런 안타깝고 딱한 사정을 듣거나 기도를 부탁받게 될 때
   문득 예전과 달라진 내 자신을 보게 된다.
   당사자들의 아픔과 가족들의 슬픔이 내게 아주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언제부터 내가 이랬던가 싶게
   스스로가 아주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과거 나는 무척이나 냉랭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물론 좋은 인상 덕에 친절하고 따듯하고 사랑이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지만
   실상 내가 아는 나는 남의 사정에 그리 크게 동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나와 별 상관 없는 일로 여기면서
   그리 무게감 있게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건강하고 내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또 우리 집의 행복 상태도
   언제나 변함없이 웃음 가득할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파 발을 동동 구를 정도의 초조함과 안타까움 등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그러한 처지에 놓인 내 이웃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진정 알게 된 것이다.
   아픔과 슬픔 속에 놓인 어머니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알아가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아픈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가 아버지가 되었다가
   형제가 된다. 그러고 보면 나를 좀 더 사람답게(?) 만든 것은 어떤 기쁨이나
   웃음보다 슬픔이요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예수님도 우리들의 아픔과 고통, 상처가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고 그 모든 것을 당신 것으로 하시기 위해 십자가상 죽음이라는 그 험난한 길을 가셨던 것은 아닐까.
 
   김00 / 생활성서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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