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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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뒷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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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17-11-13 ㅣ No.91068

이번 여행 중 아리조나를 지나며

장인 장모님이 사시는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가던 고속도로에서 

20 여 분을 달려서 일부러 어머니 집을 찾은 까닭은

아무래도 뉴욕에 와 계신 부모님들께

그 집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보내 드리면

여행 중인 우리 안부도 되고, 

집 소식도 전할 수 있으니

아주 반가워 하실 것 같아서 였다.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짐 옆에 있는 쪽문을 열고 뒷 마당 쪽으로 갔다.

 

그런데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아리조나의 집 뒷마당은  

아주 쓸쓸하고 황량했다.

10월 중순이라는 점과

이른 아침이라는 사실도 그 쓸쓸함을 더하게 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님의 뒷뜰엔 

상추며 쑥갓, 깻잎, 고추 같은 채소가 푸르게 자랐고,

가끔씩 참외가 노랗게 익으며

혹시 찾아 올지도 모르는

자식이나 손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 갖가지 꽃들은

서로 자기 빛깔을 뽐내며

모자람 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채소는 가끔씩 그 곳을 찾는  

자식이나 손주들의 여행 가방을 통해

이 곳으로 공수되어 자식들에게 분배가 되곤 한다.

 

담장 옆 자몽 나무엔 

윤기 나는 나뭇잎 사이로

노란 빛과 핑크 빛이 어우러진 자몽이 주렁주렁 달렸고

아버님은 아침 식사로 그 자몽을 따다

반으로 갈라 식탁에 올리곤 하셨다.

 

어머님의 뒷뜰은

오렌지 향기로 그득했다.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시는

아리조나의 집은 새콤 달콤한 자몽의 빛깔과 맛으로 

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날 우리가 찾았던

어머님의 뒷뜰엔 

누렇게 마른 고추잎이 채소의 전부였다.

수영장 안엔 낙엽 몇이 가라 앉아 있었고

자몽나무의 자몽도 물기가 빠진 채 

무기력하게 달려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려고 

뜰에 있는 테이블을 치우느라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는데

먼지를 두집어 쓰고 말라가고 있는

대추와 도토리였다.

 

도토리는 어머님의 눈물겨운 노동을 통해

도토리 묵으로 변신해서 

일 년에 몇 차례 우리 밥상에 오르곤 하는 것이기에

마치 어머님을 거기서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아무도 없는 집 뒷 뜰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집을 나서서

다시 길을 떠났다.

 

배웅해 주는사람 없는

길떠남의 등 뒤가 

허전함과 쓸쓸함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어머님의 집을 떠나 한 40 여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뉴욕에 계신 어머님으로부터 였다.

 

아마도 식구들 페이스 북에 올린

사진을 보시고 

우리가 어머님 집에 무단침입한 사실을 아신 것 같았다.

 

사뭇 조심스런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 나왔다.

너무 조심스런 목소리여서 나도 흠칫했다.

 

"집 떠난지 얼마나 됬어요?" (어머님은 내게 존대를 하신다.)

 

"한 40 분 쯤 되었을 걸요."

 

"그럼 안 되겠네."

 

내 대답에 어머님의 풀기 빠진 대답이 돌아 왔다.

 

"왜 그러세요?"

 

"멀리 안 갔으면 테이블 위의 대추 좀 가져 오라고 하려고---"

 

"벌써 많이 왔어요."

 

그리고 어정쩡하게 전화를 끊었다.

 

어머님은 당신이 손수 거둔 대추를 떠 올리시고는

집에 두고 와서 미처 나눠 주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싶으신 거였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님은 많이 아쉽고 속이 상하셨을 것이다. 

시간만 잘 맞추어 전화를 하셨더라면

우리는 테이블 위릐 대추를 

얼마만큼 거두어 차에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40 분 더하기 40 분,

 

그러지 않아도 빠듯한 여행 스케줄에서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빼 내야

그 대추를 가져 올 수 있었다.

 

나의 재빠른 머릿속 암산은

대추를 가지러 다시 어머님 집으로 차를 돌릴 생각을

접게 만들었다.

 

"뉴욕에서도 장에 가면 널린게 대춘데 뭘,"

 

그리고는 그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어머님 뒷 마당의 대추 생각이 난다.

추운 영하의 아침,

따뜻한 대추 차 한 잔이

그리워진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시장의 대추,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머님의 손길 묻은 대추.

 

내 삶에서 한 시간 반이 얼마 만큼 소즁한 것일까?

 

내 갈 길 서두느라고

애써 외면한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살아오면서 

내 갈 길에만 마음 쏟느라

얼마나 많은 순간 부모님의 마음을 귓전으로 흘려버렸던가.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 온 지금,

아리조나의 어머님 뒸뜰의 대추엔 먼지가 더 쌓였을 것이다.

 

언제고 먼 훗 날,

추운 겨울 아침

대추차를 마실 때면

자꾸만 그 먼지 뽀얗게 쌓인 대추 생각이 날 것만 같다.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아까워서 

될돌아가지 못 했던

어머니의 먼지 쌓인 뒷뜰 생각에,

앞으로 맞을 겨울이면

더 많이 추위를 탈런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 아픈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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