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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뒷 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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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 중 아리조나를 지나며 장인 장모님이 사시는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가던 고속도로에서 20 여 분을 달려서 일부러 어머니 집을 찾은 까닭은 아무래도 뉴욕에 와 계신 부모님들께 그 집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보내 드리면 여행 중인 우리 안부도 되고, 집 소식도 전할 수 있으니 아주 반가워 하실 것 같아서 였다.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짐 옆에 있는 쪽문을 열고 뒷 마당 쪽으로 갔다.
그런데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아리조나의 집 뒷마당은 아주 쓸쓸하고 황량했다. 10월 중순이라는 점과 이른 아침이라는 사실도 그 쓸쓸함을 더하게 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님의 뒷뜰엔 상추며 쑥갓, 깻잎, 고추 같은 채소가 푸르게 자랐고, 가끔씩 참외가 노랗게 익으며 혹시 찾아 올지도 모르는 자식이나 손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 다가 갖가지 꽃들은 서로 자기 빛깔을 뽐내며 모자람 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채소는 가끔씩 그 곳을 찾는 자식이나 손주들의 여행 가방을 통해 이 곳으로 공수되어 자식들에게 분배가 되곤 한다.
담장 옆 자몽 나무엔 윤기 나는 나뭇잎 사이로 노란 빛과 핑크 빛이 어우러진 자몽이 주렁주렁 달렸고 아버님은 아침 식사로 그 자몽을 따다 반으로 갈라 식탁에 올리곤 하셨다.
어머님의 뒷뜰은 오렌지 향기로 그득했다.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시는 아리조나의 집은 새콤 달콤한 자몽의 빛깔과 맛으로 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날 우리가 찾았던 어머님의 뒷뜰엔 누렇게 마른 고추잎이 채소의 전부였다. 수영장 안엔 낙엽 몇이 가라 앉아 있었고 자몽나무의 자몽도 물기가 빠진 채 무기력하게 달려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려고 뜰에 있는 테이블을 치우느라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는데 먼지를 두집어 쓰고 말라가고 있는 대추와 도토리였다.
도토리는 어머님의 눈물겨운 노동을 통해 도토리 묵으로 변신해서 일 년에 몇 차례 우리 밥상에 오르곤 하는 것이기에 마치 어머님을 거기서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아무도 없는 집 뒷 뜰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집을 나서서 다시 길을 떠났다.
배웅해 주는사람 없는 길떠남의 등 뒤가 허전함과 쓸쓸함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어머님의 집을 떠나 한 40 여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뉴욕에 계신 어머님으로부터 였다.
아마도 식구들 페이스 북에 올린 사진을 보시고 우리가 어머님 집에 무단침입한 사실을 아신 것 같았다.
사뭇 조심스런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 나왔다. 너무 조심스런 목소리여서 나도 흠칫했다.
"집 떠난지 얼마나 됬어요?" (어머님은 내게 존대를 하신다.)
"한 40 분 쯤 되었을 걸요."
"그럼 안 되겠네."
내 대답에 어머님의 풀기 빠진 대답이 돌아 왔다.
"왜 그러세요?"
"멀리 안 갔으면 테이블 위의 대추 좀 가져 오라고 하려고---"
"벌써 많이 왔어요."
그리고 어정쩡하게 전화를 끊었다.
어머님은 당신이 손수 거둔 대추를 떠 올리시고는 집에 두고 와서 미처 나눠 주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싶으신 거였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님은 많이 아쉽고 속이 상하셨을 것이다. 시간만 잘 맞추어 전화를 하셨더라면 우리는 테이블 위릐 대추를 얼마만큼 거두어 차에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40 분 더하기 40 분,
그러지 않아도 빠듯한 여행 스케줄에서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빼 내야 그 대추를 가져 올 수 있었다.
나의 재빠른 머릿속 암산은 대추를 가지러 다시 어머님 집으로 차를 돌릴 생각을 접게 만들었다.
"뉴욕에서도 장에 가면 널린게 대춘데 뭘,"
그리고는 그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어머님 뒷 마당의 대추 생각이 난다. 추운 영하의 아침, 따뜻한 대추 차 한 잔이 그리워진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시장의 대추,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머님의 손길 묻은 대추.
내 삶에서 한 시간 반이 얼마 만큼 소즁한 것일까?
내 갈 길 서두느라고 애써 외면한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살아오면서 내 갈 길에만 마음 쏟느라 얼마나 많은 순간 부모님의 마음을 귓전으로 흘려버렸던가.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 온 지금, 아리조나의 어머님 뒸뜰의 대추엔 먼지가 더 쌓였을 것이다.
언제고 먼 훗 날, 추운 겨울 아침 대추차를 마실 때면 자꾸만 그 먼지 뽀얗게 쌓인 대추 생각이 날 것만 같다.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아까워서 될돌아가지 못 했던 어머니의 먼지 쌓인 뒷뜰 생각에, 앞으로 맞을 겨울이면 더 많이 추위를 탈런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 아픈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