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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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헤이) - Julio Iglesias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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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원 [lion77] 쪽지 캡슐

2019-05-23 ㅣ No.29632

 

  Julio Iglesias         


1944년 9월 23일생                               

1944년 9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저명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는, 영국의 명문 대학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법학도였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는 전공과는 다른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스페인의 유명한 프로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여 골키퍼로 종횡무진 활동하면서

제법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는 병상 생활로 좌절감을 맛보아야만 했고,

지루한 병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자작곡을 만들어 노래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이러한 계기가 인연이 되었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1968년 6월 18일에 열렸던 바인도른(Beindorn) 가요제에 참가하여,

의외로 자신이 부른 곡이 그랑프리가 되어 직업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칠레의 해변가요제에도 출전하여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1970년에는 <Gwendolyne>란 곡으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출전해

최고의 영광을 치지하는 등, 비교적 순탄한 가수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인 정열적이고 저돌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1975년에 베를린 필 하모니와 협연을 펴치는가 하면, 1976년에는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까지 벌였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미국의 유명 레코드사인 CBS 레코드사에까지 전하여져,

1978년에는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갈색 눈동자에 검은 머리를 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정장을 즐기는 세련미로 뭇 여성들을 매료시키고 있기도 하지만,

남국의 정열을 마음껏 선사하는 그는 유행으로 흘려 버리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는 노래를 불러 주고 있기 때문에 팬들의 열광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짙어 질 것으로 보이며, 깨끗한 용모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

그리고 라틴 스타일의 곡을 노래하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1983년 초에 발표한 앨범 「Momentos」에서는 <Natalie>, <Pa Laloma>, <Amor>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고 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만 3년만에 석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수많은 싱글로, RCA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는 아티스트 중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가수로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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