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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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슬픈 영화뿐이겠지만...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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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경 [deepsky] 쪽지 캡슐

2000-05-25 ㅣ No.1203

<<당분간은 슬픈 영화뿐이겠지만>>

 

 

 

"누나, 영화 보러 가고 싶어!"

 

 

 

건강한 남동생을 둔 누나들은 이 말이 나에게

 

 

 

얼마나 한없는 슬픔을 주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준이는 4년 전 교통사고로

 

 

 

양쪽 눈 모두를 실명한 장애인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영화보는 것을 좋아했던 준이가

 

 

 

다시는 영화를 보지 못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준이는 사고 후 4년 동안 말못할 고통과 절망을

 

 

 

잘 견뎌내었고 이제는 준이의 맹인 안내견인 ’덕구’와 같이

 

 

 

산책도 잘다니고 점자책 읽기도 능수능란해졌다.

 

 

 

하지만 15살 때까지 준이가 ’보았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잔상은아직도 그를 놓아 주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준이는 지나치리만큼 ’보는 것’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였고

 

 

 

그래서 우리는 TV를 보거나 차창 밖의 경치를 묘사할 때마다

 

 

 

준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준이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 열심히 설명하는

 

 

 

우리를 머쓱하게 만들곤 했다.그러던 준이가 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 것이다.

 

 

 

"누나, 내 친구들 말이야, 전이랑 다 똑같은데,

 

 

 

나더러 극장 가자는 말을 안 하네.. 그러니까 누나가

 

 

 

한 편만 보여 주라"

 

 

 

준이의 사고 이후로 수없이 곤란한 경우에 부딪혀 봤지만

 

 

 

이렇게 난감한 지경은 처음이었다.

 

 

 

"그, 그래... 좋지... 무, 무슨 영화가 요즘 제일 재밌다더라?"

 

 

 

난 애써 태연한 척 부산을 떨었고 다음 날 준이의 손을 붙잡고

 

 

 

종로 극장가를 찾았다. 들을 줄밖에 모르는 준이를 위해

 

 

 

난 우리나라영화만을 애써 찾았지만 끝끝내

 

 

 

당시 장안의 화재였던 외국 영화를 보자고 해서

 

 

 

그 영화표를 샀다.

 

 

 

극장에까지 썬그라스를 쓰고 들어온 남자아이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을 무시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준이는 거의 5년 만에 극장에 와봤다며 들떠 있었고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난 준이의 귀에 내 입을 가까이 대고

 

 

 

배우들의 대사와 극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울기 시작한 건 영화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준이의 진지한 표정이 극장에

 

 

 

빽빽히 앉은 수많은 건강한 사람들의 모습에 겹쳐지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 준이도 두 눈을 뜨고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영화 줄거리상 짜릿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주인공 남녀가 행복한 일상을 이루어가는 장면들이

 

 

 

계속되는 부분이라 나는 준이 몰래 눈물을 닦으며

 

 

 

애써 감정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얼어 죽는 결말 부분에 가서야

 

 

 

나는 비로소 소리를 내어 울 수있었다.

 

 

 

"누나, 그렇게 슬퍼?.. 주인공도 죽었어?"

 

 

 

"응.. 바다에 떠 있던 사람들이 하얗게 얼어서...

 

 

 

다.. 죽어가..."난 이미 친구들과 한 번 본 영화였고

 

 

 

그땐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영화였다.

 

 

 

"누나... 그렇게 울기만 하면 어떡해? 그담에 어떻게

 

 

 

됐는지 얘기 좀 해줘"

 

 

 

"응, 남은 사람들이 지금 배를 묶고 있어... 그리고는..."

 

 

 

태어나서 내가 본 영화 중에 가장 슬펐던 영화가 다 끝나고

 

 

 

우린 주제가를 들으며 극장을 걸어나왔다.

 

 

 

"준아, 너만 좋으면 다음에 영화 보러 또 오자"

 

 

 

"정말? 와... 누나 최고다!"

 

 

 

준이가 즐거워하는 바람에 나도 곧 기분이 좋아졌다.

 

 

 

당분간은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슬프기만 하겠지만

 

 

 

준이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니 어디 아까울 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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