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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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입국비자 그리고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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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04-12 ㅣ No.3260

미국입국비자와 인연

 

 

곽 호 경 목사님이  나를 찾아온 것은 1999년의 여름이었다. 그 당시 그는 시카고의 켈리포니아 에비뉴에 있는 "나자렛" 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 봉직 중이었다.  키가 작고, 눈동자가 유난히 빛나며,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 목사님이었다.

미국의 교회본부가 한인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선택한 젊은 목사였다.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여덟 달 전 홀로 미국에 갈 당시에는 미국교회재단으로부터 목사님이 받는 월 급료와 주택 임대료 등 연봉 총액으로서는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함께 미국으로 데려갈 수가 없었다. 미국은 외국인이 미국 국내에서 직업을 갖게 될 경우 법으로 부양가족의 수에 따라 연봉의 최저 요구액을 책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 최저 요구액에 못 미치는 연봉총액 때문에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한국에 남겨 두고 떠나야만 하였다.

미국시카고에서 8개월 동안을 홀로 생활하며 어려운 교회를 힘겹게 이끌어가던 중, 교회본부의 배려로 목사님의 연봉 총액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이상으로  재조정되자,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일시 귀국하였다.

귀국 후 두 달 동안 부인과 두 아들의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으나, 어찌된 이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비자를 신청할 때마다 미국 대사관 영사과는 그들의 비자발급을 거절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목사로 시무할 당시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인 허남훈 의원에게 도움을 간청하였던 것이다.

당시 평택지역 출신의원이었던 허 남훈 의원은 동료의원 중 국회외교통상위원을 통하여, 정부의 공식 채널인 외교부통상부 북미 1과 담당관으로 하여금  미국 대사관 측과 협의하여 해결토록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곽 목사님은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간다는 희망을 거의 포기해야만 하였다. 미국교회재단의 재정보증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느님의 뜻이라면 따라야한다고 하면서도, 사랑하는 가족을 데리고 가고파, 하찮은 나를 찾아 왔다.

 

아마도 1년 전 미국에서 유학 중 여름방학 기간 동안  부인과  일시 귀국하여  미국입국비자관계로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였던 김 종 서씨의 비자문제와 관련한 나의 얘기를 들은 듯 하였다.

 

남을 돕는 좋은 일이지만 1년 전 거의 절망상태의 김 종서 씨 부부의 비자문제로 미국 대사관 영사과장에게 편지를 보내어 해결해 준 사실이 있기 때문에 다시 나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낼 경우 결과가 부정적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선 곽 목사님의 부인에게 비자발급이 거절된 이유를 무엇으로 보느냐고, 그녀의 견해를 물어 보았다.

목사님 연봉 총액이 법정 최저요구액을 충족시키기 이전, 그녀는 남편에게 하루 빨리 가고 싶었다.  하루 빨리 남편에게 갈수 있는 방안으로 여행사는 그녀에게 "미국관광여행비자"를 신청하자고 제의하였다.

 남편이 목사로 봉직하고 있는 미국에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비자를 신청하였다는 사실은 미국대사관 영사에게 그녀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계기를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영사과의 컴퓨터에 기록되었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하는 미국 사람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 사실은 외교통상부

의 담당관도 미국 대사관 측으로부터 비자발급거절의 이유로 통지 받은 내용이기도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목사님의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 보기에 너무나 너무나 지치고 초췌해 보였다.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젖어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애절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다리를 절며,  두 눈동자가 유난히 까맣게 빛나는 목사님을 마주볼 때, 내 사랑하는 형제 바오로의 체험이 회상되었다. 바오로 형제가 남미에서 불법체류할 당시 이민국 직원이 바오로 형제가 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를 막고, 불법체류자를 검문할 때, 절망하며 하느님께 의지하고 기도드리던  바오로 형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오로 형제와 곽 목사님의 처지와 상황은 전혀 다르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려는 마음과 모습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둔 나의 입장으로서도 실정법보다는 지어미가 지아비를 그리워 하는 그녀의 애절한 마음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목사님 가족이 함께 사는 모습은 하느님께서도  보시기에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사무실 책상 위에 자리잡고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영사과장 앞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목사님 부인이 미국 대사관 영사과장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대필하기 시작하였다.나는 편지를 쓰면서 그녀 자신의 심정을 헤아리며 솔직하고,간결하게 표현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 영사과 영사과장 님

 

제목: 청원서

 

영사과장님! 우선 이 편지가 과장님께 읽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제 마음을 옮겨 쓰고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아직까지 해외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때문에 불편한 몸으로 홀로 있는 남편에게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여행

사가 작성한 미국 관광여행비자 발급신청서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저의 잘못은 어쩔 수 없는 멍에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영사과장 님께 드리고 싶은 내 마음의 고백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는 소박한 아내의 마음입니다. . 과장님! 저의 소원이며, 아이들의 소망이며, 남편의 기도인 저의 청원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영사과장님의 가정에 행복과 화평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곽 호경 목사 부인 올림

 

부인의 편지는 비자신청서와 함께 화요일에 미국대사관에 접수되었다. 곽 목사님은 그 주일 토요일에 출발하는 시카고 행 비행기에 자신만을 예약해 놓았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의 비자신청을 무려 10번이나 거절한 미국 대사관의 입장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요일 아침 새벽 나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차 속에서  곽 목사의 가족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 그들 가족의 결합을 도와주소서......

곽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그 날은 비자를 심사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금요일 오후 4시경이었다. 사무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직원이 곽 목사님의 전화라며  내게 돌려주었다. 그는 울음 반 웃음 반의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DHL로 비자가 왔어요.

제 아내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꿈만 같아요.

 

오! 나의 하느님 고맙습니다.

영사과장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하느님!

나는 그 순간 세상의  권력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느님께서 하셨구나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 영사과장의 고맙고 배려깊은 마음에도 감사하며, 그 분의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그 날로부터 1주일 후 곽 목사님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미국으로 떠나기 전 날, 목사님과 그의 부인은 작별인사를 나누기 위하여 나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목사님 부인의 얼굴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의 수심에 가득찻던 애잔한 표정은 모두 사라지고, 기쁨과 웃음이 다투며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뻣다.그리고 우리는 따스한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작년 9월 업무차 미국 출장 길에 시카고를 경유할 때 정말 고맙게도 곽 목사님은 불편한 몸으로 "오헤어" 공항까지 나와주셨다.

목사님은 부인께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시며 나를 아파트로 데리고 가셨다. 목사님은 세들어 살고 있는 지역이 한국에서는 "달 동내"와 흡사하다고 웃으며  말하였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비좁은 복도는 카레 냄새로 가득 배 있었다.

벨을 눌러자 부인이 문을 열며 마치 형제가 온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 하나에 응접실도 없는 정말 작은 아파트였다.

그날 나는 목사님 부인의 정성이 가득 담긴 국물이 구수한 대구 국과 김치로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비록 가난하나 웃음꽃이 피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 중의 하나를 보았다.

눈동자가 더욱 까맣게 빛나는 목사님, 행복이 넘치는 얼굴의 부인, 어린 두 아들의 웃음꽃이 피는 "달 동내"아파트를 뒤로한체 나그네 길을 재촉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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