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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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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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5-07 ㅣ No.6278

 

 

9년전 아버지가 간암 진단을 받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종가집 맏이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린 삼촌들 뒷바라지하느라 당신은 낡아빠진 고무신을 꿰매어 신고, 2백 리나 되는 먼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아버지. 그날그날 장사해서 번 돈을 삼촌들의 호주머니에 몰래 챙겨 주며 행복해하던 아버지는 우리 육남매를 모두 대구로 유학시켜 공부하게 하셨다. 그리고는 가끔씩 대구 집에 들러서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거라", "끼니는 거르지 말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는 편지 한 장을 남겨 놓아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곤 하셨다. 돌아가시기 두 해 전부터는 돌투성이 산을 개간해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여 포도밭을 일구어 놓으셨는데,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홀로 산에 묻고 내려온 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장롱 위에서 하얗게 먼지가 쌓인 조그마한 상자를 발견했는데, 안에는 갈색 구두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바로 수 년 전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월급을 타던 날 아버지께 선물로 사 드린 구두였다. 비록 비싼 구두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그 구두를 무척 아끼셨다. 큰언니 결혼식날 딱 한 번 신고는, 구두가 닳을까 아까워 제대로 신지도 않고 챙겨 두기만 하셨던 것이다. 딸자식의 소중한 마음을 끝까지 귀하게 간직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문득 친구들이 신고 있는 이름 있는 똑같은 것을 사달라고 밤새 울며불며 졸라대던 철없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그 구두를 소중히 보관해 오다가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서, 지난 겨울 아버지 산소 옆에 곱게 묻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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