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고등공민학교를 아시나요?

스크랩 인쇄

리드비나 [koj4565] 쪽지 캡슐

2002-05-20 ㅣ No.6392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중학교를 집안 사정으로 진학을 못하고 전자계통의 공장에서 일을하고

월급을 받아서 오빠 학비에 보태야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공장이 성남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양장점에 심부름하는

일을 해야했어요.

그것도 일년,  심부를 하면서 기술을 배우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장사가 안된다고 집에서 쉬라고 해서 강원도에 계시는

할머니댁으로 내려갔는데 초등학교때 친구들이 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부럽더라구요.

 

엄마께 편지를 썻죠.

시골에 있는 친구들도 다 중학교를 다니는데 서울에 있는 내가 왜

중학교를 못가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장 편지를 드렸더니 공부하고

싶으면 서울로 올라오라고 해서 들뜬 마음으로 서울로 와서 입학한

학교가 고등공민학교 입니다.  

 

고등공민학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입학을 했어요.

그당시는 저처럼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나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2년후에 학교를 입학해서 다른 친구들과

나이 차이가 났는데 입학하고 나니 저 보다도 나이가 많은 언니가

같은 학년에 있었어요.

 

배움이라는 두 글자 앞에는 나이가 상관없더라고요.

검정고시를 보고 합격을 해야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그런 학교였어요.

선생님들도 대학교를 다니시면서 봉사하시는 선생님이셨나봐요.

어려운 시절 선생님들이 힘들게 공부를 가르쳐주셔서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해야 되는데 밑으로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되고,

 

집안 형편은 넉넉치않고 어쩜니까 제가 또 한해 꿀어 돈을 벌어야죠.

1년을 공장다니면서 돈을 벌어 조금씩 모았다가 고등학교를 야간에

진학해서 낮에는 사환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다니고 그래도 좋았습니다. 배운다는 것이.

 

이제 나이가 40중반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고등공민학교에서

배우던 일이 생각이나서 동창회를 만들어 여학생들은 가끔 만나지만 남학생들과는 만날일이 없었어요.

 

어려울 때에 저희들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뵙고 싶어 수소문

해서 네분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서 5월11일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들을 뵈었답니다.

 

고등공민학교는 학생수가 적어 남.여 학생 각 한 학급씩이어서 한

교실에서 3년을 배우다보니 친구들이 정이 많이 들어서 오랜만에

만나도 얼굴은 다 알겠더라구요.

 

남학생들은 학교 졸업후에 처음 만나서 어색하고, 모이는 장소에

들어왔는데 선생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어요.

그래도 조금 시간이 흐르니 남녀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반가움을 만끽하는 즐거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머리가 희어지시고 연로하셨지만 저희들을 가르치실때의

그 짜랑짜랑하신 음성은 그대로 여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들께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저희들에게 배움을 일깨워주시어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고 가정을 잘 꾸려가는

엄마 아빠가 되었어요.

 

어려울 때 나에게 도움을 주신 선생님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307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