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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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하느님을 찾아가려고 하지만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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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59.86.228.*]

2007-11-26 ㅣ No.6060

 
 
   † 예수님이 되기 위하여 부처가 되고자 그 깨달음을 구하려는 의지는 좋은 것입니다.
 
   많은 신부님(비운 승려는 비구승이라 함)과 수녀님(비구니)의 신, 구 여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더불어 가장 소중한 선택의 순간은 양심의 이정표를 만나는 이 순간입니다.
 
   이는 대처승(결혼한 승려)의 모습을 닮아가는 보편 신자들의 오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좋은 표양의 이면에는 무언가 숨어있는 너로 하여금 나쁜 무엇의 기회를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자체이신 주님의 은총은 그렇치 않습니다. 계산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는 늘 깨어나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합니다. 또는 강력한 용기로 작은 성호를 바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질문자께서 간구하고자 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깨달음 과정에서 만나야 하는 '업'이 공존하는 '윤회사상'과
   너를 위해 빛과 영광의 고통을 감수하시고 죽음마저 받아들이서야 했던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이 이어지는
   '부활사상'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결론은 주님을 멀리함으로써 망각한 뒤의 나의 사고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불가로 떠난들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의 먼지속에서 준비없이 아무리 시골의 그것을 동경한들
   막상 그곳에 묻혀보면 엄습하는 마지막의 승부수 '고독'속에서도 또한 더 큰 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전진을 해야 할 때 후진 기어를 밟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욕과 권력 물질화등에 물든 땡초, 사이비교주등이 대표적으로 천사였다가 악마에 걸려 넘어진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고로서도 자칫 믿을놈 하나도 없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렇치 않습니다. 하느님의 중재자이신 신부님들도 사이비가 계시던가요?
   그 협조자이신 수녀님들도 어디 그러시던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다윗의 가문으로서 AD 33년 실제 우리를 위하여 정치, 권세가들에게 속은 군중들 틈에서
   엄청난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매달리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죽음의 여정을 건너신
   예수님의 동호회원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고자 먼저 부처님이 되고자 길 떠나겠다는데
   과연 누가 말릴 수 있을까요? 그러나 떠나고 싶다면 하느님께 결재를 받고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그것을 피하려는 사고였다면 업의 '윤회사상'과 전혀 다른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고통을 통한
   '부활사상'의 차이의 아픔만을 더 깊이 만나게 될 터이고 그것을 깊이 묵상하게 되던지
   아니면 가톨릭 교회내에서도 걸려 넘어지는 3/2 다수처럼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넘어지면 울게 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슬프거나 격노하며 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영혼의 승천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너와 나처럼 부족한 그 경우를 만나 슬퍼하거나 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한 나보다 이웃의 먼저 승천을 구하며 즉각 기도할 수 있다면 그는 보장된 신앙 여정으로 떠날 것입니다.
   지혜서가 더욱 가까이 즐겁게 읽혀지기도 할 것입니다.
   신부님들도 고해성사 때의 않좋은 이야기는 다만 주님 사랑으로 중재할 뿐이지
   그것을 일일히 기억하면 사제직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평신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자연도 절대자이신 주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질문을 하신 님께서 이러한 단순한 믿음이 상처를 받았기에 '자연종교'인 불교의 교리가 그리워졌고
   그 초심 때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던 '계시종교'인 천주교를 떠나려 하고있습니다.
   도망가고 싶으시면 도망가지 마시고 실컷 도망가게 내비두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가톨릭의 '준주성범' 또한 불교의 교리가 닮아있기도 합니다.
 
   질문자나 저나 주님이 어딘들 계심을 믿을 수 있기에 길 떠날 준비를 위해서는
   장사꾼들에게 박아지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하여 마음을 마저 비우시는 것이 더 소중한듯 합니다.
   잠시 길을 지날 때 열려있는 빈 성당을 만나면 들어가 보심은 어떨런지요?
 
   거룩한 주님의 침묵에 안기는 강물같은 평화의 침묵을 누려보십시오.
 
   가톨릭 신자는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탁하는 신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음의 쓴잔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러나 제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데로 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빈 성당에서 혹여 빈 마음을 구할 시 분심이 들더라도 그저 그가 스스로 지쳐 달아나도록
   계속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먼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 여행을 계속 추구해 보십시오.
   분심이 찰거머리처럼 기도를 방해하려 들면 성사생활을 포기 안겠다고 대처해보십시오.
   일시적일지 모르겠으나 성 미카엘, 성 라파엘, 성 가브리엘의 평화로서 밧데리를 충전 받으실 것입니다.
 
   세상속에서의 신부님, 수녀님(비구니, 비구승)들처럼의 백의 순교
   결혼한 승려가 되어 나를 먼저 비우고 있기에 배우자 우선, 자녀 차선, 부모 삼선, 이웃 사랑 실천의 녹색 순교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고자 피같이 붉은 사랑의 장미여정을 택해야 했던 적색 순교
   이러한 세가지 길도 사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홀로 아무리 구하려 한들 연목구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악마는 계속하여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고 김치국물부터 마시게도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가 되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벌을 받습니다.
 
   부르심의 계시에 응답하였던 그 초심을 살려
   그리스도 부활 은총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계시 은총을 받아들이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다음의 평화방송 프로를 주님 성탄의 기쁨을 맞는 대림절을 준비하며
   한국 가톨릭 평신자 초대 여성회장 강완숙 골룸바 성녀님의 여정을 시청하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1부=11월 20일 오후 4시, 21일 밤 11시, 22일 오전 11시, 23일 오후 9시, 24일 오후 4시, 25일 오후 8시

  ▲2부=11월 27일 오후 4시, 28일 밤 11시, 29일 오전 11시, 30일 오후 9시, 12월 1일 오후 4시, 2일 오후 8시

  ▲3부=12월 4일 오후 4시, 5일 밤 11시, 6일 오전 11시, 7일 오후 9시, 8일 오후 4시, 9일 오후 8시

   지금 곧, 주님과 함께 스케줄란으로 파견 보내 두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도 계속하여 주님께 의탁해 보시구요.
   하느님은 찾아가는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안의 깊은 주님으로서도 모셔야 할 분이랍니다.
   온전히 못 모심이 우리가 죄인일 뿐이지요.
   길 떠날 때 준주성범 챙겨주시길 부탁드리구요.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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