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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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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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15-12-29 ㅣ No.8662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노부부의 순애보
 

 

10월의 마지막 주. 신문사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였다. 발신지는 부산.

 

여느 편지와 달리 겉봉투에 발신인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증이 일어 겉봉을 열었다.

 

하얀 종이 다섯 장에 검정 볼펜으로 촘촘히 써내려간 편지였다.

 

 

 

“…저는 부산 남구 용호3동에 거주하는 81세 된 이동만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80대 노부부의 애틋한 순애보를 담고 있었다.

 

내용을 좀 더 소개하면 이렇다.

 

“2009년도에 집사람이 콩팥 수술을 받은 이후부터

 

저는 집에서 흰죽도 끓이고 빨래도 하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합니다.

 

집사람이 고질병인 갑상선 질환도 있고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제대로 활동할 수 없어 제가 설거지며 시장보기도 전부 다 합니다.…”

 

 

 

글씨체도 가지런할 뿐 아니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80대 어르신의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했다.

 

어르신은 해마다 오르기만 하는 물가고에 시달려 적자 살림을 메꿔 보려고

 

폐지 수집을 하게 됐다고 썼다. 폐지 1kg에 60원 받고

 

손수레에 가득 싣고 가면 3000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연은 계속 이어졌다.

 

 

 

“…몇 달 전 폐지 수집하여 푼푼이 모은 돈으로 전복죽을 끓였습니다.

 

집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답니다. 단골 메뉴가 흰죽 아니면

 

콩나물국이었는데, 짭조름한 전복죽 먹으니 입맛이 살아난다면서

 

정신없이 전복죽 먹는 피골상접한 집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저는 너무도 불쌍하게 보여 집사람을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이게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부부간의 정이란 것일까요.

 

 

 

내 마지막 세포가 살아 있는 한 사력을 다해서 집사람이 그토록 좋아하는

 

전복죽을 내일도 끓여야지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 10월 1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던 날 오후,

 

‘집사람’이 1층 마당에서 김치통을 씻던 중

 

2층에서 떨어진 주인집 화분에 팔과 어깨, 왼쪽 발목이 다친 것이다.

 

발목뼈 골절이어서 수술을 받고 부산성모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라고 했다.

 

 

 

“집사람이 먹다 남긴 죽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20일 넘게 생활하고 있다는 이동만 어르신은 새벽이 오기 전 칠흑 같은 밤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병원 구내 성모상이 있는 마사비엘 동굴로 간다면서 이렇게 썼다.

 

“그곳에는 주야로 성모 마리아님이 저의 집사람의 쾌유를 빌어줍니다.

 

저는 동굴에서 성모 마리아님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편지는 기도로 연결된다.

 

 

 

“성모 마리아님,…진작 화분 벼락을 맞을 사람은 이 늙은이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하신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습니다.

 

‘사랑은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상처와 눈물을 닦아주는 것’

 

이란 금언을 보물단지처럼 안고 살아왔습니다. 이 죄 많은 늙은이도

 

성모 마리아님 동상 앞에서 기도할 수 있을는지요….”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저의 못난 졸고지만 후기에 쓴 글을 신문의 여백에 실어주시면

 

저 평생 영광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지극한 순애보였다. 지어낸 소설이어도 좋았다.

 

가슴에 눈물을 훔치며 몇 번이고 글을 읽고서는

 

어르신의 소원을 들어드리기로 했다.

 

 <평화신문>  이창훈 알폰소(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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