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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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마단조작품 64 - 김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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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원 [lion77] 쪽지 캡슐

2021-04-08 ㅣ No.3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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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낭만파가 낳은 가장 뛰어난 협주곡으로서 기념비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만약 멘델스존이 이 바이올린 협주곡 단 1곡밖에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은 영세토록 전해졌을 것이다.

 

고금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베토벤의

작품을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이라 한다면,

멘델스존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여왕의 자리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멘델스존이 이 E단조의 작곡에

착수한 것은 1838년(29세)의 일인데,

 

완성을 본 것은 6년 후인 1844년(35세) 9월이 었다.

빨리 작곡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이토록 오래 걸린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착수하기 전 해에 세실

샤를 로테 소피 장르노와 결혼해서 다망한 신혼생활에 묻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라이프찌히 음악원 창설을 위해 동분 서주해야 했던 것,

버밍검 음악제와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지휘자로서 연주활동에도

몸을 쪼개야 했던 것 등 차분히 일에 몰두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멘델스존은 이 곡을 작곡함에 있어서

당시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콘서트마스터로 있던 페르디난트 다비드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대한민국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손열음,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인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

김다미 등과 함께 80년대생 출신 연주자의 대표 주자다.

예원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수석 입학,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원 석사 과정 재학 중 도미하여 뉴욕 줄리아드 스쿨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2013년
금호아시아나그룹 문화재단 고악기 임대 수혜자로 선정되어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사용하다가 뮌헨 ARD 콩쿠르 입상 후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으로 교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11개의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적의 클래식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해외 연주활동이 활발한 인물로 평가된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그녀를 “격렬하고 극적인 몰입”이 인상적인 연주를 한다는 평을,

<더 바이올린 채널>에서는 그녀를 “국제 무대에 떠오르는 탁월한 실력을 가진 스타 연주자”로 평했다.

2021년 2월 22일, 세계 정상급의 클래식 음반 제작업체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이는 한국인 여성 연주자로는 첫 기록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특별 초빙교수 이기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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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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